소설이 지닌 보편성과 호소력 있는 문체가 ‘작품의 현재성’ 담보한다
소설이 지닌 보편성과 호소력 있는 문체가 ‘작품의 현재성’ 담보한다
  • 교수신문
  • 승인 2016.02.0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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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49강. 이남호 고려대 교수의 ‘김동인·김유정·김동리·이태준 단편선’

1월 마지막 주인 30일,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는 마지막 강의를 남겨둔 49강을 고개를 넘었다. 작가 한 사람씩 조명해도 충분하지만, 일정에 쫓겨 여럿을 함께 묶어 읽어내는 접근이었다. ‘김동인, 김유정, 김동리, 이태준 단편 소설의 현재성’을 주제로 이남호 고려대 교수가 진행했다.
이남호 교수는 고려대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을 거쳐 등단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대 초빙교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초빙교수를 거쳐 문학과 환경학회 회장, 한국문학번역원 이사, 고려대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교육부총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윤동주 시의 이해』,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문자제국 쇠망약사』,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한국 대하소설 연구』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평론부문(1989), 현대문학상 평론부문(1992), 소천비평문학상(1998), 유심문학상(2003) 등을 수상했다.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김동인의 단편들: 인간의 어리석음과 모순성
김동인은 그의 나이 스무 살이 되던 1919년, <창조>라는 동인지를 발간하고 거기에다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작가가 됐다. 이광수와 더불어 한국 현대 문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약한 자의 슬픔」은 그 시기적 선구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면에서 어설픈 작품이다. 구성이나 문체 그리고 인물과 스토리까지 허술하다. 사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고 흔히 언급되는 「배따라기」,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명문」, 「광염 소나타」, 「광화사」 등등의 작품들도 「약한 자의 슬픔」이 보여 주는 어설픔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동인의 단편 가운데서 「태형」과 「곰네」가 그래도 괜찮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태형」은 김동인의 초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안정된 문체와 구성을 보여 준다. 묘사도 구체적이고 실감난다. 「태형」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면, 「곰네」는 성격 창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태형」과 「곰네」가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이 두 작품에서는 김동인의 특성이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광염 소나타」 같은 작품에서 보듯이, 극단적 인물과 황당한 사건에 김동인 소설의 특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김동인 소설이 보여 주는 많은 허술함과 무리와 억지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이 일관되게 전달하는 의미 있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매우 어리석고 모순된 존재라는 메시지다. 김동인 소설은 세상이 지옥이고 인간이 악마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이 과장됐다고 말할 수 있을지라도 거기에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있음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선하고 긍정적인 가치의 주장 뒤에 숨어 있는 많은 거짓들에 쉽사리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배우게 되고 또 자기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많은 배반에 견디는 힘을 배우게 되는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메시지들이 보다 진지하고 실감 나게 탐구되지 못하고 있음은 다시 한 번 지적해 둘 수밖에 없다.

김유정의 단편: 거칠고 무지한 삶과 해학적 문체
김유정은 스물아홉의 나이로 요절했다. 매우 가난하고 병들고 거칠고 불안정한 삶속에서도 약 5년에 걸친 창작 기간 동안 30여 편의 소설을 남겼다. 애석하게도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거칠고 허술하고 완성도가 떨어지며 또한 소품이다. 그러면서도 김유정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소설 공간을 창조해냈고, 해학적 문체와 에너지 넘치는 필력 그리고 탈속한 만무방의 눈으로 엉터리 세상을 개성적으로 그려냈다.


김유정의 소설은 전근대적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아주 가난하고 궁벽한 시골 사람들의 삶을 주로 이야기한다. 「산골 나그네」, 「노다지」, 「금 따는 콩밭」, 「만무방」, 「소낙비」, 「솥」, 「따라지」, 「금」, 「안해」, 「가을」 등으로 김유정 문학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이 대개 그렇다. 노름, 도적질, 마누라 때리기, 계집질 등이 이야기의 주된 내용을 이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삶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고 유머러스하게 펼치는 작가 김유정은 바보 같기도 하고 동시에 천재 같기도 하다. 김유정의 개성적인 문체와 작품 세계의 문학적 가치는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고전으로서의 자질이나 현재성의 관점에서 김유정의 이런 작품들은 매우 난처한 위치에 있다.

김동리의 단편: 사연의 과잉과 아이러니의 부족
김동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기구한 운명이나 사연을 지닌 인물이며, 이 인물들은 민간 신앙이나 종교나 예술에 귀의하거나 아니면 전설이나 야담의 형식으로 설명된다. 기구한 운명의 삶을 신앙이나 전설과 연결시키는 김동리 소설의 기본 구조는 김동리 소설의 명암을 동시에 보여 준다. 「황토기」, 「바위」, 「역마」, 「무녀도」 등의 경우는 김동리 소설의 성격을 대표하면서 널리 호평 받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민간 신앙적 소재의 작품들이 김동리 소설의 전부인 것은 아니다. 초기부터 김동리 소설은 현실의 비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왔다. 좋은 작품이 여럿 있다.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산화」가 그러하고, 「팥죽」, 「찔레꽃」, 「동구 앞길」, 「혼구」, 「미수」 등이 또한 그렇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이 정도로 사실적으로 객관화해 그려 낸 작품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김동리 소설에 관한 논의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작품이 따로 두 편 있다. 작가가 말년에 쓴 「이별이 있는 풍경」과 「참외」다. 초기작들의 무게가 그 이후의 작품들을 넘어서는 것은 김동리의 경우에도 해당되지만, 이 두 작품만은 특별한 관심에 값하는 작품이다. 먼저 「참외」는 착하고 성실한 가족이 현실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서 어느 정도 안정된 삶에 이른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짜임새 있게 전개된다. 그러나 작가는 영순 어미가 “몰래 참외를 어기적어기적 껍질째 먹는 모습” 단 하나의 이미지를 독자에게 제공하면서 이 작품의 의미를 모호하고 깊게 만들어 놓았다. 이 작품은 삶의 표면 뒤를 살며시 들춰 보여 주는 솜씨가 돋보이는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다. 「이별이 있는 풍경」은 「참외」보다 더 깊은 여운을 약속하는 작품이다. 별 사건이 없이 두 가족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유원지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죽음이 낯설고 아름답게 그려진 작품이다. 합리적 의미의 바깥에 있는 존재의 신비와 아름다움과 미지를 아주 절묘하게 드러낸다.

이태준의 단편 소설: 시대의 소묘와 시대를 넘어선 호소력
순서대로 하자면 김유정과 김동리보다 이태준을 먼저 언급해야 했다. 이태준은 김유정과 김동리보다 나이도 많고 문필 활동도 먼저 했다. 그럼에도 이태준을 마지막에 언급하는 까닭은 네 작가 가운데서 이태준이 가장 현재성이 강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태준의 소설은 크게 삶의 고달픔을 시대 현실 속에서 그려 내는 작품들이 있고 또 품위와 섬세함을 가지고 사람과 삶의 기미를 잘 드러내는 작품들이 있다. 전자에 해당되는 작품으로는 「실낙원 이야기」, 「꽃나무는 심어 놓고」, 「봄」, 「어떤 날 새벽」, 「패강냉」 등등이고, 후자는 다시 「영월 영감」, 「불우 선생」, 「복덕방」 등 잘난 사람이 바보가 된 경우와 「달밤」, 「색시」, 「손거부」 등 처음부터 좀 못난이인 경우로 다시 나눠질 수 있다.


이태준의 소설은 어느 경우나 세련되고 정제된 문체가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어느 정도 이상 지니고 있다. 일반 독자로서의 우리가 이태준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 시대의 현실을 공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소설이 지닌 보편성을 만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을 예로 들어 보자. 독자들은 「봄」이나 「꽃나무는 심어 놓고」를 읽으면서 식민지 시대의 하층민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독서의 주된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작품이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화창한 날과 쉬는 날이 오히려 더 괴로울 수 있다는 보편적 삶의 일면 때문이며, 또한 꽃 심어 놓은 고향에서 오히려 쫓겨나고 남편을 위한 아내의 선한 행동이 더욱 큰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는 보편적 삶의 일면 때문이다. 이처럼 이태준의 소설들은 시대를 정직하게 다루면서도 보편성을 착실하게 확보해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편성의 확보는 시대를 넘어서서 현재성의 확보로 이어진다.


다음으로 「영월 영감」, 「불우 선생」, 「색시」, 「달밤」, 「손거부」, 「아담의 후예」 등등은 흥미로운 인간 탐구를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물론 이 작품들에서도 시대의 암울은 중요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그러나 초점은 시대의 탐구가 아니라 인간의 탐구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세간의 일부 부정적 평가와는 달리, 이 작품들의 의의와 현재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돌다리」다. 작가도 표제작으로 삼을 만큼 애착을 가진 작품이다. 창섭은 누이의 죽음에 한이 맺혀 장안에서도 유명한 맹장염 전문 의사가 됐다. 그는 고향의 전답을 팔아 병원을 확장하고 부모님도 서울로 모실 계획을 가지고 고향 부모님 댁을 방문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준엄한 논리로 반대한다. 아버지 말씀 속에는 작가 이태준의 자세와 가치관 그리고 문체까지 비교적 잘 드러난다. 아버지는 전답을 팔 수 없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금이 쏟아진대두 난 땅은 못 팔겠다. 내 아버지께서 손수 이루하시는 걸 내 눈으로 본 밭이구, 내 할아버님께서 손수 핏땀을 흘려 모신 돈으루 작만하신 논들이야. (…) 땅이란 천지 만물의 근거야. 돈 있다구 땅이 뭔지도 모르구 욕심만 내 문서쪽으로만 사 모기만 하는 사람들, 돈놀이처럼 변리만 생각허구 제 조상들과 그 땅과 어떤 인연이란 건 도시 생각지 않구 헌신짝 버리듯 하는 사람들, 다 내 눈엔 괴이한 사람들루밖엔 뵈지 않드라.”
아버지의 이러한 돌다리에 대한 생각과 태도 그리고 땅에 대한 생각과 태도는 곧 작가 이태준의 문학에 대한 태도다. 그리고 그것은 돌다리처럼 시대의 변덕을 넘어 튼튼하게 지켜져야 할 가치로서 오늘의 우리에게도 더욱 필요한 생각과 태도다. 그의 소설이 지닌 보편적인 의미와 호소력 있는 문체는 현재성을 담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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