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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연구는 보통사람들의 문화·상징요소도 주목해야
민족연구는 보통사람들의 문화·상징요소도 주목해야
  • 교수신문
  • 승인 2016.02.0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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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족류-상징주의와 민족주의: 문화적 접근방법』 앤서니 D. 스미스 지음|김인중 옮김|아카넷|344쪽|20,000원

 

스미스의 연구를 통해 이제 민족은 잘못된 통념처럼 전쟁을 일으키는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주는, 계속해서 배양돼야 할 풍요로운 문화자원이 된다.
우리의 민족주의를 이해하는 데 스미스의 민족주의론이 절실한 이유다

이 책은, 서두에 적혀있듯이, 앤서니 스미스가 자신의 출세작인 『민족들의 족류공동체적 기원』이후에 한 작업의 이론적인 부분을 요약한 것으로서, 이제 ‘족류상징주의’라고 불리게 된 민족들과 민족주의에 대한 연구방법론을 간결하게 서술한 책이다. 민족을 역사적 문화공동체로 보고 그것에 대한 접근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알려면 먼저 이 책이 나오기 2년 전에 에든버러대 출판사에서 나온 거의 같은 제목의 책(『민족주의와 족류상징주의』)의 첫 문단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민족(성)을 더 깊이 이해하는 문제들은 1970년대 이후로 상당히 명확해졌다. 그러한 해명의 대부분은 아주 상이한 여러 분석─예컨대 워커 코너, 존 암스트롱, 어니스트 겔너, 베네딕트 앤더슨, 앤서니 D. 스미스, 피에르 밴 덴 베르그, 존 브루이, 에릭 홉스봄, 리아 그린펠드, 도니미크 슈나퍼, 존 허친슨의 저서의 분석─을 통해 표현되기는 했지만 그 주제에 주어진 새로운 관심의 결과였다. 이 시기동안 그 누구도 첫째, 그의 ‘족류-상징적’ 접근방법을 통해 장기지속적인 족류성(『민족들의 족류공동체적 기원』, 1986), 영토적 혈연관계(「민족과 족류경관」, 1997), 집단(성)의 장기적인 문화적·정치적·상징적 발전과 융합(『민족들의 고대성』, 2004; 『역사 속의 민족』, 2000)의 맥락에서 민족(성)에 대한 분석을 정제하고 둘째, 여러 상이한 분석들의 전제들을 검토함(『민족주의와 근대주의』, 1998)으로써 그 문제들을 명확히 한 앤서니 D. 스미스보다 더 많은 일을 한 사람은 없었다. 확실히 이러한 분석들 간의 차이는 그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헤르더(1774)가 관찰했듯이, 그리고 헤르더 이후에 프리드리히 마이네케와 한스 콘과 같은 학자들이 관찰했듯이, 민족은 프로테우스 신처럼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찰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근거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민족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에 그러한 관찰이 갖는 함의는 무엇인가?”

윗글을 통해 우리는 특히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활성화된 지난 30년간의 민족주의 연구로 민족(성)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어졌고, 그 시기동안 이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업적을 쌓은 앤서니 스미스가 가장 큰 기여자이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닌데 그 근본이유는 민족이 모든 사물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그리스의 늙은 海神처럼 변화무쌍하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모든 인간의 결사체와 마찬가지로 민족에도 시대에 따른 그리고 각 사례에 따른 可變性과 可鍛性이 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사람들이 서로 각기 다른 것을 추구한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의미의 多重性 때문이다. 요컨대 스미스가 ‘間학문적인 민족주의 연구 분야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이유를 적시한다면 그것은 다음의 두 가지─①그가 누구보다도 민족의 존재에서 의미가 지닌 중심성을 강조해왔다는 것과 ②그가 철저하게 민족을 프로테우스와 같은 존재로 놓고 그것을 해명하려고 애써왔다는 것─때문이다.

먼저 한 민족이 이 세상에서 하나의 현실로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의미가 지닌 중심성부터 살펴보자. 사람들이 추구하는 다양한 의미들이 하나의 복합체로 합쳐지고 인정되고 그럼으로써 그 의미들이 경계가 지어진 집단을 구성하는 다수의 개인들에 의해 공유될 때 그와 같이 불균등하게 공유되고 변화하고 경계가 지어진 이질적인 의미들의 복합체를 우리는 ‘문화’라고 말한다. 스미스가 민족을 문화공동체로 본다는 것은, 민족형성의 質料가 살아있는 인간들이고, 따라서 민족형성이 어떤 정해진 법칙이나 패턴을 밟아나가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민족과 민족주의를 근대의 산물로 제시하는 설명들, 즉 겔너처럼 민족을 근대화의 함수로 앤더슨처럼 ‘인쇄 자본주의’의 부산물로 홉스봄처럼 지배 엘리트의 필요에 의해 발명된 전통으로 설명하는 것, 반 덴 베르그처럼 우리의 생물학적 충동의 결과라고 하는 것, 그리고 민족은 ‘엔지니어들’이 만들었고 그 엔지니어들은 하나의 이익을 성공시키기 위해 전통들을 조종하거나 발명한 엘리트라고 규정하는 것 등등은 스미스에게는 지나친 결정론에 불과하다. 그와 같은 설명은 의미가 민족의 존재에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 즉 민족은 그 구성원들이 기꺼이 그들의 목숨을 바치는 ‘역사와 운명의 공동체’라고 정의될 만큼 그 구성원들에게 그 민족이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설명은 민족이 프로테우스와 같은 존재라는 헤르더의 관찰을 비껴간다. 즉 그런 설명은 그 존재에 대한 의미의 바로 이러한 중심성 때문에 어떤 민족도 단지 상대적으로만 안정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민족이 상대적으로만 안정적이라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은 각 민족이 결성된 의미가 ①시간의 흐름에 따라 등장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민족 구성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②그 자체로 삶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그리고 대답을 요하는 수많은 문제들로 인해 변화되며 ③시간에 따라 달라질 뿐만 아니라 개인과 집단에 따라 달라지며 ④실제로 다양하게 서로 긴장상태에 놓여 있는 흔히는 정치적 차이로 표현되는 그리고 특정시점에 그 의미들 중 하나가 다른 의미들보다 우세해질 수도 있는 이질적인 의미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의미복합체는 애매모호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거기에는 언제나 이의가 제기될 수 있다. 그래서 민족들은 ‘충돌지대’다. 요컨대 민족과 민족주의를 근대의 산물로 규정해버리지 말고 그것을 문화적 유대와 정치공동체 사이의 보다 넓은 역사적 교차지대에 집어넣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족이란 무엇인가. 스미스는 민족을 ‘그 구성원들이 공유된 기억, 상징, 신화, 전통, 가치를 배양하고, 역사적 영토나 “고토에 거주하고 거기에 애착을 느끼며, 독특한 공공문화를 창조 및 전파하고, 공유된 관습과 표준화된 법률을 준수하는, 이름과 자기인식을 지닌 인간 공동체’라고 이상형적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국가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민족의 필수요소가 아니라는 것과 한 민족이 이 세상에서 현실로 존재하려면 비교적 크지만 경계가 지어진 명백하게 영토적인 상징들의 상대적인 안정성(=족류공동체)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민족을 이상형적으로 정의한 것은 민족에 대한 연구가 구체적인 민족을 대상으로 개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과 이 이상형이 특정한 사례에 유형적인 특징들이 어떤 양상으로 또는 어떤 정도로 나타나 있는지를 점검하는 기준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해서 민족/민족주의 연구는 근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비교사적 방법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된다. 한마디로 민족(주의) 연구는 국가엘리트에 의한 위로부터의 민족형성 과정만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보통사람들의 문화·상징요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스미스의 연구를 통해 이제 민족은 잘못된 통념처럼 전쟁을 일으키는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주는 오래된 그리고 계속해서 배양돼야 할 풍요로운 문화자원이 된다. 문화적 민족주의의 성격이 강한 우리의 민족주의를 이해하는 데 스미스의 민족주의론이 절실한 이유다.

 

김인중 숭실대·사학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민족주의와 역사』가 있으며, 『근대세계체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기억의 장소 1~5』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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