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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3의 정치학
숫자 3의 정치학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16.02.0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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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3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쓰는 숫자이며, 우리 문화에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내기를 하더라도 3세판이고, 고스톱도 3점부터 시작한다. 그런가 하면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하고, 시묘살이 3년에, 만세 3창, 그리고 의사봉은 3번 두드리고,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 부른다.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숫자 3은 자못 심오한 뜻도 갖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이르기를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 했다. 만물이 생겨나는 순간이 3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지인 3재는 훈민정음 창제의 원리가 됐듯이 전통적 세계관의 핵심이다. 또한 환웅이 인간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환인에게서 받았다는 ‘천부인’도 셋이고, ‘삼신할미’라는 말처럼 숫자 3은 종교에까지 확산돼 있다.

이렇듯 3은 우리의 일상생활이나 문화에 익숙한 숫자지만, 정치에서는 그렇지 않다. 3한 시대와 3국 시대가 있었지만, 우리 강토가 두 동강이 난 이후부터일까, 우리나라 정치는 숫자 2의 정치였다. 잠시 3김 시대가 있었고, 전두환 시절에는 민정당 3중대까지 있었지만, 전통적으로 한국 정치는 양당 구도였기 때문이다.

숫자 2는 상호보완과 화합의 숫자이며, 또한 대립과 적대를 의미한다. 남녀가 화합해 인류를 이룰 때 2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이지만, 두 사람이 똑같은 것을 놓고 경쟁할 때 이들은 대립하기 쉽다. 항차 정치에서 권력을 놓고 다툰다면 이내 둘은 적이 되고 만다. 

따라서 양당구도에서 정치는 적과 동지라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며, 세상을 흑백논리로만 보게 한다. 내가 얻으려면 상대는 잃어야 하고, 내가 옳다면 상대방은 틀리고 내가 선이면 상대방은 악이다. 그러나 3당 구도라면 어떨까? 적대가 아니라 협상이, 무시가 아니라 인정이, 독식이 아니라 나누어 갖기가, 힘의 우위가 아니라 힘의 균형이 중시되진 않을까?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전했다는 ‘천하3분지계’는 이런 뜻을 담고 있다. 조조, 손권과 함께 천하를 3分하고 나중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하3분을 유지할 수 있는 계책으로 약자와 협력하여 강자와 대결할 것을 권했다. 강자와 협력해 약자를 무찌르면, 이제 남은 것은 강자에게 먹힐 일 밖에 없지만, 약자와 협력하면 강자를 견제할 뿐만 아니라, 약자에게도 우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의 당’이 등장하면서 3당 구도 정계개편을 말한다. 3당 구도가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극한적 대립과 상호무시, 승자독식이 아니라, 타협과 균형의 정치를 만들어낸다면 이는 한국 정치사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단지 양당 구도 하에서의 야권분열에 불과하다면, 이는 약자끼리 싸워 강자를 이롭게 하는 하수의 계책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말한다면, 누구나 ‘양극화’를 지목한다. 양극화란 사회가 부자와 빈자 두 극단으로 갈라지는 현상이다. 우리처럼 상위 10%가 전체소득의 50%를, 이에 반해 하위 70%는 단지 20%만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산층의 존재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3당 구도 정치가 가능하려면 그 지지기반이 될 수 있는 계층 분화 역시 이에 상응해야 한다. 그런데 양극화 상황에서 3당 구도 정계개편이라?

총선을 앞두고 여든 야든 ‘합리적 보수’ 인사를 영입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 여야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보면 현재 3당이 뭐가 다른지 의문이다. 극도로 왜소해진 중산층을 지지기반으로 할 중도 노선이니, 합리적 보수만을 이야기한다면 대다수 서민들은 정치적 非대표 상태에 빠지고, 누굴 찍을지 몰라 투표장에 나오지 않게 된다. 

숫자 3의 정치를 하려면, 이에 앞서 서민들의 경제적 불평등 상황을 해소하고, 중산층을 두텁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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