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7:55 (금)
교육은 없고 수사만 가득한 평생교육
교육은 없고 수사만 가득한 평생교육
  • 이재 기자
  • 승인 2016.01.28 1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

지난 2014년의 일이다. 대학생 3명이 국내 제과업체가 만든 과자봉지 180개를 이어 붙여 뗏목을 만들어 잠실한강공원을 건너 화제가 됐다. 국내 제과업체가 포장 안의 내용물은 줄이고 대신 질소를 가득 채워 부피를 늘려온 것을 지적한 퍼포먼스였다. 실제로 소비자문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산 과자 20종 가운데 17개의 내용물이 포장 부피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고 한다. 

포장만 화려하고 내용이 부실한 것은 비단 과자봉지만이 아니다. 정부도 화려한 수사와 언론을 통한 대규모 홍보로 부실한 정책을 포장해왔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나물에 그밥’이요 ‘정책 표절’에 불과했지만 늘 새로운 정책입네, 획기적인 대안입네 해오지 않았던가. 사실, 과자야 안 사먹으면 그만이지만 정부정책이 어디 그럴 수 있는 일인가. 

최근 교육부가 내놓은 평생교육 단과대학 육성사업은 그야말로 과대포장의 대표격이다. ‘성인 학습자 친화형’ ‘대학의 체질 개선’ ‘새로운 교육수요 창출’ 등 화려한 수사가 질소처럼 가득 찬 가운데 교육은 한줌에 불과하다. 

이런 비판이 어리둥절하다면 내용부터 들여다 보자. 대학이 30세 이상의 성인 학습자 교육에 용이하도록 이들을 대상으로 한 최대 200명 정원의 단과대학을 신설하면, 최대 35억원을 세금에서 지원해준다는 것이 이 사업의 골자다. 쉽게 말하자면, 이미 대학들이 각종 미용업체나 호텔 등 외식산업체와 제휴해 만든 ‘계약학과’를 단과대학 규모로 확대하면 세금을 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계약학과가 부실하게 운영돼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망에 종종 적발돼 왔다는 비판은 일단 차치하자. 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교육부가 몇 년간 지속해온 대학 입학정원 감축 정책과의 연결지점이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입학정원 200명 가운데 60명은 현재 대학의 정해진 입학정원 내에서 편성해야 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이 사업의 기본계획에 따르면, 대학은 이들 60명에게 기존 등록금의 최대 70%까지 등록금을 징수할 수 있다.  

알다시피 교육부는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입학정원 감축 정책을 펼쳐왔다. 오는 2023년 학령인구가 급감한다는 분석에 따른 것으로, 2023년까지 대학 입학정원 16만명을 감축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번에 평생교육 단과대학으로 편성되는 입학정원 60명을 입학정원 감축분으로 인정해준다고 밝혔다. 60명은 입학정원 1천명 기준으로 환산하면 6%에 해당하는 수치다. ‘감축’도 인정되고 등록금도 ‘보존’할 수 있는데 누가 외면할까?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 사업은 본질적으로 입학정원 감축을 부추기고 대학을 직업교육기관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시범사업’이다. 교육부는 이 사업을 통해 학령기 인구에 초점을 맞춘 대학체제를 평생교육 연령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포장’에 그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도대체 이 사업에서 교육콘텐츠 논의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대학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태는 더욱 명확해진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육성사업에 지원의사를 밝힌 부산권 한 대학의 이야기다. “사업에 참여를 하긴 할 텐데, 무슨 학과를 만들지, 어느 계층을 대상으로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사업을 따낸다고 해도 이 사업이 기존 평생교육원과 무슨 차이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런 상황을 주시하다보면 이 사업의 탄생배경이 눈에 들어온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평생교육 단과대학 육성사업은 입학 정원감축으로 등록금 수입이 감소해 이를 만회하고자 한 대학과 대학의 자진퇴출이 어려워지자 이를 직업교육기관으로 전환시키고자 한 교육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교육부가 ‘사립대 자진해산’을 포기하고 직업교육기관 전환으로 태세 전환한 모습은 대학구조개혁 관련법안의 추이만 살펴봐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당초 사립대 학교법인이 해산을 결정할 경우 재산의 일부를 보존해주는 것으로 기획됐던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의 대학구조개혁법안(대학 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이 야당은 물론 사회 각계각층의 반대에 부딪히자 지난해 돌연 평생교육기관으로의 전환을 삽입한 새로운 대학구조개혁법안(대학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이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에 의해 발의됐다. 

이제 앞서 미뤄뒀던 교육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평생교육을 평생 연구해온 평생교육 전문가들은 이 사업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토로하고 있다. 동의대 평생교육학과 한 교수는 “이 사업은 0세부터 노령까지 생애 전주기의 교육을 의미하는 평생교육을 직업교육의 협소한 틀에 가둔 사업”이라며 “교육부가 국내 유아·초중등·고등·평생교육의 법체계조차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또 한국교육개발원에서 평생교육을 연구하고 있는 한 연구위원은 “교육자율화조치(5·31교육개혁) 이후 부실화된 고등교육기관의 정상화 책임을 평생교육시장으로 전가시키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이쯤 되면 대학도 공범이다. 취재과정에서 숱한 교수와 대학 관계자들이 교육부의 대학정책이 허구라고 꼬집었다. 꼬집기만 했다. 교육콘텐츠를 어떻게 규정할지 모른다고 호소하면서도 2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그럴듯한 사업계획서를 교육부에 제출하고, 35억원을 받기 위한 경쟁에 뛰어든 대학들이 부지기수다. ‘시범사업’이 종료된 뒤 대학가에선 이제 ‘후속사업’을 내라며 재촉하지 않을까? ACE(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 LINC(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 BK21(두뇌한국21)이 그랬던 것처럼. 교육부와 대학이 부풀린 ‘질소포장’은 또다시 소비자(학생)의 몫으로 남았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