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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존재론의 현상학이 된 어떤 떠돌이의 詩的 歸鄕
감정존재론의 현상학이 된 어떤 떠돌이의 詩的 歸鄕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1.26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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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48강.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서정주 『미당 시 전집』’

한국 근대시문학사에서 미당 서정주가 차지하는 자리는 어떤 것일까. 친일시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모국어의 경지를 확장하면서 시적 세계를 심화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3일(토)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 48강은 그런 서정주에 대한 최근 논의인 동시에, 미당 시 세계에 깃든 ‘일관된 정신의 역정’을 추적한 흥미로운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 추적은 ‘김우창’이라는 심미주의자이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은 김우창 교수의 강연 주요 내용을 발췌 정리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미당 서정주

미당 서정주 선생이 우리 현대시사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의 한 사람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의 시는 다른 어떤 시들보다도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한국의 현실을 전달한다.  그의 시적 언어는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표현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알 수 있게 하는 언어다. 그의 시는 무엇보다도 감정이 풍부하다. 그의 시는 사람과 사람의 세계가 얼마나 감정에 삼투돼 있는 것인가를 알게 한다. 이 감정은 과장된 감정이 아니라 세상을 아는 데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인지와 인식의 요인이다. 즉 이 감정의 언어는 세계 인식에 개입하는 인식적 또는 인지적 감정을 표현한다. 그것은, 미당의 경우, 민족 감정 또는 民俗 감정의 기층에 놓여 있는 意表를 움직이는 감정이다. 그리하여 그의 표현은 늘 민속적인 감정?그러면서 한국인에게 사회적 그리고 세계인식의 매체가 되는 감정을 포함한다.
미당의 처음 시작은 관능을 표방하는 서양 문학의 영향 하에 이뤄진 관능주의였다.

그것은 유교적인 금욕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의 시적 관심은 한국적인 것으로 되돌아온다. 근본적 영감은 자기 고향의 삶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한국의 전통문화?특히 신라적인 삶에 대한 탐구가 되고 또 상고시대의 사회 체제에 대한 성찰이 된다. 다시 요약하건대, 그의 초기 시는 억압 없는 감정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다. ‘화사’, ‘꽃뱀’은 이 가능성을 집약하는 상징이다. 그 다음, 그의 관심은 그 가능성을 적절하게 수용할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한 그리고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한 탐구를 향한다. ‘질마재’와 ‘新羅’는 여기에서 중요한 지표다. 질마재는 한국적 감정과 현실의 세계이고, 신라는 그것의 역사적 투영-이상화된 투영이다. 그의 시는 이런 사실적 회고와 역사적 탐색을 위한 계획이다. 그리고 이 기반 위에서, 그것은 감정 존재론의 현상학이 된다.

꽃과 뱀의 모순과 일치―「花蛇」
『花蛇集』(1941)에서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육체적 자각이다. 육체적 자각이 폭력적 심리의 분출에 연결되지만, 그것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연계를 갖는다. 이 복합성을 제일차로 집약해 표현하는 것이 시집의 제목, ‘花蛇’―꽃뱀의 이미지다. 이 기이한 결합은 보들레르의 대표적 시집의 제목, 『악의 꽃』에 유사하다. 시의 주된 메시지는 슬픔의 원인이 배경에 있어서 이러한 모순의 결합이 생겨나고, 이 배경의 슬픔을 해소하는 것은 폭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뱀이 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의 마음과 몸에 솟는 성적 에너지도 쉽게 근접할 수 없는, 해서는 아니 되는, 금지된 충동이다. 뱀을 쫓아가는 것은 자신의 심정에 타오르고 있는 이 금기된 정렬이 있기 때문이다. 첫 부분에서 화사는 폭력적 존재다. 그러나 마지막에 와서 뱀은 온순한 존재―스스로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뱀을 추적하던 화자 또는 시인의 태도도 모든 것에 대한 화해의 자세로 바뀐다고 할 수 있다.

「花蛇」는 사랑의 과정을 말한 시이다. 처음에 나오는 ‘麝香과 薄荷의 뒤안길’은 이런 저런 폭력적 요소에 대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이 처음부터 향기로운 낭만적인 환경에서 벌어지는 일임을 시사한다. 「花蛇」를 이렇게 읽는 것은 논리적 해석이다. 이 논리는 시의 여러 부분을 하나하나 따져 읽음으로써 끌어내어진 논리다. 그런데 시를 이렇게 따져서 읽는 것은 시의 참 재미를 잃어버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참으로 이 시가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花蛇集』의 시를 비롯해, 그 우선적인 호소력이  관능적인 개방성에 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면서 그것은 지각 체험이 지닌 사변적 구조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많은 뛰어난 예술작품이 그러하듯이, 숨은 논리는 예술의 효과를 심화한다.

관능의 세계―『花蛇集』      
『花蛇集』의 시들은, 대체로, 「花蛇」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의 쾌락 또는 열광을 주제로 한다. 그리고 그 성은 타자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폭력과 아름다움의 開花를 하나로 종합하는 매체로 파악된다. 다시 말해, 성의 아름다움은 상충하는 에너지들의 폭발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미당의 관능주의는 서구적인 것이면서도 토속 전통과 문화에 중복된다. 『花蛇集』에서, 「花蛇」 다음에 실린 「문둥이」는 아이를 잡아먹으면 문둥병이 낫는다는 민속 미신에 기초한 것인데, 그것을 아름다움과 겹치는 것으로 이야기한 것은 미당 미학의 전형적인 설정이다. 『花蛇集』의 여러 시에는 사랑과 폭력, 또는 僞惡的인 요소가 강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앞에서 본 관능 묘사에 보듯이 그것은 병적이라기보다는 건강한 것으로 이야기된다. 자연은, 특히 그 강력한 표현에 있어서, 인간의 간단한 선악을 초월한다. 성의 열락은 자연의 일부다. 거기에서 특히 두드러진 것은 인간과 동물의 구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나 관능적 쾌락에 대한 미당의 생각은 반드시 그것만을 예찬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육체적 쾌락에 대한 그의 송가는, 인간이 육체적인 존재라는 평범한 사실 이외에 자서전적, 철학적, 사회적 동기를 암시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역사에 대한 그 나름의 해석이 있다. 그러니까 그의 육체 예찬은 단순히 시적 직관의 표현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것은 분명한 의식적 결단의 결과이다.

「瓦家의 傳說」은 서정적 설화이면서 당대의 현실과 전통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을 담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강한 주장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이 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성적 억압을 견디어 내야했던 정절의 여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사실 「瓦家의 傳說」과 같은 시에 이러한 사상적 맥락을 결부해 읽는 것은 무리한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미당이 유교가 부과한 금욕주의에 크게 반발한 것은 그의 시와 산문의 도처에 보이고 있다. 그것은 그의 후기 시에서 더 두드러진 것이 된다.

미당의 한국 전통 읽기를 가장 요약해 보여주는 시 한편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목적은 미당의 전체적인 지적 전망을 파악하자는 것이다. 「韓國星史略」은 1961년에 나온 『新羅抄』에 실려 있다. 그러니까 대체로 말해 『花蛇集』의 시들로부터 20년이 경과한 후에 쓰였을 시이다. 그 전에도 신라의 설화에서 주제를 끌어 온 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신라는 1950년대 중반부터 미당의 열렬한 관심의 대상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인생 방황 또는 시적 방황에서 신라는 그에게 근대를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 사회를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미당에게 신라는 한국 역사상 일체적 인간성 구현의 가능성을 현실로서 예시한 시대다. 「韓國星史略」은 적어도 미당의 관심의 역정에 투사돼 있는 큰 배경을 알게 할 것이다.

떠돌이의 귀향
고구려나 신라가 반드시 먼 이상향만을 의미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인적 삶의 이상은, 적어도 미당의 관점에서는, 서양 사상이나 서양의 근대에 비춰볼 때, 한국 현실의 내부에 남아 있거나 잠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新羅抄』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전인간적인 세계로서의 신라에 대한 시적 탐구다. 또 이것을 그 이전의 상고시대까지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이 「鶴이 울고 간 날들의 詩」(1982)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당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역사적 흔적을 떠나서도, 그러한 이상의 세계에 가까운 곳 또는 적어도 보다 인간적인 공동체가 존재한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고향 마을에서 체험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질마재 神話」(1975)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보다 인간적인 세계를 마을이나 역사 속에서 발견하기 전에 그의 마음이 상당히 변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는 것은 『花蛇集』을 설명하면서 그가 한 말, “육체의 건전한 돌진으로 모든 비극을 이겨내려던” 그의 강인한 의지가 이완된다는 것이다. 사실 미당의 유명한 시 여러 편은 이 범주에 속한다. 「水帶洞詩」도 거기에 속한다고 하겠지만, 『花蛇集』 다음의 시집, 해방 이후 1948년에 나온 『歸蜀途』 그리고 1956 년의 『徐廷柱詩選』에는 특히 이러한 시가 많이 수록돼 있다. 다만 여기에 수록된 시들에서 사상적 추구의 진전을 찾는다면, 그것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태도가 더욱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미당의 시적 탐구는 신라와 상고시대 그리고 옛 고향을 향하게 된다.

신라의 모델
앞에서 우리는 신라의 정신사를 요약하는 시로서 「韓國星史略」을 언급했다. 이 시에 함축돼 있는 견해는 한국인의 세계관에 끼친 儒學의 영향을 비판적으로 본다. 그것은 유학 또는 宋學이 한국인의 인간 이해에서 길바닥을 쓰는 일과 하늘의 별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을 분리해 놓았다고 주장한다. 즉 지적인 시각을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것에 일반적으로 향하게 해, 일상적 삶의 현실을 등한히 하게 했다는 것이다. 「韓國星史略」은 이러한 비판을 재치 있고 시적으로 간략하게 요약한 명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정신, 문화, 그리고 일상적 습속으로 그려 볼 수 있는 신라 사회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사회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을 위해 의미 있는 것으로 전수될 수 있을까? 이상사회로서의 신라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늘의 현실에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의문과 함께 신라가 오늘에도 의미가 있고 또 그것이 계승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미당의 마음에는 강하게 존재한다. 신라는 인간적 현실의 모순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이상 사회에 가까운 모델이다. 이것이 미당의 생각이다. 미당은 신라적인 전통을 부활하게 하는 것이 그의 사명의 하나라고 생각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그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그것이 극히 외로운 사명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말에 사람들이 쉽게 설득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新羅抄』에 무력감, 허무감, 절망감을 표현하는 시가 적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新羅抄』의 마지막에 실려 있는 시들은 현대의 현실을 말하는 시들이다. 신라의 비전은 현대의 현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잠정적 결론
미당 서정주의 시는 처음에 강한 의지의 시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無爲의 중요성을 깨닫는데 이르게 된다. 이것이 『花蛇集』으로부터 『歸蜀途』, 『徐廷柱詩選』을 거쳐 『新羅抄』에 이르게 되는 미당의 시적 탐구의 역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세속적 기획을 포기하고 무위와 차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물론 노장 또는 불교의 제행무상의 사상, 空사상의 영향 하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당은 삶의 현실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설령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람이 서있는 공간은 사회와 세계 안에 있다. 미당의 신라 탐구는 삶의 모든 것을 평화롭게 수용할 수 있는 폭 넓은 문화의 틀을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삶의 모든 것은 인간의 정신적 희구도 포함한다. 그러면서 그것은 인간의 삶과 존재의 신비와 허무도 포함한다. 이 관점에서 모든 것의 끝에는 無가 있다. 그리고 침묵이 있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미당의 시적 편력은 『新羅抄』 후에도 계속된다. 그것은 침묵으로, 또 허무로 끝나지 않는다. 『新羅抄』 이후의 미당의 시는 신라 탐구의 연속선상에서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新羅抄』 다음의 시들, 가령 『冬天』에서도 삶의 포괄적 질서에 대한 추구는 계속된다. ‘冬天’이라는 제목은 미당이 그렇게 중시하는 꽃이 피지 않는 계절의 하늘을 말한다. 그는 이런 하늘 밑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이 시집에서도 계속 묻는다. 『冬天』은 우리 사사에서 가장 섬세한 戀歌들을 담고 있는 시집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新羅抄』의 신라 연구는 한국의 상고사를 기본으로 한국전통의 정신과 환경에 대한 탐구를 계속한다. 『질마재 神話』의 큰 동기가 되는 것도 비슷한 공동체적 이상의 추구에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질마재 神話』를 떠나서도 미당의 시어에는 토속적 삶의 인간성이-반드시 이상화만은 할 수 없는 토속적 삶의 인간성이 스며들어 있다. 그에게 이것은 버릴 수 없는 자산이었을 것이다.

필자는 『新羅抄』의 시들에는 이상과 함께 피로와 실의 그리고 절망을 말하는 시들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를 계속했다는 것을 말했다. 물론 그가 시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이해관계를 떠나서, 그가 시 쓰기를 계속 한 것은 보다 의미 있는 시를 쓸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삶의 현실적 근거에 대한 그의 강한 의식은 그로 하여금 어떤 이념의 성공과 실패를 지나치게 삶의 전부로 생각하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가진 인간적 자산에 대한 그의 느낌은, 어떤 철학적 직관 이전에 그가 가까이 여기는 언어 속에 이미 들어 있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그것이 시사하는 인간적 자원을 두고 허무에 이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더 연구해봐야 할 문제다.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시에 대한 수많은 평석이 있으나, 필요한 작업의 하나는 그의 시를 일관된 정신의 역정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물론 그의 시는 단편적인 시적 관찰과 표현을 담은 것으로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일관성 속에서 재구성해보는 것은 그의 시적 추구의 심각성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일이 된다. 내가 시도한 것은 그의 초기 중기 시를 자세히 읽으면서 동시에  어떤 관점?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관점에 의해 일관되는 구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은 후기에까지 계속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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