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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편견 넘어 과학으로 … 200년 ‘인정 투쟁’ 정리
오해와 편견 넘어 과학으로 … 200년 ‘인정 투쟁’ 정리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1.26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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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정신의학의 탄생』 하지현 지음|해냄|428쪽|19,800원
▲ 히에로니무스 보슈, 「바보들의 배」, 1490~1500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 세 폭의 그림 가운데 하나로, 제단화에 속한다. 원 작품의 3분의 2에 해당하며, 하단에 해당하는 「폭식의 알레고리」는 예일대 미술관에 소장돼 있고, 다른 날개 그림인 「죽음과 불행자」는 워싱턴국립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 배’에서 영향을 받아 그려진 작품이다. 사회적으로는 바보 배가 상징적 의미를 갖는 비유의 수단이기도 했지만, 실제 바보 배는 광인과 바보, 역병 환자를 격리하는 수단이었다. 바보 배는 세계 최초의 정신병원이기도 했다. 푸코도 그의 저작 『광기의 역사』에서 이를 다뤘다.

 

“현대 정신의학이라는 큰 강은 서로 다른 수많은 강줄기에서 하나로 모인 결과물이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세우려는 노력, 사회문화적 변화와 함께 발생하는 개념의 발전, 정신질환 치료는 궁극적으로 생물학적 치료인가 정신 치료인가 아니면 사회의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것인가와 같은 고민이 각개약진해 왔다.”


책 제목만으로 본다면, 이 책은 푸코의 『감옥의 탄생』,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 들처럼 기원에 얽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고고학적 작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광기를 합리로 바꾼 정신의학사의 결정적 순간’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은 네이버캐스트 연재(2014년 1월 1일~2015년 11월까지 총 42회)된 「정신의학의 결정적 순간」을 모체로 한다. 이 연재는 조회수 440만 회에 이르는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라는 정체성을 갖기 시작한 지 20년이 조금 넘은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에 몸담고 있는 하지현 교수다. 그는 서울대 의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캐나다 토론도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2008년에는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말인즉, 일탈과 반성을 통해 발전한 정신의학의 역동적인 역사를 다룬 책이다. 예컨대 머리에 쇠막대가 꽂힌 사고로 인해 밝혀진 전두엽의 비밀,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를 뽑은 의사 고튼, 서툰 손재주 덕분에 스트레스 호르몬을 발견한 과학자 셀리에, 정신병 증상을 모으고 분류해 객관적 진단 체계를 만든 크레펠린…… 이렇게 탄생과 얽힌 사건들의 역사는 점철된다. 주술적 치료, 격리와 감금, 무모한 수술로 쌓인 오해와 편견을 털어내고 합리적이고 유용한 과학으로서 정신의학이 정립되기까지 200년 ‘투쟁’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의 말을 조금 들어보자. “사건과 경험의 누적치가 현재를 구성하듯이, 현대 정신의학이 애매한 부분이 여전히 많은 이유도 인가의 정신세계를 설명하는 방법이 수없이 많고, 수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애써왔기 때문이다. 잘 적용되는 이론은 살아남았고, 일부는 세상의 변화와 새로운 발견으로 도태됐다. 이 책은 수백 년 동안 현대 의학의 체제에 들어와 자리 잡기 위한 정신의학의 노력을 담고 있다. 정신의학 발전의 전환점이 된 42개의 순간들을 뽑아내서 사진을 찍듯 몽타주를 작성했다. 이를 펼쳐놓고 보면 형체를 그리기 어려운 인간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해 뇌, 심리,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전방위에 걸쳐서 시도했던 사람들의 지난한 노력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한 ‘정신의학 발전의 전환점’이 된 42개의 순간들은 뭘까(표 참조). 그리고 이러한 순간들을 관통하는 의미는 또 무엇일까. 저자의 말을 장 별로 재구성해본다.

정신의학의 영역: 정신의학은 정신분석과 같이 무의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동시에 유전학, 약물학, 뇌과학과 같이 유물론적이고 객관적인 생물학적 이론으로 인간을 이해하려고 한다. 뇌와 마음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인간의 모든 행동을 만들어내며, 어느 하나만으로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이지의 사례는 마음의 문제로만 여기던 성격이 두뇌(전두엽)에 생물학적 기반을 두고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새로운 질환인가, 문화의 산물인가: 왜 식이장애가 현대사회에 만연하게 된 것일까? 1940년대 이후 서구사회의 ‘날씬함에 대한 추구’가 폭식증과 거식증이 정신질환으로 자리 잡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날씬함은 독립성, 자율성, 절제의 상징처럼 인식됐고, 미디어에서 보이는 모델이나 스타는 비정상적인 날씬함을 유지하면서 청소년과 젊은 여성은 그들을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된다. 항상 먹는 것을 생각하는 과민한 상태에서 지나치게 굵고 억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억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폭식의 방아쇠가 당겨진다. 그 폭식을 감당하지 못하기에 먹은 음식을 게워내고 그에 대한 죄의식이 악순환을 이루면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인간 심리와 행동의 조작: 데이비드 라이머의 비극적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후, ‘성 역할이나 성 정세성은 환경과 교육, 양육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론은 힘을 잃었다. 여성학이나 사회학 등의 분야에서 지지됐던 ‘남녀의 행동과 세상에 대한 인식, 심리 차이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기보다는 사회문화적인 영향이 훨씬 크다’고 보는 이론을 반증하는 사건이었다. 라이머의 경우 성 주체성은 남성이지만 사고로 성기가 손상되자 성 정체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만들고자 했다.
 

저주 혹은 고장: 누구나 간편하게 펼쳐볼 수 있으면서 공신력을 가진 가이드라인이 제공된 덕분에 이 진단 기준(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3판)은 정신과 병원에서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보건기관, 사회복지기관, 민간보험회사, 법정, 감옥, 연구를 위한 대학 등으로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국제질병분류보다 일차적인 진단 기준으로 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을 넘어서 세계로, 의학계를 넘어 전 사회적으로 일종의 기준점이 되고 매 사안마다 인용하는 책이 되다 보니 자연스레 ‘정신의학계의 바이블’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정신분석의 유효성: 최근에는 정신분석 중에 일어나는 감정 전이, 저항, 방어를 뇌과학으로 입증하려 노력하고 있다. 장기간 정신 치료를 받는 사람의 행동 패턴이 바뀌는 것을 뇌의 가소성(plasticity)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무의식’의 작동이 뇌에서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 하는 문제도 토론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정신분석과 뇌과학은 ‘마음’과 ‘뇌’라는 사실상 같은 기제를 서로 다른 언어와 관점으로 보고 있다는 시각(신경정신분석학)이 대두됐다. 정신분석은 최신 과학기술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현대사회에 적응하며 변화할 것이다.


인간의 정신능력: 지능과 관련, 찰스 머리도 주장했듯이 유전적인 부분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개인의 차이가 더 중요하며, 집단적으로 지능이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배척해야 할 인종주의적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집단적 차이가 있다는 대담한 학설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이런 것들이 자칫 과학이라는 탈을 쓰고 정치나 복지 정책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신 의학의 탄생』은 일단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데 성공했다. 적절한 스토리텔링이 가미돼 딱딱하지 않으며, 의학사의 저편을 훑어내면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효과적으로 복원해낸 게 주효했다. 과학 스토리텔링이 취약한 국내 사정을 감안하면, 대중들의 시선을 ‘정신 의학’으로 사로잡은 하 교수의 시도는 괜찮은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42개의 결정적 순간과 관련된 인물과 서지자료를 일목요연하게 덧붙여냈다면, 읽기에 더 유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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