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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세바와 대학 구조조정
토니 세바와 대학 구조조정
  •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 승인 2016.01.2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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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새해 들어 지인들의 추천으로 스탠퍼드대의 에너지 전문가인 토니 세바의 『에너지혁명 2030』을 읽었다. 이 책은 일종의 미래학 저술로 향후 15년 간 에너지와 운송수단 영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혁명적 변화를 다루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2030년이 되면 현재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는 물론이고, 원자력도 새로운 에너지원인 태양광에 의해 밀려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저자는 그때가 되면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는 대부분 전기자동차일 것이고 그것도 자율주행자동차(무인차)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전기자동차는 이미 국내에서도 상용화됐고, 자율주행자동차도 기술적으로 완성단계에 접어들어 이미 그 기술의 일부가 국내 생산 자동차에도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운송수단의 변화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에너지혁명에 대한 예측은 충격이라는 말을 빼고는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

태양광발전으로의 전환은 그야말로 에너지혁명이다. 이 혁명은 그 동안 지배적 에너지원이었던 화석연료나 우라늄의 고갈 때문이 아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도구를 만드는 데 사용할 돌이 고갈돼 석기시대가 끝나고 청동기시대로 넘어간 것이 아니듯이, 기술발전, 금융 및 비즈니스모델의 혁신 등으로 태양광발전의 단가가 화석연료나 우라늄을 사용해서 생산하는 전력의 단가보다 떨어지게 돼 무연탄 발전이나 원자력 발전은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에너지혁명이 일어나면, 산업구조는 물론 인력수요도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대학의 학사조직도 상당 수준 바뀔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의 구조와 환경운동의 의제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세상은 이처럼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사회체제를 만들어간다. 거꾸로 본다면, 기존 기술과 사회체제는 끊임없이 해체되고 대체된다. 지금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대학의 구조조정도 이러한 사회의 장기 변동에 대한 근거 있는 예측을 반영해 계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올해부터 시작되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육성사업(PRIME)’은 대학의 구조조정을 유도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의 취지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과 대학에서 학생들이 이수한 전공 간의 격차를 줄이는 데 있다고 한다. 취지는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취지가 좋다고 해서 좋은 사업이라고 할 순 없다. 좋은 취지로 시작됐지만, 추진방식이 잘못되면 그 결과는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업비 지원을 받기 위해 대학들이 무모하게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 있다. 아직 대학들이 만든 계획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전례에 비춰볼 때 교육당국이 설정한 기준(정원 대비 %와 인원수)을 맞추기 위해서 사실상 사업의 원래 취지와는 무관한 학사조직의 명칭 변경과 학과(전공)의 통합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학과 간판에 페인트도 마르지 않은 신설학과를 폐지한다고 해서 학생들이 반발한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사이비 구조조정이나 졸속한 구조조정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사회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데 대학의 학사조직이 그대로 유지될 수는 없다. 구조조정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장기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구성원의 합의를 거쳐서 추진해야 한다. 프라임사업을 비롯한 정부의 구조조정 유도사업은 기본적으로 대학 바깥에서 이뤄진 기획에 의해, 재정지원이라는 유인에 의해 추진된다. 그러다 보니, 재정지원에 눈이 먼 대학들은 장기적인 계획도 없이 무모한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계획 수립자들은 지금이라도 토니 세바의 책을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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