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5:05 (금)
교수들은 왜 ‘산학협력’이 ‘문서’에만 있다고 말하나
교수들은 왜 ‘산학협력’이 ‘문서’에만 있다고 말하나
  • 최성욱·이재 기자
  • 승인 2016.01.25 1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부 ‘포스트링크’ 예고했지만 여전히 ‘취업대책’에 초점 … 교육효과는?

전공은 묻지마 ‘단순노무’ 투입 ‘취업 프로그램’ 변질

교육부의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링크사업)이 처음 도입됐을 때가 2012년이었다. 이 사업이 내다본 기한이 5년이었으니, 올해는 사실상 링크사업 마지막 해다. 교육부도 지난 연말부터 ‘링크’의 후속으로 ‘포스트링크’(가제)사업을 준비하느라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링크사업은 대학을 지역산업체와 연결(linc)해 경제발전과 취업 미스 매치(불균형) 현상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공언했지만, 일선 교수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예컨대 교육부와 대학은 산학협력을 전담하는 ‘산학협력중점교수’를 채용하고 산업체 연계교육을 끊임없이 시도해왔지만, 대학교육을 맨 앞에서 담당해 온 전공교수들은 ‘교육효과 0’ ‘문서로만 존재하는 산학협력’이라며 날을 세웠다. 이런 목소리는 흡사 ‘공학교육인증’이 받았던 비판과 비슷하다. 문서로는 완벽해보이지만 실제 교육현장에 적용할 경우 ‘미스매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 일러스트 돈기성

특히 교수들이 지적하는 현행 산학협력의 가장 큰 문제는 본래 취지인 학부교육 내실화와 취업률 제고에 도움이 되긴커녕 한 학기 정도의 교육과정이 ‘낭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학협력의 실제 현장은 어떤 모습이길래 전공교수들은 이처럼 쓴소리를 쏟아내는 걸까?

경상지역 국립대의 한 IT 분야 공과대학 A교수는 지난해 여름방학 현장실습 지도를 나갔다가 한숨만 쉬고 돌아왔다. 사업장이 뜻밖에도 화학공장이었기 때문이다. A교수의 제자는 IT 분야와 무관한, 화학재료를 섞는 작업(브랜딩)을 하고 있었다. A교수는 제자에게 딱히 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IT개발자는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많이 알아야 한다”며 격려했다. 그러자 이 제자는 “저도 이런 업무가 일생을 살아가는 데 최소한 도움은 될 거라 생각하고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들은 씁쓸하게 웃으며 헤어졌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물류창고였다. A교수는 또 다른 제자가 물류창고의 어떤 공정시스템(IT)에 참여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IT분야의 물류시스템 라인을 돌아봤지만 제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제자를 발견한 곳은 물류창고였고, 이번에도 제자는 IT의 어떤 분야와도 접목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제자는 허리 높이쯤 되는 제품 상자를 넣었다 뺐다하면서 창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A교수는 격려 대신 1시간 가량 제자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돌아왔다. A교수는 “남학생들은 창고 정리처럼 힘 쓰는 일이라도 하지만 여학생들은 대부분 차를 타거나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며 목격담을 털어놨다. 실습현장을 둘러보고 온 A교수는 학교에 제출할 ‘현장실습 방문지도 보고서’에 이 같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쓸 수 없어서 적당히 그럴듯한 말을 찾아내 써넣었다.

A교수의 경험은 그간 교수들이 지적해온 ‘문서로만 존재하는 산학협력’의 대표적인 사례다. 대학의 산학협력단장(산단장)들도 산학협력이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산단장들은 하나같이 산업체의 부담을 해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산업체도 학생들의 전공과 무관한 업무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말이다.

산단장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산학협력에 소극적인 업체들의 경우 협력 초기단계부터 대학으로부터의 산학협력 요청을 반기지 않는다. 각종 규제 탓이다. 특히 링크사업의 경우 대학에서 파견된 현장실습 인력(학부생)은 업체 입장에선 고급 인재이기 이전에 한 명의 수습사원이다. 따라서 대다수 군소중소기업은 현장실습 인력을 ‘교육’시키기 위해 교육전담직원을 별도로 배정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현장실습 기간이 4~8주로 짧은 탓에 일이 손에 익을 때쯤이면 학교로 돌아가버린다는 점도 업체 입장에선 ‘교육’에 공을 들일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들은 정식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업체의 내밀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 학생들을 단순노무에 투입하는 이유다.

현장실습의 교육효과를 높이려고 실습기간을 최소 4개월에서 최대 6개월까지 넓힌 대학도 있지만, 거꾸로 대학은 이 조항 탓에 ‘파견 실적’이 낮아져 평가점수에 손해를 보게 된다. 교육부의 링크사업을 비롯한 대학의 산학협력이 대체로 기술협력보다는 ‘취업’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이 같은 학생-업체 간‘미스 매치’가 반복되고 있다. 당초 대학과 협력을 통해 지역산업 인력수요 ‘미스 매치’를 해소하겠다고 출범한 산학협력이 오히려 당사자들 사이에 ‘미스 매치’를 불러일으키는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초점이 온통 ‘취업’에 쏠린 현행 산학협력 모델로는 대학-산업체 간 상생이 요원하다는 게 일선 교수들의 진단이다. 교수들은 대학이 보유한 연구·기술을 지역산업체에서 상용화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이 과정에 참여한 기술인력(학생·연구원)이 해당 업체 ‘취업’으로 이어지는 산학협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수도권 사립대의 한 이공계 교수는 “링크사업과 같은 형태의 산학협력은 정부 지원금이 있어서 하는 것이지 대학-산업체 어느 한쪽도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다”며 “국고 지원이 끝나면 산학협력도 끝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학생들에게 단순노무의 인턴십 경험을 얻게 해주려는 것이라면 산학협력이라는 이름을 ‘취업지원 프로그램’으로 바꿔야 문제가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그러나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를 ‘극단적 사례’라고 일축하고 있다. 교육부 산학협력정책과의 한 담당자는 링크사업을 예로 들며 “현장실습의 경우 교육부도 질적인 수준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고 중간평가 등을 통해 개선해왔다”며 “일부 극단적인 부실사례로 전체를 일반화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대학의 체질이 바뀌고 교수사회의 관심사가 (학생 취업 쪽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사실”이라며 “포스트링크사업에서는 기업이 대학의 우수한 인재를 스카웃하도록 유인하는 제도적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포스트링크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5년간 진행된 사업평가를 정리하고, 관계부처와 재정 협의(예산 편성)를 위한 준비과정에 돌입했다. 사업예산이 확정되는 등 행정절차가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이르면 내년부터 ‘포스트링크’사업이 출범할 예정이다.

최성욱·이재 기자 cheetah@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