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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노래를 ‘행복을 위한 철학’과 엮어낼 수 있었던 이유
슬픈 노래를 ‘행복을 위한 철학’과 엮어낼 수 있었던 이유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1.20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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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객 김광석과 만난 어떤 철학의 표정
▲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앞에 설치된 김광석 부조상.

김광석의 노래와 철학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할 만큼 절절한
사랑에서 하이데거를 만나고, 사랑했지만 떠날
수밖에 없는 슬픔 속에서 흄을 만난다.


“곱고 희던 두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막내 아들 대학 시험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큰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감에/모두가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김광석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중에서


가객 김광석을 가리켜 그는 ‘노래하는 철학자’라고 명명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로 있는 인지철학자 ‘김광식’이다. 스스로 ‘문화철학자’라고 말하는 김광식 교수가 ‘노래하는 철학자’ 김광석의 노래 속 철학적 화두를 통해, 고대·근대·현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12인의 시선으로 슬픔을 넘어선 행복을 위한 철학 콘서트를 연다. 이 콘서트는 다행히 책으로 만날 수 있어, 표를 예매하거나 오래 줄 서서 젊은이들 사이에 엉거주춤 서 있을 필요가 없다. 『김광석과 철학하기』(김영사 刊)가 바로 그 책이다.


아니 왜 하필 노래와 철학인가 하고 의문을 던질 수 있다. 더군다나 가객 김광석을 통해 무거운 철학 담론을 펼치려하다니? 그래서 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왜 노래와 철학인가? 아픈 마음을 엮고 푸는 씨줄과 날줄이 감성과 이성이니까. 노래는 감성으로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철학은 이성으로 아픈 마음을 헤아려준다. 마음이 아플 때 노래를 들으면 아픔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프다. 아픔의 증상만 가라앉혔을 뿐 아픔의 원인을 찾아 해결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픔의 원인을 찾아 해결할 수 있는 건 감성이 아니라 이성이다.” 노래가 감성이라면, 철학은 이성이다, 이런 말이다.


그런데 왜 김광석일까. 왜냐고? “슬프니까. 슬퍼서 오히려 마음속 슬픔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슬픔이 슬픔을 치유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슬픈 노래를 생뚱맞게 행복을 위한 철학과 엮는가? 행복을 위한 철학은 불행한 이들을 위한 철학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이들은 행복을 위한 철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미 행복하기 때문에.” 그래서 책 부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12가지 행복철학’이다. 어떻게? 문화철학자 김광식은 김광석을 호명해 이렇게 말한다.

김광석의 노래와 철학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할 만큼 절절한 사랑 속에서 ‘죽음’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하이데거를 만나고, 사랑했지만 떠날 수밖에 없는 슬픔 속에서 ‘의심’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흄을 만난다.
짧게 잘린 머리를 보고 마음까지 굳어지는 슬픔 속에서 ‘비판’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칸트를 만나고,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홀로 보내는 슬픔 속에서 ‘자유’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헤겔을 만난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라는 네 글자를 남몰래 쓰는 슬픔 속에서 ‘혁명’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마르크스를 만나고, 어린아이에게서 어른의 모습을 보는 슬픔 속에서 ‘초인’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니체를 만난다. 김광석은 어디선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하나의 동물원이라 생각하는 의미에서 우리 그룹에 동물원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어느 철학자가 그랬죠. 인간은 동물에서 초인으로 가는 중간의 존재라고요. 우리는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창살의 동물원에 갇혀 창살 밖의 자유로운 세상을 동경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니체의 초인으로 자신의 노래 철학을 이야기하는 가수, 어쩌면 그는 노래하는 철학자다. 그는 초인을 꿈꾸며 외로운 줄타기를 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다. 때로는 그에게서 자유를 그리워하는 동물 냄새가 난다.

그렇다고 문화철학자 김광식은 감히 ‘김광석의 철학’을 시도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만 ‘김광석과 철학의 만남’을 엿보고자 한다. 그는 이것을 ‘김광석과 김광식의 만남’이라고 부른다. “김광석은 슬픔으로 슬픔을 치유하고, 김광식은 생각으로 생각을 치유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접근한다. 김광석의 「거리에서」를 놓고 김광식은 ‘행복의 철학’의 단초를 이끌어낸다. 물론 지렛대는 ‘아리스토텔레스’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는 ‘이상의 철학’을 읽어낸다. 이번엔 플라톤이 등장한다. 「나무」를 통해 ‘쾌락의 철학’을 탐구한다. “몸의 아픔을 고치지 못하는 의술이 소용없듯이, 마음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는 철학은 아무 소용없다”라고 말한 에피쿠로스가 초대됐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이성의 철학’을 환기한다. ‘코기토’의 철학자 데카르트가 조연이다. 「사랑했지만」에 이르면 데이비드 흄을 통해 ‘의심의 철학’으로 나아간다. 「이등병의 편지」는 어떤가. 이건 ‘비판의 철학’으로 초대한다. 칸트가 길안내를 한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헤겔과 함께 ‘자유의 철학’을 설파한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마르크스의 언어로 ‘혁명의 철학’을 조명한다. 「슬픈 노래」는 ‘초인의 철학’으로 가는 다리다. 니체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죽음의 철학’을 하이데거와 함께 어루만진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에서는 롤스를 불러내 ‘정의의 철학’을 모색한다. 마침내 12장에서는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의 그 절절함 속에 깃든 ‘몸의 철학’을 건져낸다. 누구를 통해? ‘김광식’ 자신을 통해, ‘김광석’을 통해.

「말하지 못한 내 사랑」에서 김광식은 자신의 문화철학을 그려낸다. “김광석의 노래에 담긴 ‘짝사랑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철학은 김광식의 ‘몸의 철학’이다. ‘짝사랑의 철학’이 짝사랑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몸이라고 말한다면, ‘몸의 철학’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것을 가리켜 ‘매우 낯선 철학적 주장’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1990년대 말에 김용호(현 성공회대 교수)가 선보인 『와우: 김용호의

영상화두』와 『몸으로 생각한다』에서도 시도된 바 있어, ‘낯선’ 것은 아니다. 물론 인지생물학과 사이버네틱스와 같은 인지과학을 근거로 그 주장을 펼친다는 점에서는 ‘낯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광식은 자신의 ‘몸의 철학’을 뒷받침해 줄 인지과학적 근거를 마투라나의 자기생산체계이론이라는 인지생물학(앎이란 곧 효과있는 행동이다, 생물의 본성은 자기생산이다)에서, 그리고 푀르스터의 2차 등급의 사이버네틱스(몸에 밴 계산 방식을 계산하는 방식을 바꿔야 행동이 변한다, 생명 체계는 비범한 기계다, 신경 체계도 비범한 기계다), 또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인지문화철학까지로 확장해 찾아낸다. 편견을 깨려면 몸에 밴 행동양식을 바꿔야한다고 주장하면서.


김광석 때문에 문화철학자가 면을 세울 수 있었고, 김광식 때문에 가객은 ‘노래하는 철학자’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철학’이 추상의 언어로 된 옷을 입은 어렵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나 아픔, 슬픔처럼, 노래처럼, 우리가 들이마실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김광석과 김광식이 입증했다. 덧붙인다면, 이 책은 서울대와 서울대 평생교육원에서 여러 학기 강의한 내용이다. ‘교양강의’의 한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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