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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에 대한 통찰과 내면세계의 소설적 확장
식민지 시대에 대한 통찰과 내면세계의 소설적 확장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1.20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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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47강. 홍정선 인하대 교수 ‘염상섭의 『만세전』·『삼대』’
▲ 염상엽

조선에 ‘만세’가 일어나던 전해 겨울이다.
 세계 대전이 막 끝나고 휴전 조약이
성립돼서 세상은 비로소 변해진 듯싶고,
세계 개조의 소리가 동양 천지에도
떠들썩한 때이다. (중략) 동경 W대학 문과에
재학 중인 나는 때마침 반쯤이나 보던
연종 시험을 중도에 내던지고 급작스레
귀국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해 가을부터
해산 후더침으로 시름시름 앓던 아내가
위독하다는 급전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만세전』 시작 부분에서

‘문화의 안과 밖’시즌2 고전읽기가 지난 16일(토)부터 마지막 섹션인 ‘한국 현대 문화’ 첫 번째 강연을 시작했다. 제7섹션 ‘한국 현대 문화’는 앞으로 서정주의 『미당 시전집』(김우창), 김동인·이태준·김유정·김동리 단편선(이남호),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정지용의 『정지용 시전집』(유종호) 강연을 남겨놓고 있다.
횡보 염상섭의 문제작으로 잘 알려진 『만세전』과 『삼대』는 식민지 민족적 알레고리로도 읽혀왔다. 이날 강연을 맡은 홍정선 인하대 교수는 서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문학의 시대>를 창간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고 1987년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1996년 제8회 소천비평문학상, 1997년 제42회 현대문학상(평론부문)을 수상했다. 한신대 교수(1982~1992)를 역임했고 <문학과 사회> 편집동인(1998~2000), 문학과 지성사 기획위원과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내 생의 중력』(엮음, 2011), 『인문학으로서의 문학』(2008), 『카프와 북한문학』(2008), 『프로메테우스의 세월』(2008), 『신열하일기』(1993), 『역사적 삶과 비평』(1986) 등이 있다.
홍 교수는 염상섭의 문학적 태도를 기존의 ‘중간파적 시각’에서 이해하는대신,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건의 양면성을 고려하는 데’서 오는 것으로 설명한다. 홍 교수의 강연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염상섭의 『만세전』에서 『삼대』에 이르는 소설적 도정은 단선적인 도정이 아니라 이 시기 그의 모든 소설들이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도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염상섭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작품은 「표본실의 청개구리」, 『만세전』, 『삼대』이며, 이 대표적인 소설들은 모두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등장인물의 내면세계에 대한 심화된 서술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소설사에서 이 작품들처럼 식민지 시대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형상화하면서 동시에 인물의 내면세계를 확대시킨 작품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같은 점에서 염상섭의  『만세전』과 『삼대』는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대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소설
염상섭의 『만세전』과 『삼대』는 식민지 시대에 대한 ‘객관적 기록’입니다. 식민지 시대에 출간된 다른 어떤 소설보다도 단연 뛰어난 ‘객관적 기록’입니다. 염상섭은 이 두 편의 소설에 식민지 시대의 우리나라 모습을 압축적으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특정한 당파적 입장에 서서가 아니라 비교적 편견 없이 당대의 한국사회를 그려놓았습니다. 뤼시엥 골드만은 『소설 사회학을 위하여』에서 발생론적 차원에서 소설(Novel)이란 장르의 출현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그것은 염상섭의 소설이 당대사회에 팽배해 있던 불만에 소설적 표현이란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중요한 소설이 됐다는 사실과 그 소설적 표현의 형식이 현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방식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만들어줍니다.

염상섭은 소설가로 첫 발걸음 떼기 시작하려던 시기의 우리현실을 가리켜 ‘일체의 긍정이 아니면 일체의 부정’이란 길밖에 선택할 수 없는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흑백논리로 판단하지 않아도 될 다른 선택의 길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선택이 보이지 않는 시대라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선택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문주의자로서의 염상섭의 면모를 생생하게 느끼고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긍정이 아니면 일체의 부정’밖에 허용하지 않는 시대는 불행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더욱 불행하다는 것을 소설가 염상섭은 『만세전』을 쓰던 시기에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소설적 출발을 불행한 시대를 불행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기록한 이야기인 「표본실의 청개구리」, 「암야」, 「제야」 등으로 시작했던 것입니다. 일본사람들에 대한 일방적 분노를 억제하면서 우리자신의 부정적 모습까지 냉정하게 그려냈다는 점은 놀라운 일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염상섭이 당대의 다른 소설가들보다 훨씬 뛰어난 소설가적 자질을 가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동시에  그의 소설이 지닌 우수함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염상섭은 그가 파악한 식민지 현실의 모습을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란, 상당히 과격한 말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제해 왔던 감정을 “에잇! 뒈져라! 움도 싹도 없이 스러져버려라! 망할 대로 망해 버려라!”라는 비명 같은 외침으로 폭발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염상섭의 외침 속에는 한편으로는 그의 초기 소설을 물들이고 있는, 암담한 현실로부터 오는 비관주의가 자리 잡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림하는 일본에 대한 분노의 감정과 함께 구태와 악습으로 살아가는 조선민족은 구제불능일지도 모른다는 탄식의 감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젊은 날의 염상섭이 『만세전』에서 보여준 이러한 폭발적 감정은 『삼대』에 이르면 훨씬 부드러워지긴 합니다만 그런 감정의 상태였기 때문에 1920년대 초의 염상섭은 1930년대의 염상섭에 비해 좀 더 강력하게 신생에 대한 정서적 열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민족현실이 부정되고 새로운 민족현실이 전개되기를 바라는 그 열망을 염상섭은 『만세전』에서 “사태가 나든지 망해버리든지 양단간에 끝장이 나고 보면 그중에서도 혹은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나은 놈이 생길지도 모를 것이다. ……”란 말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염상섭은 『삼대』에서 식민지 사회의 모습을 비교적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줬습니다. 가족사 소설을 연상시키는 ‘三代’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염상섭은 이 소설 속에서 구한말 세대와 개화기 세대와 식민지 세대의 가족사를 순차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염상섭은 장시간에 걸친 가족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세 세대가 동시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몇 달 동안에 벌어지는 일들을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시간적 흐름은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 반면 인물들의 긍정적 혹은 부정적 성격은 두드러져 보입니다. 이 점과 관련해 유종호는 『삼대』가 가족사 소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삼대』에는 ‘삼대’에 해당하는 시간의 흐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삼대’를 구성하는 첫 인물인 조의관의 개인사와 그가 이룩한 축재의 내력이 대단히 불투명합니다. 『삼대』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가족의 역사가 아니라 삼대를 구성하는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 이 세 인물의 긍정적인 행태와 부정적인 행태, 그리고 이들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마찬가지 행태들입니다. 『삼대』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들은 대체로 작가 자신이 『만세전』을 비롯한 여러 소설 속에서 발전시켜온 인물들입니다. 일본 유학생 신분인 조덕기, 타락한 기독교인인 조상훈, 유부남과의 연애사건을 일으키는 홍경애와 김의경 같은 주요인물의 경우 우리는 유사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인물들을 이전의 다른 소설 속에서 여러 명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만세전』의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과 이 소설의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의 확대   
염상섭이 한국소설의 발전에 기여한 가장 큰 공적 중의 하나는 개인의 내면세계를 소설의 주요한 관심사로 끌어들여서 이에 대한 묘사를 발전시켰다는 사실입니다. 『만세전』의 주인공 이인화는 아내와의 관계 등으로 말미암아 우울증 비슷한 증세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점과 관련해 김우창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광수의 『무정』이나 『재생』에서는 “도덕이나 사회의 문제가 내면에서 파악되지 못하고 또 이러한 문제를 삶의 내면적인 원리로서 지닌 인물이 빚어지지 못”하고 있는데 염상섭의 경우는 달라서 “염상섭의 『만세전』을 이해하는 알맹이는 바로 주인공의 여행을 부르는 개인적인 사건과 사회전체의 모습이 어떻게 맺어지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라고 말입니다. 염상섭이 소설이 보여준 내면세계의 확장은 그가 반성적 지식인으로서 균형 잡힌 시각을 지닌 소설가였다는 사실과도 깊은 관

계가 있습니다. 염상섭의 균형 잡힌 시각과 태도는 『삼대』에서 수원댁이 저지른 비소중독 사건과 아버지가 저지른 유언장 위조 사건을 조덕기가 이성적으로 처리하는 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염상섭은 이렇게 『삼대』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며 돈의 문제, 인간에 대한 판단, 풍속과 이념에 대한 好惡, 민족현실에 대한 인식 등 거의 모든 문제에서 일방적 긍정이나 부정을 절제하는 조덕기란 인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특정한 방향으로 쉽게 경도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조덕기가 이렇게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는 것은 염상섭이 가진 일종의 ‘절충적 시각’, ‘중간파적 시각’의 산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약간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염상섭이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는 것은 애매한 입장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 서서 사건의 양면성을 고려하는 데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염상섭은 이런 균형 잡힌 시각 때문에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며 망설이고 번뇌하는 인물을 그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삼대』의 마지막 장면에 묘사된 주인공 조덕기의 내면세계도 우리는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조덕기의 내면세계는 순수하게 개인적인 의식으로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그의 내면세계는 사회와의 관계 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입니다. 염상섭은 이렇게 자신의 소설 속에 개인의 내면세계라는 영토를 개척함으로써 우리 소설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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