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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엇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선회하려는 것인가?
왜, 무엇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선회하려는 것인가?
  • 교수신문
  • 승인 2016.01.2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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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젠더 허물기』 주디스 버틀러 지음|조현준 옮김|문학과지성사|431쪽|25,000원

 

▲ 주디스 버틀러 사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젠더는 정확히 어떤 사람‘인’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가진’ 것도 아니다. 젠더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생산과 규범화가 그 젠더 특유의 호르몬, 염색체, 심리적인 것과 수행적인 것 사이의 형태들을 따라 생겨나는 장치다. 젠더가 언제나 전적으로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토대를 의미한다는 가정은 요점을 놓치고 있는데, 요점은 그런 일관된 이분법의 생산은 우연적인 것으로 어떤 대가를 치러야만 나타나며, 그 이분법에 꼭 들어맞지 않는 젠더 조합도 그것의 가장 규범적인 사례만큼이나 젠더의 일부라는 것이다. 젠더의 정의를 젠더의 규범적 표현물과 융합해버리면 자기도 모르게 젠더의 정의를 규제하는 규범의 권력을 강화하게 된다.―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 중에서

국역본 『젠더 트러블』(2008)이 나온지 7년 만에 『젠더 허물기』(2015)가 출간됐다. 주디스 버틀러를 학계의 스타로 만든 『젠더 트러블』이 1990년, 『젠더 허물기』가 2004년 발간된 데 비해 국내 번역은 다소 늦었다. 『젠더 허물기』는 버틀러가 『젠더 트러블』 이후 계속 주장해 왔던 젠더를 허물고자 한다. 왜, 무엇 때문에, 또 어떤 방향으로 선회하려는 것인가.

『젠더 허물기』는 젠더를 넘어서서 ‘인간’이라는 철학적 주제에 천착한다.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을 인간으로 인식하게 하는 지식체계는 무엇인지, 또 인간을 인간으로 인정하게 하는 규범적 권력 담론은 무엇인지를 말하려 한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응당 누려야 할 ‘삶의 가능성’이나 ‘생존 가능성’, ‘살 만한 삶의 가능성’은 이 책에서 주요 용어가 된다. 성적 비결정성이나 불확정성으로 고통 받는 현실의 인터섹스와 퀴어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인간’이라는 관념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인식소가 무엇인지를 휴머니즘이 아닌 정치학의 맥락에서 논의하는 것이다.

개인의 삶은 개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 따라서 사회 속의 개인은 상호 의존성과 상호 관계성으로 허물어진다. 과거 개별 젠더의 계보학적 구성을 이론적으로 고찰하던 버틀러가 이제는 그 인간이 더 이상 사회 속에 독자적으로 설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현실의 상호성과 관계성 속에 있는 주체의 ‘구성적 타율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현실의 젠더는 이처럼 상호 의존과 상호 관계에 열려 있어서 자율적이거나 독립적이지 못하다. ‘나’는 언제나 ‘우리’ 앞에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한편 모든 범주적 의미화에 저항하던 버틀러의 인간적 면모도 드러난다. 유대인, 여성, 철학자, 퀴어인 버틀러는 스스로를 젠더의 문제아, 철학의 타자라고 칭한다. 『젠더 허물기』를 출간한 후 나온 폴 자데르만의 다큐 「주디스 버클러, 제3의 철학」에서도 알 수 있듯 버틀러는 제도 교육에 저항하던 문제아였고, 사회적 시선 때문에 불안과 공포를 겪던 퀴어였다. 제도 교육이나 젠더 규범에 저항하며 술집과 골방을 전전하던 문제아는 학제적 제도로서의 철학에 저항하고 권력 담론 체계로서의 젠더를 문제 삼으며 ‘인간’은 어디까지인가를 근본적으로 사유한다.

‘나’는 단독자이거나 유일자이기보다는 구체적 맥락에서 의미화 되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형성된 구성물이라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속의 관계적 공동체 ‘우리’ 속에서 의미화 될 수 있다. 『젠더 허물기』에서 제시되는 ‘우리’는 남성과 다른 대우를 받아 왔고 공적인 발언의 중요성을 의심 받아왔으며 합의를 이뤄낼 가능성을 평가절하 당했던 여성일 수도 있고, 비규범적 방식으로 젠더를 수행한 퀴어일 수도, 비제도적 방식으로 철학을 공부한 철학의 타자들일 수도 있다.

젠더에서 인간으로, 나에서 우리로 사유를 확장한 『젠더 허물기』를 읽어내는데 세 가지 관점을 추천하고 싶다. 첫째, ‘나’에서 ‘우리’로 존재론적 인식론을 확대하는 기반이 되는 사회성과 관계성, 그리고 상호의존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둘째, 이론적 정교함에서 현실적 정치성으로 선회하면서 현실 속의 LGBTQI(Lesbian, Gay, Bisexual, Questioning/Queer, Intersex)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정치 윤리적 성찰 부분을 중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문화 시대에 차이를 수용하는 올바른 방식으로서 ‘문화 번역’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정치윤리
나는 우리로 허물어진다.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인식, 우리를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이미 나와 우리의 외부에 있다. 우리의 존재론적 의미가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관계, 우리가 사는 사회와 문화의 배경과 맥락,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호감이나 성적 경향과 관련돼 있고 그런 의미에서 이미 우리는 우리의 외부에 있다. 그것은 나를 벗어난 내 옆, 내 밖에서 비롯된 나의 정체성이고 나를 벗어난 ‘탈아적(ec-static)’ 존재론이기도 하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거나 결정한 적 없는 세상에 던져져 그 세상의 인식론과 판단 기준으로 이해되는 존재라면 우리 존재의 근원은 우리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
차이에서 오는 도전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인식가능성의 척도 자체를 문제 삼는 차이를 윤리적으로 대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나와 다르다는 것, 그 차이가 내 존재에 위기와 문제를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윤리적 방식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또한 제도 의학의 관점으로 인터섹스인 사람들을 강제로 교정수술하는 관행을 비판하는 신 젠더 정치학과도 맥락을 함께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데이비드·브렌다의 실제 사례는 그 비판적 관점을 심층적으로 조망한다.

차이의 윤리적 대면이라는 주제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정치윤리의 문제로 나갈 계기를 마련한다. 젠더 혼란을 겪던 아이는 다락방에서 어머니의 옛 철학책을 독학하다가, 또 다니엘 실버라는 랍비의 강의를 듣다가 철학에 빠졌다. 비정통적 방식, 비제도적 교육, 비주류 젠더를 실제로 겪은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인터섹스나 트랜스섹스, 젠더 트러블의 영역에 놓인 퀴어 문제의 논의로 확장된다. 유대계 이민자 후손, 비학제적 교육을 받은 철학의 타자, 명료한 정체화가 불가능한 퀴어로 살았던 버틀러는 비제도적 철학과 비규범적 젠더라는 ‘타자적 위상’에 대한 정치 윤리학적 시선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버틀러는 다문화 시대에 차이를 마주할 윤리적 방법으로서 ‘문화 번역’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문화 번역은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 이후 버틀러가 문화 상대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해온 개념이다. 시간변경선과 국가경계선을 넘는 글로벌 사회, 지구촌 네트워크 속에 그야말로 상호 의존성과 상호 관계성을 체현하고 있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문화 번역’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변환 속에 일어나는 타자와의 대화적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문화번역의 변환 과정은 기존의 재현 체계를 위협하고 새로운 경계 넘기와 교섭의 가능성을 모색할 가능성이기도 하다.

 

 

 

조현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영문학
경희대에서 주디스 버틀러와 안젤라 카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안티고네의 주장』을 번역했다. 지은 책으로는 『젠더는 패러디다』,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근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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