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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나의 강의시간
  • 교수신문
  • 승인 2002.1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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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7 10:04:14

옛날 옛적에 한 학기 내내 두세번 강의를 하는 것으로 학기를 마감하는 선배교수들이 있었다는 야담이 지금도 이야기되고 있다. 교수가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 교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배움이 전수되던 시절, 그 학기의 빈 공간들을 우리의 선배들은 강의실 바깥에서 독서와 연애 등 산 체험으로 메꾸었다. 그러한 교수상은 이제 아득한 시절의 신화가 되고 말았다.

정말 세상 많이 변했다. 이제 학생들의 출석은 전자로 체크가 되고 교수는 중간고사의 성적을 반드시 공개해야 하며 학기말에는 강의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쓴소리도 들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교수학습센터가 설립돼 강의를 잘하는 법부터 시작해 각종 강의 기법을 계발하는가 하면, 교수의 강의도 비디오로 녹화해 강의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권장하고 있다.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이러한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모든 것이 계량적으로 평가되는 이 시절에 상상력을 근간으로 하는 인문학 강의를 어떻게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필자 뿐만 아니라 모든 인문학 교수들이 뼈저리게 겪고 있는 현안임에 틀림없다. 문학텍스트의 확장을 통해 비문자텍스트를 문학연구와 교육에 편입시키는 것, 매체학과 문화학으로서 문예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것, 대충 이러한 방향이 우리의 탈출구로서 얘기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수년 전부터 개설된 이번 학기 ‘표현주의 영화’ 강의에서 나는 우선 학생들에게 표현주의의 본질을 이해시키기 위해 3주 정도의 강의를 통해서 서양 문화사의 포괄적인 맥락에서 표현주의를 설명했다. 그리고 이어 표현주의가 나타나고 있는 미술, 건축, 음악, 문학, 연극 등 분야별로 조를 편성해 학생들로 하여금 그룹연구를 하게 한 후 발표와 토론을 시켰다. 이어서 표현주의 영화들을 감상하면서 이제까지 배우고 공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심도있게 영화텍스트를 분석하는 훈련을 시키고 있다. 강의 제목이 ‘표현주의 문학’이었다 해도 수업방향은 비슷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모든 문화현상들을 매체로 파악하면서, 매체와 매체 상호간의 소통과 변형과정을 중시하는 것이 새로운 인문학의 주류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이 파편적으로 전수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뉴미디어를 통해 너무 많은 지식이 범람하고 있는 이 시대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은 어느 때보다 중시될 수밖에 없다. 나는 학생들에게 고립된 지식 자체만을 전달하고 싶지는 않다. 그 지식이 지금 여기에 서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가 성찰하는 연습이야 말로 이 시대 더욱 더 강화돼야 할 교육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네트워킹되는 디지털 문화시대에 인문학 강의를 하는 교수는 지식을 경영하고 기획하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문학과 영화와 미술과 음악과 건축과 연극이 연계되는 표현주의 강의, 나아가 인문학 강의는 다학제적이고 쌍방향적인 소통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 혼자 다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때로는 영화학자를, 때로는 미술가를 강의실에 초대하면서 강의기획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다가오는 학기말고사는 두 시간 동안 표현주의를 빌미로 한 인문학 에세이 쓰기이다. 매체 시대의 인문학 강의는 단순히 멀티미디어를 투입시키는 강의가 아니라, 차가운 매체에 진정으로 따뜻한 상상력의 옷을 입히는 작업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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