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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사적 입지와 서구적 근대극복의 입론 … 茶山學이 대답해야 할 질문들
사상사적 입지와 서구적 근대극복의 입론 … 茶山學이 대답해야 할 질문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1.04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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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와 사회학자가 진단한 ‘21세기 다산학 연구의 방향과 과제’

 

정약용에 의한 『주례』의 조선적 변형은 단순한 외래이념의 토착화를 넘어 보편이념의 창의적 확산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것이다.

▲ 전남 강진군이 2009년 제작한 다산 정약용의 새로운 초상화. 현대 한국화단에서 가장 빼어난 수묵인물화가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전통문화학교의 김호석 교수가 치밀한 고증을 거쳐 가로 96cm, 세로 178cm의 규격으로 완성했다.

지난달 22일(화) 경기도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형관 대회의실에서 이색적인 열기가 가득했다. 18세기 실학의 거목 다산 정약용을 불러낸 자리였다.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말처럼 다산 연구 논문은 2천편이 넘어섰다. 그렇다면 어떻게 ‘21세기 다산학’을 모색할 수 있을까.

열기는 이런 탐색에서 비롯됐다.‘21세기 다산학 연구의 방향과 과제: 茶山 시대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등연구소 인문정신문화연구센터(센터장 최덕진) 학술 심포지엄이었다.
 
발표된 논문들은 「다산 상서학 연구」(조성을 아주대·역사학), 「실학 이후의 다산학 연구」(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철학), 「다산의 贈言帖 자료와 맞춤형 제자 교육」(정민 한양대·국문학), 「제도와 개혁: 정약용 경세론의 세계사적 의의」(송재윤 멕마스터대·역사학), 「정약용 시문의 繫年·互照를 통한 定本 제작 방안」(심경호 고려대·한문학), 「다산 연구의 계보학과 21세기적 방향에 대한 일고」(정일균 서울대·사회학), 「다산 『논어고금주』와 동아시아 유학」(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역사학) 등이다. 이 가운데 송재윤 교수와 정일균 교수의 글에서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제도와 개혁: 정약용 경세론의 세계사적 의의」:
송재윤 멕마스터대·역사학

동북아시아에서 2천년간 지속된 유가경학의 역사 속에서 정약용의 『경세유표』가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 나아가 정약용 정치사상의 세계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국제학계에 정약용 사상을 소개하고 그 의의를 설명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 두 질문에 대한 세계사적 답안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정약용의 『경세유표』는 우선적으로 경전적 기초 위에 治國의 經世觀을 세운 대표적 사례로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경세유표』는 유가경학 및 전통시대 동아시아 憲政思想의 구체적 발전, 변형 및 확산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경세유표』는 유교이념의 지역화, 토착화 및 문화적 적응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인 것이다. 구체적 ‘사례연구’의 방법을 통해 조선 사상사의 국제적 의미를 조명하는 것은 한국학의 국제화 및 세계화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西周(기원전 1046~771경) 시대 周公(기원전 11세기경)의 통치이념과 관료행정의 전범이 제시된 『주례』는 특히 동아시아 정치개혁가들에게 공동의 정치언어를 제공했다. 중국 북송대 신법개혁의 기수 王安石(1021~1086)이 국가개혁의 청사진으로 활용한 이래, 『주례』는 동아시아 정치사에서 憲政的 지위를 얻었다. 정약용은 『주례』라는 당시의 보편적 통치이념을 조선 정부조직의 개편을 위한 이른바 개혁의 邦禮로 재해석한 것이다. 정약용에 의한 『주례』의 조선적 변형은 단순한 외래이념의 토착화를 넘어 보편이념의 창의적 확산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것이다.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정약용의 위치를 밝히기 위해선 그가 『경세유표』 저술에 활용한 『주례』 주석사의 성과를 밝혀야 한다.

『경세유표』는 중국 북송대 왕안석의 신법개혁 이후 전개된 『주례』 경학사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주례』가 제시하는 보편적 통치의 이념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정약용의 연구를 위해선 동북아시아 학술공동체의 사상적 교류 및 문화교섭의 역사를 파헤쳐야 한다.

조선시대 사상사에 관련된 영어권 한국학계의 성과를 살펴보면, 크게 조선성리학의 주요 주제와 성과를 소개하는 철학사적 저작들과 유형원의 『반계수록』을 분석해 조선조의 사상 및 제도를 파헤친 제임스 펠레(1934~2006)의 역작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을 꼽을 수 있다. 정약용의 사상에 관해선 마크 세톤의 연구 「Chong Yagyong: Korea's Challenge to Orthodox Neo-Confucianism」 정도가 발표됐을 뿐이다. 정약용에 관한 한국학계의 방대한 연구실적에 비하면 아직 정약용 연구의 국제화는 여전히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현 상황에선 여러 철학, 역사, 정치학 등 여러 학술분과에 축적된 국내외 학술성과를 종합해 다산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 생각한다. 정약용 관련 정치사상사의 연구를 사회경제사의 성과와 접목시키기 위해선 조선후기 사상사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사회경제적 제도에 관한 논쟁을 깊이 탐구해야 할 것이다. 치국책 및 경세론은 ‘현실경영의 철학’을 표방한 유학사상의 핵심적 주제라 할 수 있다. 정약용 『경세유표』의 심층적 연구는 한국사상사의 국제화를 위한 시급한 과제다.

 

「다산 연구의 계보학과 21세기적 방향에 대한 일고」:
정일균 서울대·사회학

정인보가 주도했던 1930년대의 ‘朝鮮學運動’을 기점으로 남한에서의 다산 연구의 계보학을 특히 ‘實學’ 담론의 내용과 특징을 중심으로 통시적으로 개관했는데, 이를 간략히 요약해보자.

① ‘조선학운동’이 ‘실학’으로서의 ‘朝鮮學’의 사상적 정체성을 ‘朝鮮心을 培植하는 實事求是學’으로 정립함으로써 이후 ‘실학 연구’의 주류적 흐름에 기본적 인식틀과 전제적 출발점을 제공한 바 있다.

② 해방 이후, 1950~70년대 남한에서의 ‘실학 연구’의 주류적 흐름은 상기의 조선학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조선후기 사회변동 및 사상사 연구에 있어 실로 중요하고도 다대한 연구성과를 낳은 바 있다. 그럼에도 동시에 일련의 문제점을 노정하기도 하였던 바, 즉 ㉠‘서구중심주의’ ㉡실학에 대한 ‘본질론’의 관점이 가진 약점 ㉢실학의 구성적 타자로서 조선주자학을 지목하는 인식틀이 내포한 난점 등이 그것이다.

③ 1980년대 이래 실학 연구는 그 범위를 확장시켜 나가는 동시에 기존의 실학 연구, 특히 ‘주류적 흐름’에 대한 회고 및 반성 역시 끊임없이 제기돼 온 바 있다. ㉠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특히 1990년대에 접어들면,이른바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한 학계의 비판이 국내·외적으로 제기되는 흐름과 궤를 같이 하면서 기존의 주류적 실학론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 더욱이 2000년 이후에는 이른바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서구적 근대화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더불어 ‘대안적 세계관’을 모색하려는 시대적·학문적 과제가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실학 연구의 목적 및 방향 또한 근본적으로 재고되기에 이르렀다.

이상과 같은 남한에서의 ‘실학 및 다산 연구’의 주요동향을 전제하면서, 차후의 실학 및 茶山學 연구의 발전과 심화를 위해 요청되는 과제에 대해 ‘연구의 당위적 방향’을 중심으로 몇 가지 단상을 제기해보고자 한다.

첫째, 21세기 한국, 나아가 동아시아의 사상적 과제, 즉 서구적 ‘근대의 수용’과 ‘근대의 극복’이라는 이중적 과제와 관련해 실학 및 다산학 연구가 가지는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의 상황에서도 과거 서구적 계몽이 성취했던 진보적 성과들, 특히 ‘민주, 자유, 인권’ 등의 가치를 내재화하는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럼에도 동시에 현금의 시대적 상황은 특히 서구적 ‘근대의 극복’이란 과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초미의 관심사로 제기하고 있는 바, 이를 위한 노력은 현재 대표적으로 ‘위험사회’의 문제의식과 함께 ‘성찰적 근대(화)’ 내지 ‘제2근대’의 기획이 제시되는 동시에 이를 위한 동아시아 전통의 잠재력에 대한 관심과 탐색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실학 및 다산학 연구는 종래 한국에서의 실학 연구의 주류적 흐름이 전제·표방했던 바 ‘근대화의 기획’을 뒷받침하기 위한 ‘본질론’, 즉 ‘조선후기의 新思潮’로부터 곧바로 한국적 근대성의 요소, 또는 근대정신의 내재적 胎盤을 읽어 내거나 확인하려는 폐쇄적 독법에서 과감하게 탈피하는 동시에 특히 ‘실학’ 개념을 한 시대의 ‘역사적·사회적 조건과의 정합성·조응성’의 여부로 인식·구성하는 ‘관계론’의 관점으로 이행해야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둘째, 이러한 맥락에서 ‘21세기 다산학’ 연구의 초점 또한 달라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기존의 ‘본질론’의 관점에서 주로 다산학의 ‘구체적 내용’에 주목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그것으로부터 현금의 시대적 과제, 특히 서구적 계몽이 야기한 역설성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방법론적 통찰과 지혜’를 해석학적 상상력을 통하여 간취하, 이런 의미에서 기존의 연구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인문학적 안목과 문제의식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안목과 문제의식이야말로 ‘다산학’의 생명을 21세기로 연장하는 관건이자 동시에 현금의 다산학 연구자가 마땅히 자각·성찰해야할 ‘연구자의 지평’이 아닐까 한다.

셋째, 서구적 ‘근대의 극복’이란 과제와 관련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사상계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과제는 무엇보다 유교를 중심으로 한 풍부한 사유의 전통과 역사적 경험을 비판적이고 합리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21세기적 보편성’을 구현하는 ‘대안적 세계관’과 ‘문명의 전환’을 성취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무엇보다 종래 주류적 실학 연구를 중심으로 조장·강화돼왔던 이른바 ‘돌진적 근대화’의 강박관념과 이것의 이론적 표현인 다양한 형태의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이나 ‘서구중심주의’의 잔재에서 해방될 필요가 여전히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21세기 실학 및 다산학’ 연구의 인식론적 출발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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