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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오롯한 정치는 없다 … 관계가 민주주의를 만든다
홀로 오롯한 정치는 없다 … 관계가 민주주의를 만든다
  • 홍태영 국방대 안보정책학부·정치학
  • 승인 2016.01.0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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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19-20세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 클로드 르포르 지음|홍태영 옮김|그린비|440쪽|27,000원

 

인간의 권리는 권리와 권력의 얽힘을 해체하며 등장한 것으로서, 오히려
권력이 권리에 순응해야 함을 의미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저항권은 시민 고유의
일이지 결코 국가에 그것의 보장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이자 역사학자 로장발롱(P. Rosanvallon)은 2002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정치적인 것의 근현대사 강좌’ 교수로 취임하면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적 역사」라는 제목의 강연을 행했다. 그는 ‘정치적인 것’의 의미를 추적하는 동시에 그것이 역사와 정치철학에 어떤 의미를 주면서 결합되는지와 민주주의 문제 등을 다뤘다. 이 강연에서는 물론 이전의 다른 글에서도 로장발롱은 자신의 스승인 르포르에게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빚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근대 민주주의와 관련한 논의의 중심에 들어온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리고 르포르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중심 개념인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는 과정은 르포르 자신의 지적 여정과 결합돼 있다. 르포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메를로 퐁티와 지적 관계를 맺으면서 그의 현상학의 영향을  받았다. 인간을 자신의 고유한 세계의 근원이자 고유한 삶의 작자로서 이해하는 실존주의적 현상학은 르포르로 하여금 마르크스주의의 구조주의적 성향과 사르트르의 주관주의적 성향을 모두 거부하게 했다. 스승이자 동료였던 메를로 퐁티의 죽음과 함께 그의 유고집 편집을 맡으면서 그를 꼼꼼히 읽었고 자신의 지적 전환을 경험한다. 또한 그 즈음 현상학적 시각으로 마키아벨리를 읽으면서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했다.

르포르는 마키아벨리 독해로부터 ‘사회적인 것’을 구성하는 것으로서의 권력 혹은 정치적인 것의 의미를 포착해 낸다. 그와 함께 ‘정치적인 것’을 통해 근대 민주주의 사회를 파악하면서 르포르는 근대 주권적 권력의 특성을 ‘비결정’으로 이해한다. 근대 민주주의 사회의 도래와 함께 사회질서의 초월적 근원이라는 생각이 제거됐고, 그것은 ‘확실성의 이정표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질서의 초월적 근거 및 확실성의 표식의 실종은 새로운 세계로의 변환의 표시이다. 그것들은 비결정이라는 사고로 수렴된다. 인간질서의 초월적 장소를 대신해 민주주의는 인민을 권력의 정당성의 기초로 만들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민주권은 어떠한 결정된 상징에 의해서도 표상될 수 없다. 인민은 주권자이지만 어떠한 개인·계급·집단도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결정된 형태를 부여할 수 없다. 중세사회와 달리 민주주의 정부는 민주주의 사회에 신체를 부여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일정한 시간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민주주의 사회의 발생적 원칙으로서 권력의 장소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한다. 근대의 주권적 권력의 특성인 비인격적 권력은 비가시성에 의해 어디에나 편재하는 권력으로서 표상되며 인간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다.

민주주의적 권력이 인격적 권력인 군주권력을 파괴하고 등장했지만, 민주주의적 권력은 비인격적 권력만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왕의 신체를 통해 형상화됐던 공동체의 본질이 이제는 동일한 빈 공간을 통해 등장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군주제에서는 권력이 군주의 인격 속에 체화됐다면, 근대의 민주주의적 혁명은 권력을 ‘빈 장소’로 만들면서 어떤 통치자도 권력을 체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빈 장소의 출현과 정치적 자유의 제도화가 결합되면서 누구의 권력도 아닌 민주주의적 권력이 탄생한다.

사회적 공간을 제도화하는 것으로서 ‘정치적인 것’은 상징적 형태의 구체화를 통해 ‘사회적인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을 연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사회적 공간이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진실과 거짓, 합법적인 것과 금지된 것,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의 구분이 단일한 양식에 따라 절합되면서 인식 가능한 공간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은 “사회적 삶의 특정한 부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원칙의 관념, 혹은 인간들이 그들 사이 그리고 세계와 맺는 관계에 대한 발생적 원칙의 총체를 의미한다.” 민주주의 사회의 비결정성, 빈장소로서 권력, 열린 장으로서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고 이해하는 것은, 관계들의 체계로서 사회를 이해하는 사회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바로 정치철학의 영역이 된다.

르포르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분명 독특한 것이다. 제도화된 정치라는 기존의 협소화된 이해에 대항해 정치의 우선성 나아가 사회를 구성하고 구별 짓는 것으로서 ‘정치적인 것’을 정의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기존의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갖는다. 또한 정치적인 것에 주목하고 있는 아렌트와도 차별성을 갖는다. 아렌트에게 ‘정치적인 것’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 속에서 등장한다. 사실 아렌트는 선험적으로 고유하게 정치적인 행위가 무엇이고 아닌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르포르가 보기에 정치에 대한 이러한 선험적인 그리고 초시간적인 정의는 무의미하다. 르포르는 정치적인 것이란 사회의 정치적 형태를 둘러싸고 있는 범위 내에서, 즉 그것이 발생하고 실현되는 정치적 지평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르포르의 경우 민주주의는 항상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였으며, 그 해결책 역시 근대성 속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었다. 전체주의 역시 민주주의 나아가 근대성 자체에 내재돼 있는 경향으로 읽어야 하며 그러기에 해결책 자체도 근대적 과제로 설정된다.

기본적으로 르포르에게는 아렌트의 고대민주주의와 같은 ‘규범적인’ 혹은 원칙적인 의미의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운동으로서 존재하는 민주주의이며, 근대와 동시에 형성돼온 역사로서 민주주의다. 르포르가 근대 민주주의의 난점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로서 주목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인간의 권리’와 그에 근거한 정치다. 르포르는 인간의 권리를 자연주의적 혹은 개인주의적 방식이 아닌 관계적 개념으로 읽으면서 민주주의적 공동체 속에서의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의 권리는 권리와 권력의 얽힘을 해체하며 등장한 것으로서, 오히려 권력이 권리에 순응해야 함을 의미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저항권은 시민 고유의 일이지 결코 국가에 그것의 보장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리는 민주주의적 공간을 형태 짓는 계기다.

이런 의미에서 르포르의 정치적인 것에 대한 사유와 인권의 정치를 통한 현대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색은 신자유주의의 강세라는 현재의 상황에서 ‘정치’에 대해 재고하게 한다. 정치적인 것의 문제는 현재의 사회질서가 결코 외부적으로 주어지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정치에 의해 형성되고 변환되어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의 문제는 우리 공동체의 형성, 즉 공동체 구성원의 공존양식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의 적극적인 고민으로부터 형성된다.

 

홍태영 국방대 안보정책학부·정치학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로장발롱 지도 하에서 19세기 프랑스 자유주의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국민국가의 정치학』, 『정체성의 정치학』 등이 있다. 최근의 관심사는 근대성과 민족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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