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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꾀와 슬기로 승화된 한 해를!
큰 꾀와 슬기로 승화된 한 해를!
  • 교수신문
  • 승인 2016.01.0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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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지로 보는 丙申年 새해
▲ 만봉원숭이

새해는 원숭이가 한 해의 지킴이다. 예로부터 ‘東國無猿’이라 하여 우리나라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아 원숭이에 얽힌 이야기가 그리 흔치 않다. 원숭이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왔는지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다만 조선 초기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선물용으로 들어온 듯하다는 가설만 있다. 원숭이 像이나 조각 그림은 통일신라부터 무덤의 호석·부도·고분벽화·석관 등에 보인다.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동물로 갖가지의 만능 재주꾼이고, 자식과 부부지간의 극진한 사랑은 사람을 뺨칠 정도로 애정이 섬세한 동물이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불교를 믿는 몇몇 민족을 제외하고는, 원숭이를 ‘재수없는 동물’(The emblem of ugliness and trickery)로 기피하면서도 나쁜 기운(邪氣)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원숭이가 좋은 건강·성공·수호(보호)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원숭이가 우리 민족에게 비친 대체적인 모습은 옛날 이야기와 속담에서는 꾀 많고 재주 있는, 흉내 잘 내는 장난꾸러기로 묘사 되고, 도자기나 그림에서는 모성애와 가족애를 강조하고, 스님을 보좌하는 모습, 천도 봉숭아를 들고 있는 장수의 상징, 포도를 따먹는 부귀다남과 출세와 성공 기원 등으로 많이 표현됐다.

도자기와 옛 그림에는 원숭이 母子像을 창자가 끊어질 듯한 斷腸의 슬픔의 모정으로 그리고 있다. 원숭이의 자식사랑이나 부부사랑은 사람을 뺨칠 정도라고 한다. 갓난이가 손발에 힘이 붙기 전까지는 결코 어미의 품속에서 떼어놓는 일이 없고 가슴에 안거나 등에 업는다. 동물원에서 기르는 원숭이 부부도 한편을 사별하면 나머지 한편도 먼저 간 배우자를 그리다 끝내는 죽는 일이 많다는 것은 동물원 경험자들 간에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한다.

천도복숭아는 열매를 한 번 맺는 데 3천년이 걸리고 그 열매가 익는 데 다시 3천년이 걸리며 천도복숭아를 하나 먹으면 1만8천년을 살 수 있다는 장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림에서는 원숭이가 바로 이 천도복숭아를 먹거나 손에 잡고 있다. 이 모습은 오래 사는 것을 기원하는 祝壽의 의미로 그린 그림이다.

도자기 항아리나 걸상, 문방구 등 선비의 사랑방 기물에서 원숭이는 포도 넝쿨 사이로 다니거나 포도를 따먹고 있다. 포도 알의 탐스런 외형은 豊饒多産이란 의미다. 원숭이 ‘???’자는 제후 ‘侯’자와 발음이 같아 원숭이는 곧 제후, 높은 벼슬을 얻는다는 의미를 갖게 됐다. 조선시대까지 높은 직위는 부와 명예를 모두 포괄하는 인생의 至福 중 하나였다.

원숭이는 보통 추하고 장난을 좋아하는 재수없는 동물이었다. 그러다 스님을 도와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오는 데 공헌한 원숭이의 용감성, 장난, 심술기의 이야기가 여러 희곡이나 소설에 등장하면서, 원숭이는 악귀를 물리치거나 쫓을 수 있는 힘이 있어 인간의 건강과 보호·성공을 이루게 해주는 동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몸이 아프거나 장사나 시험 등에 실패하는 것은 악마 때문이고, 『西遊記』의 손오공처럼 귀신을 쫓기 위해서는 축귀의 힘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원숭이해는 육십갑자에서 甲申·丙申·戊申·庚申·壬申 등 다섯 순행한다. 12지의 아홉 번째 동물인 원숭이(申)는 시각으로는 오후 3시에서 5시, 방향으로는 서남서, 달(月)로는 음력 7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며 시간신이다. 원숭이해에 태어난 ‘잔나비 띠’는 천부적인 재질과 지혜, 재주를 지녔지만 자기의 재주를 너무 믿어 방심하게 되므로 스스로 발등을 찍기도 하니 주의하라고 한다.

흔히 원숭이 꾀하면 잔꾀를 연상하게 돼 가볍게 받아들여지기 일쑤이기도 하다. 2016년 병신년에는 잔꾀가 아닌 큰 꾀와 슬기로 승화해 평화롭고 알찬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중앙대에서 「한국 띠동물의 상징성 연구」로 박사를 했다. 주요 저서로는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  『한국 동물 민속론』, 『한국 馬 민속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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