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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 석희태 편집인/연세대 초빙교수·의료법학
  • 승인 2016.01.04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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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석희태 편집인/연세대 초빙교수·의료법학
▲ 석희태 편집인

교수사회는 지난 한해의 세상을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며(昏庸無道), 옳은 것 같은데 실은 아니고(似是而非), 연못을 바닥내어 고기를 싹쓸이하는 것처럼 끝장보기를 일삼은(竭澤而漁) 판으로 진단했다.

이러한 고뇌의 평가가 우리 신문에 보도된 뒤의 세간의 반응이나 논평 또한 혼용이고 사이비이고 갈택이었다는 감을 숨길 수 없음이 사실이다. 거개가 일방적으로 바로 ‘저쪽’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너무도 당연한 듯이 확신에 찬 배경설정과 함께 인용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 중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쪽’으로서 나는, 우리는 절대로 아니었다고 할 수 있을지를 묻고 싶다.

우리의 진지한 기대는 그러한 진단이 ‘네탓’ 의식을 거두고 저쪽을 이해하고 양보하고 그래서 함께 성취하자고 하는 배전의 자성과 각오의 계기로 기능하는 것이었다.

냇물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냇물처럼 함께 유연하게 어우러져 끝내 통합의 대해에 이름이다. 냇물은 원천의 혼탁을 가리지 않고 왼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인지 오른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인지 따지지 않는다. 들물과 밑물이 서로 배격하지 않고 평화롭게 조화하고 그리고 조용히 淨化해 간다. 만약 서로 지나치게 밀어붙인다면 용솟음쳐서 험악해지고 넘쳐서 낙오를 야기할 것이다. 그것은 분열과 대립의 시발을 뜻한다.

그러므로 함께함에는 엄격히 지켜야 할 법도가 있다.

자리차지와 사익불리기를 공동선의 추구로 미화하기, 순리적 상황을 변증법적 논쟁으로 악화시키기, 부분적 현상을 총체적 난맥상으로 확대하기, 전문적 논점을 대중적·정치적 투쟁점으로 격화시키기, 이런 행태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냇물은 서두르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냇물처럼 주변을 배려하며 천천히 끈기 있게 흘러 끝내 번영의 대해에 이름이다. 냇물은 홍수와 같은 비상상황이 아닌 한 바쁘게 나아가지 않는다. 지류의 이른 도달을 재촉하지 않고 이유 없이 방죽을 침범하지 않는다. 만약 냇물이 그 흐름을 서두른다면 쉬이 원천과 냇바닥이 고갈되거나 방죽이 무너지는 실없는 후과가 초래될 것이다.

대저 일을 서두르는 것은 심원한 성찰과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고, 아울러 대중영합이나 자기실적 쌓기의 의도를 갖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성과 중심주의 요물을 앞세워서는 기초가 든든해질 수가 없고 새롭고 생산적인 결실을 거둘 수가 없다. 그것은 후퇴이자 자해의 원리이지 진보와 번영의 동력이 아니다.

서두르지 않음에서 지켜야 하는 법도가 있다.

원칙과 기초를 존중하기, 원대한 계획을 일찌감치 세우기, 당금의 성취가 아니라 훗날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논쟁적 요소에 대해 충분히 상의하기, 이러한 자세는 실천돼야 한다. 한편으로 합의를 미명으로 결행을 한없이 미루기, 지엽말단의 이해 조정을 고집하기, 지나친 명분론을 미풍양속으로 포장하기, 이런 것은 극복돼야 한다.

통합과 번영 그것은 국조 단군 이래 불변의 염원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실현방책과 장애극복론은 금석에 대차가 없을 것임이다. 그래도 또 새해를 맞이해 위대한 포부와 낙관으로써 선대의 소망함을 되살려 본다.

“……곶됴코 여름 하나니.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그리고 재삼 강조하고 싶다. 모름지기 근본을 위해 힘써야 하나니, 근본이 서면 길이 절로 생긴다(君子務本 本立道生)!

석희태 편집인/연세대 초빙교수·의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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