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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 음대 교수들이 추천하는 ‘이 계절, 자신을 찾아가는 음악’
문화의 향기 : 음대 교수들이 추천하는 ‘이 계절, 자신을 찾아가는 음악’
  • 이은정 기자
  • 승인 2002.1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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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7 10:01:06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서 보라 고향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어느덧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흔히들 겨울은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계절이라고 한다. 반드시 한 해의 말미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겨울이 주는 차분함과 평온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사색의 장을 만들어주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겨울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곡들을 음대 교수들로부터 모아봤다.

겨울, 사색의 장

겨울 하면 이수인의 가곡 ‘고향의 노래’가 떠오른다는 황성기 전남대 교수. 그는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의 피아노 콘체르토 1번 E단조 Op. 11을 권한다. 쇼팽이 모국 폴란드를 떠나기 두 달 전에 완성했다는 이 곡에 대해 황 교수는 “피아노의 낭만적인 선율을 통해 평온함과 올 한 해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의 끝없이 펼쳐져 있는 설원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겨울 하면 떠오르는 곳이 바로 ‘백야의 나라’ 러시아다. 겨울의 어두움이 주는 서정미에 착안한 김형배 서울대 교수는 라흐마니노프(Sergei Rahmaninoff)의 피아노 콘체르토 3번을 추천한다. 러시아의 북부지방 노브고로드의 오네그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난 후기 낭만주의자 라흐마니노프는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인 동시에 작곡가였다. 또한 독자적이고 폭넓은 곡 해석으로 ‘피아노가 그의 손길 아래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그의 음악을 통해 서정적이면서도 심연을 두드리는 러시아의 겨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어두운 심연으로 파고들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것은 과거. 정욱희 경북대 교수는 브루흐(Max Bruch)의 스코틀랜드 환상곡과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의 탄호이저 서곡을 꼽는다. 정 교수는 “날씨 탓에 실내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 때 들으면 좋은 곡이다. 이 곡들을 듣고 있다보면 과거의 추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될 것이다. 특히 탄호이저 서곡은 독일 후기 낭만주의 곡으로 바그너의 독특한 화성적 색채가 따뜻한 체온을 전해줄 것”이라 추천이유를 밝혔다.

정수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전통예술원)는 이 계절 차분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한다면 김영동 선생과 황병기 교수의 음악 등 우리의 소리를 들을 것을 권한다. 김영동 선생은 ‘삼포가는 길’과 ‘어디로 갈꺼나’로 잘 알려진 국악 작곡가이자 대금연주자다. 대중적인 시도도 많이 해 국악가요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창작국악의 선구자’로 국악의 지평을 넓힌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 ‘침향무’, ‘밤의 소리’ 등의 그의 음악은 ‘귀와 정신을 모두 즐겁게 해주는 음악’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정 교수는 “이들의 곡은 국악적인 정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낯설지 않고 편안한 것이 매력”임을 강조한다. 가만히 듣고 있다보면 명상에 잠겨 본연의 자기와 만날 수 있다는 것.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제4번 중 3악장·4악장과 스크리아빈(Alexander Scriabin)의 ‘법렬의 시’. 박성완 부산대 교수는 이번 겨울을 ‘낯선 음악과의 만남, 낯선 자기와의 만남’의 자리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떠한지 제안한다.

낯선 자기와의 만남을 위하여

보헤미아에서 태어나 작곡가의 길뿐만 아니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뉴욕 필 등 지휘자로의 길도 함께 걸었던 말러. 박 교수는 “그의 교향곡 제4번의 3·4악장은 이 세상의 희망과 신을 감사하는 내용으로 구성돼있다”면서 이 음악을 통해 긍정적인 자기로의 여행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스크리아빈의 음악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음악가이자 철학가로 생각했던 그의 음악 ‘법렬의 시’는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20여분 되는 곡을 듣고 나면 ‘희열의 극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한다.

이외에도 박 교수는 겨울의 신비스러움을 느끼고 싶다면 본 윌리암스(R. Vaughan Williams)의 교향곡 ‘남극’을 들어볼 것을 덧붙인다.

겨울. 모든 것이 움츠러드는 시기이지만 음악을 통해 감성의 틀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음악은 영혼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다. 다만 영혼을 자극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라는 톨스토이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음악과 함께 하는 겨울이 얼마나 풍요로울지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은정 기자 iris79@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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