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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주류에 밀려난 주관적 비주류의 정당성
객관적 주류에 밀려난 주관적 비주류의 정당성
  • 교수신문
  • 승인 2015.12.2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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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미디어 문화연구의 질적 방법론』 한국언론정보학회 엮음|조항제·김영찬·이기형 외 지음|컬처룩|511쪽|28,000원

 

우리들은 언론학계 내에 구축된 지적인 분위기와 관성을 문제적이라 판단했고, 요동치는 현실에 관해 비판적이고, 개입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동시에 풍요로운 해독과 다면적인 진단을 투사하는 질적인 접근의 역할과 의의를 구체적으로 담아내는 기획이 매우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 책은 다소 단적으로 표현해서 사회과학 영역에서 이뤄지는 지식생산에 있어 ‘주류적인 관성’과 강조점에서 벗어난 ‘차이’와 ‘대안’ 그리고 ‘다양성’에 주목한다. 이 책을 기획하면서 필진과 기획의 주체들이 중점적으로 숙고한 사안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과학과 특히 언론학의 영역에서는 미국식 실증주의적 접근과 ‘양적인 연구’의 ‘전통’이 매우 강하며, 연구의 추진과 설계에서 논문쓰기, 커리큘럼의 구성, 후속세대의 교육과 재생산 등의 측면에서 매우 큰 영향력과 지배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언론학 분야의 경우, 주요 대학의 교수진들이 주로 미국에서 교육받은 학자들로 다수 구성되며, 이들 대부분은 광의의 실증주의와 양적인 연구의 전통 속에서 교육을 받은 주체들이다. 그 결과, 그간에 학계에서 매우 많은 지적-학술적인 작업들이 축적되고, 전문성의 심화가 ‘생산적’으로 이뤄지긴 했지만, 제기된 한계나 간과되고 충분히 성찰되지 못한 ‘이면’ 또한 상당하다.

예컨대 사회과학의 영역을 가로지르며 실증주의적인 세계관과 양적인 방법론이 주류이자 강한 규범적인 효과를 발하면서, 그 외의 접근방식들이 주변화되거나 배제되는 효과가 생성됐다. 특히 자연과학을 모델로 설정된 범실증주의적인 탐구가 강조하는 ‘과학성’과 ‘법칙성’, ‘가치중립성’ 그리고 ‘가설검증과 연역적인 탐구’ 등과 같은 덕목들이 연구와 교육의 과정에서 크게 혹은 과도하게 강조되고, 적지 않은 ‘훈육작용’을 발휘해오기도 했다. 이러한 학술적·제도적인 관(습)성과 자장 속에서, 다양한 인간주체들과 제도적·물적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동시에 특정한 이해관계가 개입되기도 하는 주요 사회적인 이슈나 갈등의 구성이나, 다기한 사회 내 의미화와 담론작용을 심화시켜 진단하는 비판적-해석적인 입장들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하거나, 그러한 접근의 ‘정당성’이 도전받기도 한다.

『미디어 문화연구의 질적 방법론』은 앞서 언급한 이러한 ‘문제적인’ 상황에 대한 질적인 전통(qualitative tradition)에 속하는 문화연구자들의 결집된 대응이자 자성적인 기획의 일환이다. 주지하다시피 질적인 방법론의 연원과 전통은 매우 오래됐으며, 특정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가로지르는 ‘인간과학(human sciences)’ 영역의 핵심자원으로 존재해왔다. 필진과 기획진은 연구와 학술탐구의 다양성과 현실개입의 측면에 대한 성찰적인 고려, 정련된 인식론과 대안적인 방법론의 심화된 추구, 그리고 복합적인 활용과 진단의 가능성 등을 목표로 이 책의 방향성을 설정하게 됐다.

우리들은 언론학계 내에 구축된 지적인 분위기와 관성을 문제적이라 판단했고, 요동치는 현실에 관해 비판적이고, 개입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동시에 풍요로운 해독과 다면적인 진단을 투사하는 질적인 접근의 역할과 의의를 구체적으로 담아내는 기획이 매우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 책은 언론학과 미디어연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연구자들이 그러한 공통된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녹여낸 결과물이자, 특히 ‘질적 탐구’라는 접근방식이 발휘하는 비판성과 대안성, 사회적 맥락성의 추구, 그리고 실용성을 염두에 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둘째로 비판적·해석적·간학제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대안적인 방법론이나 지적인 접근들이 크게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관련해, 이러한 측면에 주목해온 학자들이 보다 정련되고 포괄적인 작업들을 충분히 생산해내지 못했다는 자성도 있었다.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우리는 질적인 전통과 연구에 관심을 가진 주체들에게 주요한 해석틀과 예시들, 관찰되는 사례의 다면적인 해독, 그리고 진중하고 성찰적인 진단 등을 구체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지적-비판적인 자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는 질적 연구의 핵심 방법론과 문제틀을 보다 구체적이며, 조직적이고, 집약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기획에 도달했다. 부연하자면 이 책은 문화연구자들이 주체적으로 모색한 적극적인 대응이자, 지식생산의 대안적 유용성과 현실 접맥성을 숙고한 작업이기도 하다. 또한 질적인 전통에서 발원하는 주요 방법론의 갈래들을 다루지만, 동시에 방법론의 수준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문제의식과 진단을 녹여낸 공동 작업이기도 하다. 특히 기존의 철학적인 논의나 메타비평적인 강조를 벗어나서, 역사와 사회 그리고 정치적인 영역과 매체의 활용 등을 질적인 접근방식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이들이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예시적인 동시에 다양한 접근방식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짜임새 있게 풀어내는 기획을 추진하게 됐다.

이러한 판단을 내린 또 다른 이유로는, 번역서나 소수의 연구서를 제외하고, 질적인 탐구와 방법론에 관한 한국이라는 로컬한 특성과 사회정치적인 맥락성의 특징과 조건을 심화시켜 고려한 작업들이 언론학의 영역에서 여전히 희소하며, 이를 교육현장의 연구자 자신들이나 학생들이 절감하고 있었던 측면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상당한 지적 관심과 더불어 쓰임새를 발현하는 영상과 서사에 관한 광의의 텍스트 분석, 담론분석, 구술사, 공간, 기억, 온라인의 동학, 생산자연구, 민속지학(ethnography) 등을 주요 주제로 선정했으며, 질적인 접근의 역할과 함의를 메타비평의 방식으로 기술하며, 나아가서 하나 이상의 방법론의 조합을 혼합적으로 구성하는 접근 등에 관한 장들도 포함시켰다. 다루는 주제영역에서는 저널리즘과 매체 외에 대중문화와 문화생산 및 수용, 젠더, (가상)공간, 일상, 집합기억 등의 보다 확장된 생활세계와 공적 영역 속의 주요 주제들이나 이슈들을 포괄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이 책은 언론학의 경계를 넘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내 동료연구자들이나 학문후속세대들이 참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연장통’(tool box)의 역할을 일정부분 담당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셋째, 언론학 영역의 문화연구자들의 경우, 이미 간학제적인 지식의 추구에 익숙하며, 인문학적 관심사에도 예민한, 즉 상당한 지적인 개방성과 너비를 추구해 온 주체들이기에, 우리가 기획한 작업을 생산해내는 데 큰 이견 없이, 또한 평소에 느끼던 관심을 반영하면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필진 대다수는 언론정보학회의 후원으로 이미 세 차례에 걸쳐서 동계 질적 연구방법론 워크숍에 기획자와 강사로 참여한 바 있다. 그간에 이러한 기회를 각자의 문제의식을 숙고하고 정련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소수의 연구자가 아닌 열 세 명의 학자들이 참여하는 협업을 통해서, 현재 사회과학영역에서 실행되고 구축된 지식노동의 개인화의 문제나 (분과)학문 내 영역주의의 벽을 일부라도 깨는 작업을 시도한 셈이다. 향후에 이러한 결집된 지적 관심과 문제의식을 조금 더 차별화시켜 탐구하며, 이번 기획에서 포함하지 못한 주제와 영역을 포함하는 차기 작업도 구상하고 있다.

 

 

이기형 경희대·언론정보학과

필자는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사회학 석사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TV 이후의 텔레비전』(공저), Asian Media Studies(공저), 『미디어 문화연구와 문화정치학으로의 초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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