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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그러나 어두운
달콤한 그러나 어두운
  •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승인 2015.12.2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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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이덕환 논설위원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昏庸無道를 뽑았다. 사슴과 말조차 구분하지 못해 세월호의 아픔까지 견뎌내야 했던 指鹿爲馬의 작년 못지않게 을미년 올해도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는 뜻이다. 불과 한 달 보름 사이에 186명의 감염자와 38명의 희생자를 낸 메르스 사태는 리더십이 살아있고 도리가 행해지는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참사였다. 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하는 正本淸源의 한 해를 기대했던 교수들의 순진한 새해 소망은 처음부터 무망한 꿈이었던 셈이다.

昏庸無道의 혼란과 어둠에 시달리기는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유치원·초중고·대학이 모두 그랬다. 공개적으로 ‘1년 임기’를 자처하며 취임했던 정치계 출신 장관과 교육부 관료들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던 퇴행적 교육 정책의 결과였다. 법과 제도는 철저하게 무시됐고, 사법부의 판결도 힘을 잃어버렸다. 교육부에 의해 동원된 어쭙잖은 교육전문가와 퇴직 교피아들을 위한 어설픈 교육 정책이 판을 치는 어둡고 암울한 세상이 돼버렸다. 대학 교육 강화를 위해 만들었던 대교협도 교육부의 충실한 꼭두각시로 변해버렸다.

교육부가 자랑하는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 학교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법으로 보장된 교사의 교수권과 학생의 학습권이 모두 심각하게 훼손돼버린 탓이다. 제도적으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문·이과를 ‘통합’한다는 어처구니없는 핑계로 교육과정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학력고사로 변질된 ‘짝퉁’ 수능으로 입시와 교육을 모두 망쳐놓은 것도 교육부다. 지난 정부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온 교사 출신 전문직 교육 관료들의 권위적 업무 행태도 꼴불견이다.

지자체와 교육감의 소관인 유초중등 교육에 대한 교육부의 불법·탈법적 간섭도 도를 넘어섰다. 교육을 두고 보수와 진보가 이념적으로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주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진보 성향의 교육감에 대한 교육부와 보수 정치권의 거부감이 법과 제도의 한계를 넘어섰다. 대통령 공약이었던 누리사업도 정치적 논란으로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진로 선택을 도와준다는 중학교의 자율학기제는 사교육 시장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교육부의 주장을 믿을 수 없게 돼버렸다.

대학의 현실은 훨씬 더 심각하다. 정당한 절차에 따라 선출된 총장 후보자의 임명도 거부하고, 총장 직선제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교육부의 입장이다. 국립대 중진 교수가 교내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법적 근거도 없이 밀어붙인 대학 평가의 결과도 놀라웠다. 멀쩡한 지역거점 국립대학은 낙제점을 받았고, 교육부 스스로 퇴출시켜야 하는 부실대학이라던 대학은 ‘우수 등급’을 받았다. 대학 사회에 깊숙이 파고든 ‘교피아’의 위력을 보여준 사례였다. 기형적 약대 입시의 문제도 심각하다. 미국 제도를 어설프게 베껴온 의학전문대학원은 실패했고, 법학전문대학원의 앞날도 불확실하다.

내년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사회 수요 맞춤형 인재 양성을 핑계로 비현실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프라임(PRIME), 코어(CORE), 평단(평생교육 단과대학 육성사업)이 대학을 초토화시켜버릴 것이다. 공학 중심의 프라임 사업을 위해 ‘맞춤형’ 장관까지 지명해놓았다. 반값 등록금으로 재정 위기에 빠진 대학이 영혼을 파는 한이 있어도 교육부의 지원금을 포기할 수 없다는 현실을 노린 정책이다.

알량한 지원금을 앞세운 황당한 사업은 그뿐이 아니다. 학부교육을 강조하는 에이스(ACE)도 있고, 산학협력을 강조하는 링크(LINC)도 있다. 대학의 특성화를 요구하는 CK도 있고, 두뇌 한국을 만들겠다는 BK21 플러스도 있다.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됐던 ‘세계적’ 대학을 육성하는 WCU도 있었다. 그런데 교육부의 화려한 작명과 달콤한 지원금에도 불구하고 특성화 대학이나 선도대학은 여전히 기대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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