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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학(미학)’은 ‘마치~처럼’의 공동체 유형의 구성이다
‘감성학(미학)’은 ‘마치~처럼’의 공동체 유형의 구성이다
  • 교수신문
  • 승인 2015.12.2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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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불화: 정치와 철학』 자크 랑시에르 지음|진태원 옮김|도서출판 길|295쪽|22,000원

정치적 대화는 이러한 영역의 탁월한 사례다. 한편으로 로고스와, 다른 한편으로 로고스를 아이스테시스(감각적인 것의 나눔)와 함께 고려하기[셈하기]가 이루는 매듭 자체와 관련해 정치적 증명(d´emonstration)의 논리는 또한 불가분하게 드러냄(manifestation)의 감성학[미학]이다. 정치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감성화[미학화]되거나 스펙터클화되는 불운을 겪게 된 것이 아니다. 말하는 존재자들의 말이 기입되는 감각적 짜임은 항상, 정치가 치안질서 속에 기입한 계쟁의 쟁점 자체였다. 이것은 곧 ‘감성학’[미학]을, 대화의 논리를 일탈시키는 ‘자기 준거성’의 영역과 동일시하는 것은 지극히 그릇된 것이라는 뜻이다.

그와는 반대로 ‘감성학’[미학]은 분리된 표현 체제들을 서로 소통시키는 것이다. 근대적인 정치형식들의 역사가 감성학[미학]을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자 감각적인 것에 대한 담론으로 나타나게 만든 변동들과 연계돼 있다는 점이야말로 진실이다. 감각적인 것이 자율적인 것으로 분리되도록 규정하는 자율적 담론으로서 감성학[미학]의 근대적 출현은 감각적인 것의 용도에 관한 모든 판단과 분리돼 있는 감각적인 것에 대한 한 가지 평가 방식의 출현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평가 방식은 모든 사물에 대해 그것의 용도를 정해주는 질서들[명령들] 및 몫들의 세계와 오버랩되는 가상적[잠재적, virtuelle] 공동성―요구된 공동성―의 세계를 정의한다.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에 따르면 어떤 궁전이 거주지의 편리성 여부와 관련되지도 않고 직위의 특권이나 왕권의 표장들과 관련되지도 않는 어떤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감성적[미적] 공동체 및 그것에 고유한 보편성 요구를 독특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율화된 감성학[미학]은 첫째, 표상[재현]의 규범들로부터의 해방이며 둘째, 추정의 세계에서 기능하는 감각적인 것의 공동체 유형의 구성이고, 부분들과 몫들의 분배에서 벗어나는 감각적인 것의 존재 양식을 보도록 만듦으로써, 포함되지 않은 이들을 포함하는 마치~처럼의 공동체 유형의 구성이다.

따라서 근대 시기에 정치의 ‘미학화’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정치는 원칙상 감성적[미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고스의 질서와 감각적인 것의 나눔 사이의 새로운 매듭으로 감성학[미학]의 자율화는 근대 정치의 짜임의 일부를 이룬다. 고대정치는, 민중을 공동체에 관해 결정을 내리는 주체 위치로 설립한 이 독사(doxa), 이 외양과 같은 구별되지 않는[분명하지 않은, indistincts] 통념들 속에서 작용했다. 근대정치는 무엇보다도, 질서들[명령들]과 기능들의 분배 너머에 있는 가상적인[잠재적인] 또는 요구 가능한(exigible) 감각적 공동체의 이러한 구별 속에서 작용한다. 고대정치는, 공적 공간을 계쟁의 공간으로 열어놓는 데모개 개념 및 그의 비고유한 고유성[속성]으로부터만 기인했다. 근대정치는, 감각적 차이(dissentiment)의 세계들인 공동성의 세계들을 발명하는 주체화 작용의 다수화에서 기인하며, 매 순간 논변들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개방들인, 곧 논변하는 주체가 논변자로서 셈해지는 공동세계(이것은 합의의 세계라는 뜻이 아니다)의 개방이기도 한 이 증명 장치들에서 기인한다. 이 주체는 항상 하나 더의 주체다. 우리의 선언문에서 “우리는 그들을 이해했다”고 쓰는 주체는 노동자들의 집합이 아니며, 집합적 신체가 아니다. 이것은 초과적인 주체로, 이 주체는 공동체의 간극의 구조, 공동체가 지닌 공통적인 것과 비공통적인 것 사이의 관계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이러한 이해를 증명하는 작용들의 집합 속에서 정의된다. 근대정치는 사회적 활동 및 질서의 표면으로부터 공제될 수 있는 공통의/계쟁적인(communs/litigieux) 세계의 다수화에 의해 존재한다. 근대정치는 이러한 다수화가 가능하게 하는 주체들, 항상 수를 초과하는 셈을 지닌 주체들에 의해 존재한다.

▲ 자크 랑시에르

 
저자 랑시에르(1940~)는 파리 8대학에서 1969년부터 2000년까지 미학과 철학을 가르쳤다. 알튀세르의 영향을 받았지만 68혁명을 경험하면서 알튀세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적 실천이 내포한 ‘앎과 대중의 분리’, 그들의 이데올로기론이 함축하는 ‘자리/몫의 배분’에 반대하며 『알튀세르의 교훈』(1974)을 집필했다. 옮긴이인 진태원 교수는 “『불화』는 정치에 관한 그의 사유를 매우 체계적으로 집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평한다. 『불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는 미학·감성학의 시기에 집필한 책으로, 랑시에르의 후기 사상적 여정을 잘 응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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