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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學者를 ‘충격’에 빠뜨린 이 책은 도대체 무엇인가?
史學者를 ‘충격’에 빠뜨린 이 책은 도대체 무엇인가?
  • 주보돈 경북대·사학과
  • 승인 2015.12.2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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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 김양동 지음|지식산업사|2015|536쪽|35,000원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자료를 폭넓게 수집,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한국고대문화의

원류와 원형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변형되거나 진화, 또는 퇴화된 형태로서만

남은 여러 상징을 나름대로 재해석함으로써 본래의 실상에 다가가려 했다.

그 결과 한국고대문화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인간이 경험한 삶의 총체를 흔히 역사라고 일컫는다. 그들 가운데 극히 일부분만이 기록으로 남아 전해질 따름이다. 이 기록을 근거로 삼아 과거를 복원해 내려는 분야가 바로 역사학이다. 그런데 기록 자체가 처음부터 매우 선택적으로 일부만이 남게 되고, 그마저도 훼손, 수정, 인멸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온전히 유지되지 못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다양한 기록 가운데 오늘날의 역사가에 의해 다시 일정한 시각과 입장에서 선별됨으로써 역사 복원이란 원천적으로 완벽을 기할 수가 없는 일이 된다. 그럼에도 역사가는 언제나 본래의 역사적 사실에 한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애써 노력한다.

이처럼 불안정한 기록만으로 과거를 복원하려는 역사학 자체에 내재한 한계를 약간이나마 보완해 주는 학문 분야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를테면 고고학, 언어학, 문자학, 신화학, 민속학 등을 손꼽을 수가 있다. 인간은 자신들이 살아가던 모습이나 흔적을 오로지 문자로서만 나타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각종 상징적 부호나 그림으로서, 때로는 다양한 물질로서, 때로는 傳承으로서 자신들의 흔적과 생각을 알게 모르게 남겼다. 그래서 그런 다양한 형식의 자료들을 주요 수단으로 삼아 과거를 복원하는 분야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여러 분과학문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역사는 한층 더 충실해지는 것이라 하겠다.

저자는 그런 점을 깊이 인식하고서 오늘날 한국인의 에너지 원천을 고대문화의 원형에 두고 그를 찾아 나섰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자료를 폭넓게 수집,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기왕과는 다른 해석을 과감하게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고대문화의 원류와 원형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변형되거나 진화, 또는 퇴화된 형태로서만 남은 여러 상징을 나름대로 재해석함으로써 본래의 실상에 다가가려 했다. 그 결과 한국고대문화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저자는 일찍이 동양철학자 凡夫 金鼎卨 선생(1897~1966)이 제시한 이른바 四徵論을 기본적 방법론으로 앞세우고 있다. 사징론이란 문헌자료에 의거한 文徵, 유물·유적에 의한 物徵, 민속이나 유습 등에 의한 事徵, 신화 전설에 의한 口徵 또는 言徵의 넷을 가리킨다. 이는 곧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동원된 4개의 자료와 수단을 뜻하거니와 그들 각각은 앞서 언급한 역사학, 고고학(미술사학 포함), 신화학, 민속학 분야에 해당하는 셈이다. 달리 말하면 저자는 한국고대문화의 原象을 밝혀내는 데는 역사학만으로는 불가함을 인지하고 다른 여러 갈래의 방법론을 총동원해 종합적으로 파악하려 한다. ‘문화 종합론’이라 이름해도 좋을 방법이다. 그 자체만으로 볼 때 한 사람의 연구자가 감당하기에는 그 범위가 너무도 넓어 정말 가능한 일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러나 내용 전반을 훑어 구사된 자료들을 접하면서 그것은 과연 虛言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돌이켜보면 학문이 차츰 세분화되면서 연구자들은 자신이 설정한 좁은 창구만을 굳게 고수하려 함이 일반적 경향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관련 자료 전체를 종합적·체계적으로 파악하지 못해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원래 학문 세분화의 궁극적 지향점은 종합에 있다. 그럼에도 마냥 높은 장벽을 쌓고서 각자가 거둔 성과나 인식만을 편협하게 고집해 소통이나 교류를 꺼려해 왔음이 실상이었다. 하나의 자료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상호 공조해 연계성을 세밀히 관찰해야 함이 마땅한 데도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한국고대문화의 적지 않은 부분이 방치돼 공백 상태로 남겨지게 됐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가 추구한 사징론은 특히 한국고대문화 원형에 접근하는 데 매우 유용하고 적절한 방법론이라고 평가할 수가 있다. 다루는 범위로 미뤄 그런 작업은 아무나 쉽사리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자처럼 언어학, 문자학, 서예학, 미술사 등 다방면을 아우르고 탁월한 식견이나 혜안을 갖출 때만 비로소 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사징론으로 우직하게 해석한 고대문화

저자는 먼저 神에 대한 독특한 언어학적 풀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그와 관련한 문자 및 언어 자료는 물론 각종 고고미술 자료 및 거기에 그려진 여러 도상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로 한국고대문화의 원형에 대한 기본 요소로서 하늘을 대표하는 태양신 숭배를 추출해 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태양 숭배와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구체적 실태로서 새, 특히 하늘의 왕자라 할 솔개를 추적해내고 있다. 우리의 신화나 설화 속에 나타나는 卵生說話도 그와 연결지었다. 솔개로 대표되는 새가 곧 남근을 상징한다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풀이도 행하고 있다. 이처럼 태양, 새(솔개), 남근(생식숭배)의 세 가지가 한국고대의 핵심을 이룬 삼대 신앙이라 진단하고 온갖 자료를 총동원해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왕에는 이들 각각을 별개로 다루고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인식하지 못했다. 이는 사징론과 같은 폭넓은 방법론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한국은 물론 중국의 각종 典籍과 최근 발굴된 온갖 고고자료까지 종횡으로 구사하는 엄청난 자료 동원력은 독자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 타당성 여하는 잠시 젖혀두더라도 방법론에 철저하려는 자세는 정말 돋보이는 대목이다.

저자는 그동안 우리 학계에 만연하다시피 한 서양이론의 무비판적 수용과 적용을 질타하고 자료 자체를 통해 한국고대문화의 원래 모습을 재구성해내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새로운 문제 제기를 시도하면서 기왕에 잘못 붙여진 학술 용어에다 마냥 思考를 가둠으로써 연구의 진전을 가로막은 점을 냉철한 안목으로 비판하고 나름의 적절한 용어를 대안으로 창안해 곳곳에서 제시하고 있는 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상이다.

솔직히 평자는 문헌사학 전공자로서 평소 약간의 고고자료를 활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본서를 올바르게 평가할 능력과 자격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동안 작은 틀에 얽매여 왔음을 自省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책 전반을 통독한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다만, 간혹 확인되는 부정확한 역사 이해, 약간씩의 무리한 언어학적 해석, 자의성이 있으나 검증할 방법이 없는 어려운 도상의 해석, 논증보다는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점, 때로는 거칠게 느껴지는 문장이나 표현 등등은 마치 玉 속의 티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관련 학계가 저자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당장 가늠하기는 힘들다. 다만, 여기서 꼭 짚어두고 싶은 것은 아무런 편견 없이 虛心으로 이 책의 성과를 점검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곧 우리 고대문화의 내용을 풍부하고 또 새롭게 이해하는 올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주보돈 경북대·사학과

신라사와 가야사를 주로 연구해왔으며, 최근에는 백제사, 고대한일관계사까지도 다룬다. 특히 고대사연구방법론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한국 고대사 연구의 현단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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