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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母子의 긴 침묵에서 宗家의 외피를 덜고 마음을 읽다
백발 母子의 긴 침묵에서 宗家의 외피를 덜고 마음을 읽다
  • 윤상민 영화전문기자
  • 승인 2015.12.2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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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안재민 다큐멘터리 감독

시베리아 툰드라 7천km의 대장정을 기록한 「최후의 툰드라」(SBS, 2010), 지상 최대의 바다 태평양 섬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최후의 바다, 태평양」(SBS, 2011), 최초로 DSLR 카메라 캐논 5D mark2를 사용해 찍은 다큐멘터리 「오래된 인력거」(故 이성규 감독, 2011). TV 다큐멘터리에 DSLR 카메라를 도입하고 매뉴얼을 확립한 인물이자 유려한 풍광,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온 안재민 다큐멘터리 감독(48세)의 필모그래피는 대한민국 다큐멘터리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촬영감독으로 20여 년간 카메라를 잡았던 그가 최근 다큐멘터리「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제작 창작집단 917·민프로덕션, 제공·배급 ㈜인디플러그)로 감독에 데뷔했다. 이 작품은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보물 제553호)을 배경으로 16대 宗婦인 권기선 여사와 홀로 귀향해 노모를 모시고 사는 아들인 17대 종손 이준교 씨의 백발 모자의 이야기다. 마음이 황량한 시대에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울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진모영 감독), 「춘희막이」(2015, 박혁지 감독)에 이은 ‘田園 삼부작’의 방점을 찍는 작품이다. 촬영감독의 길을 걷다가 감독이 된 안재민 감독. 그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란 무엇일까. 상수동에 있는 ‘창작집단 917’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 사진=인디플러그 제공

 

고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본분은 뒷전이었다. 공부보다 문화운동에 재미를 붙였다. 풍물패, 탈춤패 활동을 하며 공동체 문화가 궁금해진 그는 수색2-1지구, 현조동 재건축 철거민들과 생활하기도 했다. 철거지역 자체가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다 보니 공부방을 열어 아이들에게는 함께 사는 삶의 좋은 점들, 공동체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졸업을 하고 증권회사에 취업했지만 통 적성에 맞지 않아 사직서를 냈다.

증권회사를 때려치운 그는 곧장 ‘제3영상 프로덕션’에 지원서를 넣었다. 사람들 속에서 부대꼈던 삶의 편린들이 그를 방송으로 이끈 것이다. 촬영경험이 전무한 지원자는 그뿐이었지만 합격했다. 그렇게 20년을 현장에 밀착해 촬영했다.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는 九旬 어머니를 봉양하는 稀壽 아들의 이야기다. 늘 뷰파인더 뒤에서 피사체를 좇던 안 감독은 이들을 어떻게 찾아낸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안 감독과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 「오래된 인력거」의 故 이성규 감독 이야길 하지 않을 수 없다. 2011년 이 감독과 안 감독은 KBS 추석특집 「종가, 500년의 초대」 2부작을 준비하며 이 母子를 만났다. “종가라는 것이 건물, 음식이란 상징으로 사람들의 의식에 박혀 있더군요. 종가 문화를 더 파고 들어가 끄집어낼 수 있는 캐릭터를 찾으려 종가 80여 곳을 돌아다녔는데 못 찾았어요. 그러다 김진환 경북콘텐츠진흥원장이 안동 ‘충효당’을 추천하길래 무작정 찾아갔는데 백발 아들이 노모 산책을 돕고 있더라고요. 딱 느낌이 왔어요.”

어머니는 열여덟에 예안이씨 종손과 혼인했지만 스물여덟에 과부가 돼 70년이 넘게 충효당을 지켜온 종부 권기선 씨. 백발의 아들은 <중앙일보> 기자에서 <월간미술> 국장까지 지낸 전 언론인 이준교 씨다. 방송은 종가의 가장 큰 책무인 ‘奉祭祀 接賓客’을 지키고 있는 전업종손들의 이야기를 조명했지만 카메라를 묵묵히 돌리던 그의 눈은 자꾸만 백발의 아들과 구순 노모에게로 향했다. 이 두 사람에게서 종가라는 外皮를 덜어내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방송촬영을 하며 이성규 감독은 안 감독에게 이 두 모자의 이야기만을 따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라고 조언했다. 방송 촬영을 마치고 안동을 다시 찾은 안 감독은 두 사람의 배경을 걷어내고 거주공간으로서의 종가만을 남긴 채 오롯이 모자에 집중했다. “효의 가치가 대를 이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며느리가 충효당으로 오면 되죠. 그런데 현재 며느리는 분당에서 자영업을 하는데 안동으로 내려가면 종택을 유지할 수입이 사라져요. 이런 사연들을  걷어내고 조금씩만 종가 이야기를 넣은 거예요. 두 분의 관계에 집중한 거죠.” 산 네 개에 산소만 21기. 1년에 제사가 열 번 정도 되니 설 성묘 장면만 찍어도 4일을 내리 붙어있어야 한다. 모자의 산책하는 모습에 마음이 끌린 안 감독. 모자에게 집중하려던 그의 의도는 현실적인 선택도 된 셈이다.

2011년의 뜨거운 여름,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6월 28일 촬영을 종료하기까지 안 감독은 수시로 안동을 찾아 보름, 한 달씩 상주하고 올라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2013년 5월 어머니인 권 종부가 세상을 떠나고 에필로그를 찍기까지 햇수로 5년이란 시간을 기록했다. 해외 촬영에 강의까지 겹쳤지만 틈날 때마다 안동에 내려갔다. “다른 宗宅도 마찬가지지만 자신들이 어떤 집안이라고 절대 드러내지 않아요. 되려 우리 찍을 게 뭐 있냐고 의아해하시죠. 말씀도 잘 안하시고. 혼자서 지키는 거죠. 그게 양반이라고 믿으시는 거고요. 제사 일정 받는 데만 2년이 걸릴 정도였으니…. 가서 인사드리고 얘기하면서 1년이 흘렀을 즈음에야 본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 전에 찍은 건 거의 버린 셈이죠.”

집안 행사 일정은 물론이고 두 모자의 살가운 대화도 없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 그는 무얼 찍은 걸까. 고즈넉한 고택의 모습, 흰 사과꽃밭, 프레임 인아웃하며 산책하는 모자, 밥상에 마주 앉은 장면, 어머니 발을 만지는 장면, 홍시껍질처럼 얇아진 어머니의 주름을 디테일하게 기록한 장면은, 그래서 더 가슴 깊은 곳을 툭툭 건드린다.

안 감독의 이런 작업 방식은 이성규 감독에게 받은 영향이 크다. “「오래된 인력거」를 찍으러 인도에 갔을 때였어요. 이 감독이 촬영을 안 하더라고요. 스탭들에게 한 달 동안 사진을 찍든 놀든 여기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라고 했어요. 피사체들이 우리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준 거죠.” 그런 이 감독과 다큐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편집 후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수 년 간 함께했다. “촬영할 때도 특별한 숏을 요구하지 않아요. 오늘 이런 거 찍을 거야 하며 고민하고 찾을 수 있는 여유를 주죠. 시간이 제한적인 방송다큐에서 연출자가 촬영감독을 믿고 찍기가 쉽지 않거든요. 나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준 적은 없지만 함께 작업을 하던 방식이 자연스레 내 안에 체화된 것 같아요.”

▲ 사진=인디플러그 제공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에는 클로즈업이 많지만 그의 주특기인 타임랩스(저속촬영해 정상 속도보다 빨리 돌려 보여주는 특수영상기법)로 신선한 시도도 했다. BGM 「군밤타령」 가락에 맞춘 타임랩스 영상은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다음 장면을 ‘며느리 방귀’ 이야기로 붙인 것은 편집에서의 신의 한 수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전원 삼부작의 첫 작품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노부부의 사별을 다뤘다. 두 번째 작품 「춘희막이」는 한 남자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본처와 첩의 이야기를 그렸다.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는 모자의 이야기 속에 죽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여기서 삼부작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죽음’이다. 전원 삼부작이 ‘죽음’에 천착한 이유가 있을까.

“우연히 맞아 떨어진 거죠. 그런데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와 조금 달라요. 냉정하게 연출자 입장에서 보면 다큐멘터리에서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극적인 장면 촬영이 어려울뿐더러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를 일이기도 하죠. 그래서 죽음이 다가와야 촬영이 끝나는 거 아니냐고 감독들끼리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는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는 그런 면에서 에필로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죽음 자체는 어찌됐던 슬픈 거잖아요. 죽음으로 끝나면 우울하기도 하고요. 꽃이 죽고 새로운 꽃이 나타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세 작품에 죽음이 공통적인 건 우연한 거지만 제 의도는 에필로그에 있거든요.”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조악한 화면과 프로파간다적인 주제의식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안 감독의 작품들은 뛰어난 영상미로 유명하다. EDIF를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이 이를 입증한다. 스토리와 영상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그에게 다큐멘터리는 과연 무엇일까. “시나리오에 맞게 접근하는 게 극영화라면,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 모습이 비록 거짓일지라도 카메라 앞에서 진정성 있게 보인다면 그조차도 다큐라고 생각해요.” 다큐멘터리가 너무 궁금해서 계속해서 찍고 있다는 그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지금 찍는 게 진정성 있는 사람들의 모습인가 늘 의심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기본 생각이라는 말이다.

모자의 이야기로 종횡무진하던 그가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를 孝에 관한 이야기로 보실 분들이 많을 거예요. 거꾸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정말로 정말로 크다는 걸 이 영화로 느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죽음의 순간 하셨던 말씀은 ‘애비야’였어요. 드러내놓고 보이진 않지만 그 표정과 말투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윤상민 영화전문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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