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15:45 (화)
플라스틱 소화시키는 '식량곤충'
플라스틱 소화시키는 '식량곤충'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5.12.22 16: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44. 갈색거저리
▲ 갈색거저리 <사진출처: 블로그 Naturalist with Ants(alturism.egloos.com)>

참 좋은 세상이다. 옛날 같으면 응당 멀리 물레방앗간을 가거나 집안의 디딜방아에서 곡식을 찧거나 쓿었는데, 요새는 집집마다 정미기가 있어서 그때그때 벼를 빻는다. 쌀을 도정하기위해 오래 쟁여놓은 곳간의 나락가마니를 열면 새까맣고 자잘한 벌레가 눈에 띈다. 가마니를 덕석에 부어보면 거미새끼 퍼지듯 산지사방으로 좍 퍼져 도망을 간다. 볼품없는 놈들이 야행성이라 어둔 곳은 찾아가는 행렬이 제법 장관이다!

말끔하게 쓿은 쌀을 쌀부대에 오래 넣어두면 역시나 쌀벌레가 일고, 그 쌀을 퍼서 널어보면 하얀 먼지 같은 쌀가루가 흩날리니 그놈들이 갉아 먹은 싸라기나 똥이다. 마늘을 넣어두면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쌀벌레는 딱정벌레목 바구밋과의 쌀바구미(Sitophilus oryzae)다. 이렇듯 쌀바구미는 저장해 둔 곡식낟알을 온통 먹어치우므로 해론 벌레(pest)다.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갈색거저리(갈색쌀거저리)와 혼돈하지 말자고 미리 쓴 것이다.

그런데 쌀바구미는 성체가 4mm밖에 되지 않지만 갈색거저리(Tenebrio molitor)는 쌀바구미의 3배나 되는 제법 큰 외래곤충으로, 쉽게 볼 수 없다. 그것은 딱정벌레목, 거저릿과의 곤충(甲蟲, beetle)으로 갈색거저리의 애벌레를 흔히 밀웜(mealworm, 거저리)이라 한다. 갈색거저리는 잡식성으로 주로 쌀·밀·귀리·옥수수 따위를 먹지만 식물은 물론이고 육류고기나 깃털도 먹어치운다. 유럽원산으로 온대지방 북반부에 살고 열대지방엔 살지 못한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거저리’의 뜻을 알 길이 없으니 답답하구려.

갈색거저리(black darkling beetle)는 몸길이 약 15mm이고, 몸빛깔이 어두운 갈색이며, 반질반질 광택을 낸다. 갈색거저리는 알?유생?번데기?성충의 한살이(생활사)를 거치는 완전변태(holometabolic)한다. 밀웜은 체장이 2.5cm나 되지만 성체는 1.3~1.8cm에 지나지 않고, 1~3개월간 살면서 딱딱한 딱지날개를 갖지만 날지 못한다. 배는 5마디로 돼 있고, 최초의 3마디는 서로 약간 달라붙었으며, 딱지날개는 늘 배를 덮는다. 1~2주 후에 짝짓기하고, 암컷은 흙을 파거나 곡식에 알을 낳는다.

갈색거저리의 한살이(life cycle)는 매우 길어서 280~630일이 걸리는 수도 있다. 알은 10~12일 후에 부화하고, 유생이 3~4개월 내지 18개월에 걸쳐 연신 8~20회나 탈피하며, 번데기는 25℃에서 7~9일, 20℃에서는 20일간 계속된다. 주로 인가 근처에서 유충으로 월동하다가 봄에 번데기와 성충으로 탈바꿈한다.

조금 보태면 갈색거저리의 알은 콩 모양(bean shaped)인 것이 처음은 끈적거리지만 곧 딱딱하게 굳는다. 유생은 갈색으로 허물을 벗으면서 자라 번데기가 되기 위해 많은 양분을 저장한다. 하얀 번데기는 입도 항문도 없어서 먹지 않으며, 다리와 날개가 움직이지 못하고 단지 꿈틀(wiggle)거릴 뿐이다. 1~3주 동안에 성체가 될 기관들이 형성된다.

유충 밀웜은 도마뱀·양서류·물고기·모이·닭·물고기 먹잇감으로 썼다. 뒤늦게 근래와 사람들도 먹기 시작했으니 밀웜은 단백질함량이 높아 식품원료로 가치가 있다해 걸음마수준이지만 미래식량자원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시중에 이미 스낵이나 요리로 팔리고 있다.

밀웜유생 사육은 아주 쉽다. 콩가루·귀리(겨)·밀기울에 우유와 효모를 넣어주고 수분 공급용으로 자른 토마토·당근·사과를 넣어줘 대량으로 키운다. 상업적으로 키울 때는 먹잇감에 탈피를 방해하는 유생호르몬(juvenile hormone)을 섞어줘서 번데기가 되지 않고 영원히 애벌레로 머물게 해, 이른바 ‘대자 밀웜(giant mealworm)’을 만든다. 잘 키우면 1년에 6세대까지 갈 수 있다.

자고이래로 우리도 메뚜기나 방아깨비(암놈), 누에번데기는 벌써부터 걸신 걸린 듯 게걸스레 먹어왔고, 딱정벌레목 꽃무지과에 속하는 몸길이 17~24mm인 흰점박이꽃무지 유충(꽃벵이)과 갈색거저리유충(고소애)은 식용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청(시약청)이 한시적이지만 이미 인정했다. 장수풍뎅이와 귀뚜라미도 곧 추인할 것이라 한다. 정작 진작 해야 할 일로 사실 서둘러도 모자랄 판이고 늦다 하겠다. 꽃벵이는 보통 말하는 굼벵이로 예로부터 초가지붕에서 채집하거나 사육해 널리 판매했던 것이다. 고인이 된 대학동창 한 사람도 굼벵이가 간을 보한다해 참 많이도 먹었는데….

유엔 식량농업기구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20억명이 1천900여종의 곤충을 먹고 있다는데, 딱정벌레·꿀벌과 말벌·개미·메뚜기·귀뚜라미·나비나방에 심지어 파리모기도 그 속에 든다. 태국 치앙마이를 갔을 적에 대뜸 객기를 부려 허름한 야시장을 졸래졸래 일부러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두리번거리다 보니 가까이에 곤충을 튀겨 파는 집이 있었다. 개구리에서 시작해 개미 알·전갈·매미 등이 소쿠리에 한 가득 두둑이 쌓여 있었다. 강퍅한 집사람이 괴기스럽고 지질하다고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아랑곳 않고 용기백배! 포시럽고 썩 고소하면서 바삭거리는 것이 그 풍미가 일품임을 미처 몰랐네!
 

근래는 변변치 못하고 시답잖은 갈색거저리 유충(밀웜)이 플라스틱의 일종인 도처에 널려있어 환경을 더럽히는 스티로폼을 가뿐히 먹어치우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신통방통하게도 거저리의 창자 속 미생물이 플라스틱을 소화시킨다고 하니 환경보호에도 안성맞춤인 좋은 곤충이라 하겠다. 꿩 먹고 알 먹는다더니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