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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자질과 역사의 흥망성쇠
인물의 자질과 역사의 흥망성쇠
  • 교수신문
  • 승인 2015.12.20 08: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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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용무도’를 추천하며]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

한문에서 昏은 해가 져서 사방이 어두워진 상태를 뜻하는 글자로, 사리분별에 어둡고 품성이 포악한 군주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던 말이다. 庸은 보통사람의 평범함에 겨우 미칠까말까 한 용렬한 인품을 뜻하는 글자로, 식견이 없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무도(無道)란 사람이 걸어야할 정상적인 궤도가 붕괴되어버린 야만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 네 글자가 합해진 ‘혼용무도’라는 성어는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失政)으로 인해 나라 전체의 예법과 도의가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상태를 말한다.     

역사가들은 ‘혼용무도’의 표본으로 秦의 2세 황제 胡亥를 들곤 한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지방에 순행을 나갔다가 갑자기 병사하게 되자, 환관 趙高는 유서를 조작해 적장자가 아닌 호해를 후계자로 옹립하고 뒤에서 국정을 농단했다. 호해는 환관 조고의 농간에 귀가 멀어 실정과 폭정을 거듭하다가, 즉위 4년 만에 반란군의 겁박에 의해 자결을 하고 진은 멸망하고 말았다. 

진시황은 비록 폭군이라는 비난을 듣기는 하지만, 최초로 거대한 통일 제국을 이룬 그의 웅대한 포부와 비범한 판단력 그리고 과감한 추진력은 후대 사가들에 의해 새로운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2세 황제 호해는 부친의 비범하고도 웅대한 식견과는 거리가 먼 용렬한 인물로, 포악하고 잔혹한 통치술만 따라서 흉내 내다가 결국은 나라를 망하게 만든 무능한 군주로 평가된다. 

창업과 수성의 도는 서로 다르다. 새로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는 경쟁자를 물리치고 반대파를 극복하기 위해 칼과 피가 불가피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세워진 나라를 안정과 번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칼과 피가 아닌 덕과 땀이 요구되는 것이다. 진의 2세 황제 호해의 ‘혼용무도’와는 정반대로, 唐의 2세 황제 태종은 유도명군(有道明君)으로 이름을 날린 걸출한 군주다.

그는 부친 당 고조가 세운 나라를 안정되게 지키기 위해 무력이 아닌 문의 정치, 칼이 아닌 덕의 정치를 선택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무력을 써야 하지만, 이룬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문으로 해야 한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해서 어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인가?” 당 태종이 말하는 ‘무’가 폭력과 형벌에 의한 강압의 정치를 뜻한다면, ‘문’은 문화의 힘에 의한 포용의 정치를 말한다. ‘문’의 정치를 편 덕에 그의 치세는 정관지치(貞觀之治)라는 전대미문의 융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사람이 중요하다. 한 해를 보내면서 새삼 느끼는 일이지만, 제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제도를 만드는 자도 사람이고 제도를 운용하는 주체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사람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문왕과 무왕의 (훌륭한) 정치는 서책에 넘치도록 기록돼 있다.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그 정치가 일어나게 될 것이고, 그러한 사람이 없다면 그 정치는 스러지게 될 것이다.”(『중용』20장) 이 구절을 줄여서 인존정거(人存政擧)라 한다. 그 사람이 있어야 그 정치가 흥하게 된다는 뜻이다. 

플라톤은 일찍이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저질스런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국가』 347C). 비록 공자가 말한 '그 사람'(其人)은 현재로서는 기약조차 무망한 일이라 할지라도, 플라톤이 말한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년 다가오는 총선에서 모두가 소중한 주권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교수사회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를 채택한 것은 하루빨리 우리사회가 어리석고 용렬한 자들의 지배체제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승환 고려대ㆍ철학과 (기고)
미국 하와이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횡설과 수설: 4백년을 이어온 조선유학 성리논쟁에 대한 언어분석적 해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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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인영 2015-12-22 11:48:01
교수님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위에서 지적하신 무도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즐겨쓰신 대도무문의 차이점을 알고져 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