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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국민’ 정체성, 남녀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민족·국민’ 정체성, 남녀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 김대현 연세대 사학과 박사과정수료
  • 승인 2015.12.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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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성(聖/性)스러운 국민: 국가, 법, 젠더/섹슈얼리티’ 학술대회 참관기
▲ 1960~70년대는 보건소나 ‘가족계획 지도원’을 찾으면 불임시술을 무료로 받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지난 4일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박찬승)는 ‘성(聖/性)스러운 국민’이라는 표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2004년에 설립된 이 연구소는 ‘민족’과 ‘국가’의 범주에 거친 의문을 제기하는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을 표방하며, 탈학제적 연구방법론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날의 학술대회 또한 이러한 연구소의 모토에 충실했다. 행사의 골자는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성(sexuality)과 젠더, 그리고 ‘몸’을 ‘국민’의 것으로 조형하는 가운데, 그 국민화의 포섭과 배제의 양상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피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 법, 젠더/섹슈얼리티의 상호 연관성이 부각됐으며, 역사학 외에도 법학, 과학기술사회학, 의학 등의 방법론 및 연구 성과가 참조됐다. 발표는 총 다섯 명의 연구자를 중심으로 진행됐고, 약정토론이 부가됐다.

첫번째 발표로 홍양희(한양대)는 「‘선량한 풍속’을 위하여: 식민지 형법과 성(Sexuality) 통제」라는 제목으로, 2015년 위헌 판결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한민국의 ‘간통죄’ 형법 조항의 기원을 식민지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했다. 부부 중 여성의 혼외관계만을 통제하고 죄의 성립을 ‘남편의 고소’에 매어둔 친고죄 조항 등 명백히 남녀불평등적인 위 형법 조항이 식민지 시기부터 제정·적용됐으며, 법 적용 과정에서 ‘피의 순결’, ‘선량한 풍속’ 등이 주요 전거로 활용됐음을 입증했다.

둘째로 허윤(이화여대)은 「1950년대 퀴어 장의 변동: 여성혐오의 전이와 동성애의 범죄화」라는 제목으로, 1950년대 소설 속 여성동성애의 재현이 상대적으로 자연스럽던 것에서 점차 위협적인 양태로 변동하는 점에 착안해, 당대의 젠더/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보수화되는 양상에 주목했다. 또한 이러한 문학 장 내의 변동과 더불어, 같은 시기에 나타난 병역법 개정과 경범죄처벌법 적용 양태를 함께 검토해 입체감을 더했다. 특히 이때까지 국문학 혹은 역사학의 연구 대상으로 포착되지 못했던 역사 속 성소수자의 실체와 재현에 관해 시론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발표였다.

셋째로 김청강(한양대)은 「나라를 위해 죽을 권리: 병역법과 남성적 국민 만들기(1927-1971)」라는 제목으로, 동 시기에 제정되고 적용된 병역법의 변천과 주요 쟁점에 관해 정리했다. 1927년 제정된 식민지 조선의 병역법 내 ‘제1국민병역’, ‘제2국민병역’의 구분이 현재까지 활용되고 있으며, 1943년의 병역법 개정 때 조선인 중 미성년자에게만 징병제가 실시된 점을 지적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민 모두에게 병역을 허여하는 ‘국민개병제’에 입각해 병역법을 공포했으나 현실적으로 적용이 어려웠던 점을 포착했다. 더불어 1968년 주민등록법과 함께 1971년 병역법 개정으로 비로소 병역기피자가 1% 미만으로 떨어졌던 당시의 시대상을 조망했다.

넷째로 이정선(인하대)은 「탈식민 국가의 ‘국민’ 경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 ‘내선결혼(內鮮結婚)’ 가족의 법적 지위」라는 제목으로, 해방 이전부터 상당수 존재했고 당국에 의해 권장됐던 조선인·일본인 부부 및 가족이 대한민국 정부에서 어떤 경로로 국적을 얻고 국민으로 포섭되는지를 규명했다. 해방 후 미군정기에는 내선결혼 부부의 남한 거주 자격과 재산 귀속을 오직 ‘남편의 호적상 본적’을 기준으로 결정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적법 제정 시에는 외국인 중 ‘대한민국의 국민의 처가 된 자’ 등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국적을 허용함으로써, 부계 혈연주의에 입각해 내선결혼 가족구성원의 국적이 재단됐음을 드러내었다.

다섯째로 소현숙(한양대)은 「‘부계’ 가족과 ‘건전한’ 국민 사이의 균열: 1950~70년대 동성동본 불혼제를 둘러싼 법과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1997년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폐지된 가족법 중 ‘동성동본불혼’ 규정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당대의 사회상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이 규정을 제정할 당시 유림과 대학생들이 ‘우생학’의 견지에서 유전적으로 열등한 자손을 낳게 하기에 ‘동성동본혼’을 반대했다는 사실과, 이 ‘동성동본’ 여부와 함께 혼인 금지조항으로 사용된 ‘혈족’의 여부가 공무 현장에서는 사실상 자의적인 근거로 결정됐던 현실이 부각됐다. 이에 ‘동성동본혼’의 사실혼 관계에서 탄생한 자식이 ‘사생아’로 살아가는 상황에 놓였고,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에서 이러한 가족들 간 임신시 합법적 인공임신중절을 가능케 하는 법규정이 신설됐음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정연보(한양대)는 「과학과 국가를 위한 몸: 출산조절기술에서 줄기세포연구까지」라는 제목으로, 앞서 언급한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을 전후로 진행된 한국의 가족계획 사업과, 2005년에 발생한 황우석의 줄기세포연구 조작사건에서 드러난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과 의료적인 개입의 양상을 비교 검토했다. 1960~70년대 가족계획 당시 한국의 여성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출산조절 시술이 적용됐는데, 이는 당시 제3세계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피임기술을 임상실험하고 이와 관련된 데이터를 생산하는 장으로 활용된 것과 긴밀한 연관이 있음을 확인했다. 더불어 이러한 양상이 2005년의 줄기세포연구 당시에도 난자의 공여 등과 연관돼 있었음을 밝히고, 이를 과학과 국가의 발전에 여성의 실제 ‘몸’이 동원된 결과라 정리했다.

이들의 발표문을 꿰뚫는 논지는, 일제 식민지 시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시기를 통틀어, ‘국민’을 형성하는 논리 가운데 다분히 젠더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민족’과 ‘혈족’의 개념이 적용돼, 실제 여성/남성의 ‘부부관계’와 ‘몸’에 실질적인 억압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이는 일견 자명하고 또 단일하게 보이는 ‘민족’과 ‘국민’의 정체성이 남녀에게 결코 평등하게 적용되지 못했음을 드러내며, 그것 자체로 이들 정체성 범주가 노정해온 자의적 폭력의 역사를 보여준다.
발표 후 열띤 토론이 이어졌으며, 종합토론 때에는 위 발표들을 통해 자연스레 의문을 갖게 될 ‘우생학’의 실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발표에서 일부 드러난 바, 우생학이 당대 젠더 관련 지식장에서 실질적인 의사(pseudo)-과학의 비중으로 다뤄졌던 만큼, 그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과 함께 과학적·의학적 분석이 배가돼야 ‘우생학’의 역사적 실체에 보다 가깝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진단이었다. 이번 학술대회 발표문의 스펙트럼에서 알 수 있듯, 학제간의 소통을 표방하는 동 연구소의 향후 연구역량이 기대되는 대목이었다.

 김대현 연세대 사학과 박사과정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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