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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직선제의 명분과 명운
총장직선제의 명분과 명운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5.12.14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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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최근 교육부가 국립대 총장선출제도를 추천위원회에 의한 선출, 이른바 ‘간선제’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지난 3일 교육부 산하기구인 ‘국립대학 총장임용제도 보완 자문위원회’(위원장 백성기)의 ‘건의안’을 발표를 기점으로 빠르게 가시화 되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문위는 말 그대로 ‘자문’에 불과하다”며 거리두기를 하는 듯 보였던 교육부는 단 일주일 만인 9일 ‘보완 방안’을 고지하려다 스스로 철회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총장임용후보자 무순위 추천 방안’을 발표한 지는 딱 한 달만이다.

▲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지난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2단계 국립대 선진화 방안’을 통해 ‘총장직선제 폐지’를 선진화지표로 꺼냈을 때 핵심적인 명분은 선거를 둘러싼 교수들의 패거리문화 근절과 교육 질 제고였다. 투표권이 교수들로 한정되면서, 교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차기총장 선거를 준비하느라 임기내내 교육에 소홀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 교육부는 학부교육선도대학지원사업과 대학구조개혁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교수들에게 취업알선을 포함한 학부교육 강화와 세계적인 논문 실적을 함께 요구했다. 이를 테면 ‘몰입과제’를 교수들에게 던진 것이다.

이러한 명분은 과도한 자율성 침해 여부를 떠나, 대학 안팎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역추적 해보면 교육부는 이때부터 사실상 총장직선제의 종언을 고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교육부 정책에 저항했던 교수들은 교육부장관 퇴진운동을 조직했고, 최근엔 자율성의 회복을 촉구하면서 산목숨을 저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오히려 더 빠르고 강력한 방식으로, 직선제 자체를 불가능하도록 법안을 손질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총장직선제가 폐지 수순을 밟는 과정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교수들이 크게 놓친 게 있다면, 바로 ‘명분’에 대한 비판이다. 명분을 뒤집을 더 큰 대의를 모색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예컨대 교육부가 직선제의 폐해로 ‘패거리문화’를 들고 나왔다면, 교수들이 반박할 더 큰 대의는 다름아닌 구성원 다수의 민주적인 선출방식이었다. 학생, 직원, 동문을 비롯해 정부가 강조해 온 산학협력 유관업체, 학교기업 관계자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는 등 ‘화끈한’ 직선제 방안을 내놓을 순 없었을까. 내년부터 비정규교수에게도 전임의 지위를 부여키로한 ‘강사법’이 시행된다면, 이 법이 완전하든 완전치 않든 비정규교수들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겠다고 할 순 없었을까. 교육부가 강조해온 정책을 반대 목소리에 오롯이 수렴하는 것 말이다.

교육부가 법을 고치면서까지 직선제 폐지를 밀어붙이기 전에 국립대 교수들이 먼저 ‘열린 방안’을 내놨더라면 대학구성원과 대학 밖 여론의 폭넓은 지지를 등에 업고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교육부가 붙들고 있던 명분은 교수들만의 축제, 다시 말해 ‘교수직선제’였으니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안타깝게도 부산대, 강원대 등 국립대 교수들의 상상력은 학생과 직원의 투표 참여비율을 기존보다 조금 더 끌어올리고, 여기에 조교를 포함시키는 데 그쳤다. 그러면서 ‘해당대학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따른 선정’이라는 교육공무원법(24조)을 근거로 법정다툼을 벌이려는 데 매몰됐다.

총장선출제도를 둘러싼 교수들의 이와 같은 양상은 최근 국민대, 연세대 등 사립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직선제에 관한 논의가 중심은 아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엔 ‘왕국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이냐’를 두고 벌이는 ‘힘겨루기’이란 점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 식으로 총장이 선출된다고 한들, 그 총장이 최고의 교육·연구기관으로서 본연의 기능을 살려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각종 구조조정·평가와 관련해서도 ‘철학이 살아있는’ 의사결정을 기대하긴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육부의 명분인 ‘직선제=패거리문화’라는 도식에 손쉽게 휩쓸려버리는 논리적 함정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그땐 더 큰 압력이 대학을 집어삼킬 것이다.

교육부·대학본부·교수 중 어느 누가 이 지난한 ‘파워게임’에서 승자가 될 것인지는 그리 궁금하지 않다. 진정으로 대학 본연의 역할을 지켜내고, 교육과 연구에 온힘을 쏟을 수 있도록 보다 발전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방식이면 된다. 어떤 힘이든 이것이 논쟁의 중심이 되길 바란다.

대학구조조정이 학과 간 벽을 허물면서 불어닥치고, 급감하는 학령인구와 다양화 되는 고등교육기관의 변화 앞에서 총장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뽑아야한다’는 보편타당한 ‘명분’을 제시하는 쪽이 이기는 싸움이란 것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특히 교육부의 의사결정이 일주일, 한달 단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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