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6:00 (토)
로빈슨과 피케티, 그리고 불평등
로빈슨과 피케티, 그리고 불평등
  • 교수신문
  • 승인 2015.12.09 14: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텍스트로 읽는 신간_ 『우울한 경제학의 귀환』 류동민·주상영 지음|한길사|336쪽|18,000원

 

 

『국부론』의 저자 스미스를 시작으로 주로 영국에서 발전한 경제학의 흐름을 고전학파(classical school)라 부른다. 고전학파 시대에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라 불렸다. 칼라일이 말한 우울한 과학은 바로 이 시대의 정치경제학이었다. 정치경제학은 성장과 분배에 기초해 자본주의의 장기 동학(long-run dynamics), 즉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지를 분석하고자 했다. ‘정치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이윤율이 저하하고 성장이 멎는 암울한 미래를 예견했다. ‘우울한 과학’이 맬서스의 이론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1870년대 이후 등장한 신고전학파(neo-classical school)는 개별 경제주체의 미시적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름도 경제학으로 바뀐다. 1890년에 출간된 마셜의 책 제목이 『정치경제학원리』가 아닌 『경제학원리(Principles of Economics)』라는 사실이 이를 상징한다. 신고전학파의 경제학은 고전학파 정치경제학이 장기 동학에 가졌던 관심을 잃게 된다. 물론 해로드(Roy herrod)나 도마(Evsey Domar), 솔로로 이어지는 성장이론은 일정 정도 고전학파적 전통 위에 놓여 있는 것이지만, 그 전개 과정에서 ‘우울함’을 버리고 ‘과학’을 취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칼라일이 지적했던 또 다른 ‘우울함’, 즉 시장 논리로만 현실을 재단하는 경향은 더욱 강화됐다는 것이 역설이라면 역설이었다.

피케티는 소득분배와 자본수익률 등 몇 가지 기초적인 거시경제 변수 사이의 단순한 관계에 근거해 현실적 함의를 지닌 강력한 장기 분석을 제시한다. 이 점에서, 그의 분석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간에, 피케티는 리카도(David Ricardo)나 마르크스 등이 추구했던 장기 동학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바로 ‘우울한 과학의 귀환’이다.

로빈슨과 피케티의 역사적 에피소드가 주는 데자뷔(기시감)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경제학이 분배와 성장이라는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40여 년이 지나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경제는 어떻게 성장하며 그 과정에서 분배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스미스가 이미 1776년 『국부론』에 던졌던 물음에 어떤 식으로든 대답하지 않는다면, 경제학은 제아무리 복잡한 고등수학이나 통계학 기법으로 치장하더라도 결국엔 지적 유희, 더 나쁘게는 물질적 이익을 둘러싼 신념의 표명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분배와 성장이론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은 지식의 고고학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지금 여기’ 불평등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우리가 굳이 ‘우울한’ 경제학의 역사를 되새겨보려는 까닭이다.

 

저자인 류동민 충남대 교수와 주상영 건국대 교수는 각각 비주류-주류경제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연구자들이다. 정치경제학과 경제학설사를 강의하는 류 교수와 거시경제학과 화폐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는 주 교수가 모처럼 머리를 맞대고 ‘불평등’을 풀어낸 이 책은 피케티 이후 경제학의 과제를 흥미롭게 짚어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