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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블록’ 개념으로 ‘퇴행적 민주주의’의 얼굴을 읽다
‘역사적 블록’ 개념으로 ‘퇴행적 민주주의’의 얼굴을 읽다
  • 김종법 대전대 글로벌융합창의학부·정치사상
  • 승인 2015.12.09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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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그람시와 한국지배계급 분석』 김종법 지음|바다출판사|354쪽|20,000원

 

1920년대와 1960년대라는 40년의 시차가 존재하지만,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라는 체제가 등장했던 근대 국가 초기나 1960년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체제의 등장과 지배는 근대 국가 초기에 등장했다는 공통점과 체제적인 유사성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비교의 시의적절성도 존재한다.

 

미국의 유력 언론 중의 하나인 <더 네이션>과 <LA타임스>지는 박근혜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로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의 행태에도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독재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2015년 12월 미국 언론에서 다루고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그런 표현이나 퍼포먼스는 범죄이거나 제3자에 의해 제기되는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라는 내용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1980년대나 박정희의 유신체제 이전에나 들을 수 있었던 ‘독재’, ‘국가전복세력’, ‘빨갱이’ 등의 용어를 2015년에는 너무나 자주 그리고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2015년의 대한민국은 어떤 세상이기에 이러한 후진적이고 아프리카의 개도국과 같은 비민주적 환경으로 퇴행하고 있을까.

이 책은 아마도 그러한 의문에 대한 실마리와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책에는 대한민국의 근대 역사가 뒤틀어져 출발하게 되면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퇴행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자화상과 모습이 그람시를 통해 그려지고 있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적 과오가 비민주적인 지배계급 형성에 어떤 역할과 기능을 했는지, 그러한 지배계급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지를 그람시의 ‘역사적 블록’ 개념과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 세력이 여전히 한국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남아 있기에 어쩌면 이러한 시도는 수많은 비난과 오해의 표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국내 언론과 외국의 언론이 박근혜 정부를 평가하는 시각과 기준이 다르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 체제분석을 정확하고 유효성 있게 시도했던 수많은 선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뒤집거나 새로운 해석을 추구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선구적인 연구 결과물을 충분히 참조하고 고려해 학문적으로 적절하게 정리하고, 그 내용을 기반으로 독자들에게 한국 사회 분석의 새로운 예시와 이해 가능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과학적 과거평가가 거세된 시대

대한민국이라는 지리적인 공간과 1945년 일본으로부터 국가를 되찾은 해방 이후부터 현재라는 시대적인 배경 아래 정치권력의 속성과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을 그람시적으로 재해석한다는 작업이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어쩌면 2012년 대선이 박근혜의 승리로 귀결된 상황에서 얼마나 학문적인 유용성과 실질적인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논란과 평가절하가 뒤따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국민들이 성공했다고 평가하는(제 18대 대선은 박근혜의 당선보다는 박정희의 승리라는 측면이 더 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체제와 시대를 분석하고 규정한다는 시도 자체는 수많은 위험요소와 함께 치열한 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람시를 통해 박정희 체제를 분석하고자 하는 의도와 목적은 분명한 것이다. 특히 여러 공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와 분석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방향과 이미 의도된 결론을 증명하는 수준에서 진행돼 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조금은 다른 시각과 방법의 적용과 재해석은 향후 한국 사회 분석을 위해서도 분명 필요한 작업이다.

중세로부터 근대로 넘어오는 기간과 과정이 그 어느 국가보다 짧았던 서구의 이탈리아나 동아시아의 한국 역시 근대국가 출현 과정은 너무도 유사한 측면을 갖는다. 1920년대와 1960년대라는 40년의 시차가 존재하지만,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라는 체제가 등장했던 근대국가 초기나 1960년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체제의 등장과 지배는 근대 국가 초기에 등장했다는 공통점과 체제적인 유사성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비교의 시의적절성도 존재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근현대 시기에 대한 평가는 외부적이거나 혹은 내부적인 요인과 이유들로 인해 올바른 해석과 시도들이 너무나 자주 비틀어지고 변형됐다. 적절하고 올바른 평가와 재해석의 시기마저 이제는 찾기 어려워지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아니 어쩌면 영영 과거에 대한 과학적이고 정확한 평가 기회마저 실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현재의 여건과 환경은 지나간 한국 사회 분석에 대한 각성과 국민적인 관심을 요구하고 있다. 그람시의 이론과 개념을 통한 한국 사회의 사례 분석은 바로 그러한 각성과 국민적 관심의 조그마한 시도일 뿐이다.

그러나 학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 사회에서 그람시를 소개하는 작업과 그람시의 이론과 개념들을 한국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작업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이 책은 깨닫게 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와 내용은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것들이다. 그람시라는 이탈리아의 낯선 정치이론가의 이론과 개념은 차지하고라도 너무나 많은 주제들이 이 책을 채우고 있다. 이러한 주제군들 중에서 몇 가지를 분류해서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이탈리아 파시즘 체제, 파시즘 체제의 지배자인 무솔리니, 이탈리아 통일운동, 지역문제인 남부문제 등의 이탈리아 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 그 첫 번째 주제들이다. 두 번째는 그람시 이론과 개념들에 대한 연구다. 헤게모니론, 역사적 블록 개념, 지배계급의 문제, 시민사회론, 민주주의론, 국가론 등의 개념과 이론을 다루고 있다. 세 번째는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연구 주제들이다. 특히 한국의 지배계급, 친일, 친미, 반공, 독재, 한국적 민주주의, 개발독재론, 한국사회론, 한국사회구성체 논쟁 등이 주요한 주제들이다.      

 

2015년은 기억해야할 한 해

세 가지 주제를 함께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출간 연도인 2015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억될 수밖에 없는 해일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은 대한민국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였다. 국민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보여주기보다는 절망과 실망을 안겨준 올 한해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본다면 꼭 기억해야할 시간이었다. 이 책이 그런 대한민국의 실재와 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면서, 절망과 실망을 안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렇게 만든 것이 위정자들이나 친일과 독재의 주역들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보다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책임을 통감하고,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주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참여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기초와 토대를 만들자고…… 국가는 절대 국가권력에 의해 스스로 괴물국가나 독재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무지하고 현실을 외면하며 참여하지 않는 수동적인 국민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비록 이 책이 많은 면에서 부족하고 지루함을 갖춘 전형적인 현학서라고 평가받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부패하고 추악한 지배계급이 연속적으로 대한민국을 망치는 일을 간과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하자고…….”

 

김종법 대전대 글로벌융합창의학부·정치사상

필자는 이탈리아 토리노대에서 그람시 헤게모니론에 대한 연구로 국가연구박사(Dottorato di Ricerca)를 받았다. 저서로는 『그람시의 군주론』 등이 있으며, 현재 『옥중수고』 번역 작업에 천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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