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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표준화’ 통해 상담학의 학문적 기틀 다졌다
‘용어 표준화’ 통해 상담학의 학문적 기틀 다졌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12.08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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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상담학 사전(전5권) 』 김춘경 외 지음|학지사|전체 3,562쪽|세트 200,000원

편찬자들은 과연 누가 이 사전을 사용하는 ‘예상 사용자’인가를 고심하면서 그 범위를 잡아내고자 했다. 이들은 예상 사용자를 정하기 위해 국내에서 출판 혹은 번역된 10종의 사전과 미국과 일본에서 출판된 3종의 사전을 분석했다.

 

‘우울증’, ‘ADHD’, ‘강박증’, ‘정신분열증’, ‘공황장애’, ‘트라우마’ 등과 같은 전문용어들은 더 이상 상담 및 심리치료 전문가만이 이해하고, 사용하는 어려운 전문용어가 아니다. 최근 각종 사회문제에 따른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상담심리 관련 용어들은 전문가 간의 연구와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지식 확장 및 의사소통 속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생활지도 차원에서 중·고등학교 현장을 중심으로 적용되던 상담학은 국내 도입 반세기만에 정신건강의 중요성과 함께 더욱 대중화되고, 세분화되고 있다. 그러나 상담학의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상담학의 정체성과 전문성 확립에 대한 노력은 여전히 시작 단계에 있다.

특정 학문이 정체성을 인정받고, 확고한 사회적 지지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회·역사적 요구에 따른 가치뿐 아니라, 학문의 연구결과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축적한 학문적 기틀이 필요하다. 이 때 해당 학문 분야의 학술용어가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편찬돼 있는가의 여부는 학문적 기초의 견실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며, 학문적 업적의 전승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중요한 눈금이 될 수밖에 없다.

1980년대 말, 학계에서 상담의 학문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의 노력으로 상담학 전문용어의 정리와 표준화, 그리고 이를 체계적으로 종합한 ‘상담학 사전’의 편찬 작업을 시작했다. 故 우재현 대구대 교수가 선구적 역할을 했다. 그는 외국의 상담학 사전을 기초로 1천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사전 편찬작업을 진행했지만, 아쉽게도 완성하지 못하고 타계했다. 김춘경 교수와 최웅용 대구대 교수(산업복지학과)가 그의 사전 작업을 돕고 있었던 터라, 사전 편찬작업은 중단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다.

‘마중물’이 된 故 우재현 교수의 선구적 작업

우 교수가 남긴 1천여 쪽 분량의 ‘마중물’을 놓고 상담학 사전편찬을 완성하려고 고민하던 김춘경 교수에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그의 상담학 사전편찬 계획이 한국연구재단의 ‘2009~2011년도 기초토대연구사업’으로 선정돼 3년 동안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지원에 힘입어 더 많은 연구자와 연구보조원들이 참여할 수 있었고,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절차를 거쳐 상담한 사전을 새로운 형태와 내용으로 완성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상담학 발전과 성과를 총체적으로 정리한 전문학술사전’이 빛을 보게 됐다.

상담학 사전편찬 연구책임을 맡은 김 교수는 “상담학은 인접 학문에서 온 내용이 많아서 개념적인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고, 외국에서 정립된 개념의 상담학 전문용어들이 일정한 기준 없이 무분별하게 번역·소개된 결과, 하나의 개념에 대응하는 한국어 용어가 여러 개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면서, “이는 상담학 관련 연구자와 임상가 그리고 상담서비스 소비자들 간에 효율적인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상담학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의 이 설명에서 『상담학 사전』의 위치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런 현실을 반영, 학지사(대표 김진환)가 야심차게 준비해 내놓은 『상담학 사전』은 연구의 기본적인 도구인 용어의 의미를 표준화하고, 그 용법을 명료화해 상담학의 발전과 성과를 총체적으로 정리한 국내 최초, 상담학 전문 학술사전으로 손색이 없다. 용어의 가나다순에 의해 총 5권으로 구성했으며, 상담학 관련 전문지식과 학문적 성과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해 상담학 관련 전문용어의 개념과 쓰임을 명확히 했다. 이와 함께 용법에 맞는 전문용어를 제공하여 상담전문가들의 교육과 연구 활동과 현대인의 명확한 의사소통을 돕는다.

이번 작업에는 최웅용 대구대 교수를 비롯, 이수연 대구한의대 교수(청소년복지상담학과), 이윤주 영남대 교수(교육학과), 정종진 대구교대 교수(교육학과)가 함께 참여했다.

이들 편찬자들이 내세우는 『상담학 사전』의 특징을 보면, △상담학과 상담학 인접 학문 분야의 용어를 체계적으로 정리 △상담학 인접 학문 분야와 학제 간 교류를 활성화 △상담학과 관련한 모든 서비스의 질과 수준을 향상 △상담학을 배우는 초보 학습자와 상담전문가들을 위한 안내서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상담학 영역의 표제어들을 체계화해 관련 연구논문과 저술에 사용하는 학술용어들을 통일한 점이 돋보인다.

또한 편찬자들이 밝힌 『상담학 사전』의 과학적이고 구조적인 편찬과정 역시 주목할 만하다. 사전편찬과정은 상담학 영역에 속한 전문용어의 시소러스(Thesaurus) 구축, 즉 상담학 관련 데이터를 검색하기 위한 키워드 정립을 가능하게 해 상담학과 상담학 인접 학문과 관련한 용어의 정의를 확고히 하고, 상담학을 널리 보급할 수 있는 강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사전편찬과정 설명한 ‘일러두기’도 돋보여

『상담학 사전』 편찬자들은 ‘일러두기’를 단순하게 취급하지 않고 한걸음 더 들어가 18쪽 분량의 내용으로 전문화했는데, 이건 매우 값진 작업으로 읽힌다. “상담학 사전의 편찬과정과 편찬과정에서 이뤄졌던 연구와 작업의 성과를 거시구조적 측면과 미시구조적 측면으로 나눠 소개한다”라고 말하면서 경험 지식을 공유하고자 한 것이 그렇다. 예컨대 이번 사전 편찬자들은 과연 누가 이 사전을 사용하는 ‘예상 사용자’인가를 고심하면서 그 범위를 잡아내고자 했다. 이들은 예상 사용자를 정하기 위해 국내에서 출판 혹은 번역된 10종의 사전과 미국과 일본에서 출판된 3종의 사전을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전문가 TF팀을 구성, 논의를 거쳐 상담학 관련 석사 이상의 전공자들을 사용 대상자로 결정했다.

사전 사용 대상자를 결정한 다음의 작업은 그 필요와 요구에 맞는 사전의 형태와 크기를 결정하는 일이다. 한영 대역어 사전이나 간단한 개념 정의만 포함하는 용어사전의 형식보다는 보다 다양한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용어사전식의 집약적 개념 설명을 포함한 백과사전식의 의미 기술을 하는 것으로 기본 방향을 설정했다. 편찬 연구팀이 사전 편찬을 위해 수행했던 전체적인 과정과 연구팀이 도출한 상담학 사전의 미시구조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도표’와 같다.

물로 사전의 한계도 있다. 사전편찬 연구책임자인 김춘경 교수는 “전문용어들을 가능한 한 이 사전에 총망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상담학의 발전 속도를 따르기에는 역부족이다”라고 말하면서 “계속적인 수정과 보완을 통해 더욱 충실한 사전을 만들어 나갈 것을 기약한다”라고 밝혔다. 어쩌면 이는 상담학뿐 아니라 현대 학문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6천~7천개가 넘는 표제어를 수집·분류하고, 이를 백과사전식으로 의미 기술함으로써 한국 상담학의 수준을 확인한 『상담학 사전』은 6년여의 시간 속에 온축돼 세상에 나왔다. 한국 상담학계가 한국 학문공동체에 또 하나의 큰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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