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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매겨 교수 쫓아내는 대학
점수 매겨 교수 쫓아내는 대학
  •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 승인 2015.11.30 11: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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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지난 8월말, 38년 동안 정들었던 경북대를 떠나 드디어 명예교수가 됐다. 그럼 나는 지금까지 불명예교수였단 말인가? 하여튼 명예라는 말은 어쩐지 어감이 좋다. 게다가 지하철 공짜로 타는 ‘지공거사’가 되고 보니 나이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음을 매일 실감하고 있다.

▲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하버드 대학의 갤브레이스라고 하는 유명한 경제학 교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이 먹는 것의 장점이 하나 있는데, 젊은 미녀와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해도 남들의 의심을 받지 않는다고. 갤브레이스는 한국에는 지공거사라는 장점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1977년 아무 것도 모르던 만 27세의 나이로 전임강사로 부임한 뒤 반평생 이상을 경북대에서 월급을 탔고, 지금은 연금까지 받고 있으니 평생 신세를 톡톡히 진 셈이다. 지금은 교수 공채를 할라치면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오므로 교수 임용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려운데, 당시는 석사학위만 갖고도 교수로 임용이 됐고 나중에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요즘 젊은 교수들은 상상이 안 될 것이다. 태평성대라도 이런 태평성대가 없었다.

38년을 돌아보면 한국 대학은 상전벽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외양만큼 내실도 발전했느냐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대학에서 뽑은 총장이 아직 임명되지 못하고 대행체제를 하고 있는 대학이 경북대를 비롯해 몇 군데나 된다. 대학이 총장직선제를 고수하면 교육부로부터 각종 재정적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교수들이 자존심을 숙여가며 직선제를 포기하고 간선제로 뽑은 총장후보를 한 마디 설명도 없이 임명하지 않는 교육부의 처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대학에 대한 권력의 간섭이 이렇게 과도했던 적은 과거 유신시대를 제외하고는 일찍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시장만능주의, 경쟁지상주의가 대학을 지배하는 양상도 벌어지고 있다. 교수 평가는 필요하지만 현재의 평가는 도가 지나치다. 교수들에 가해지는 각종 경쟁 압력이 너무 강해서 교수들은 논문 쓰느라고 연구할 시간이 없고, 책 읽을 시간도 없다는 희한한 말이 나돈다. 그렇게 쓴 논문 중 다수는 세 명(본인과 익명의 심사위원 2명)만 읽고 바로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연구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칸트는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그에서 태어나 평생 한 번도 그 도시 밖으로 여행을 한 적이 없다는 유명한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는 아주 늦게 47세에 겨우 교수가 됐는데 주저인 『순수이성비판』을 쓴 게 57세 때였고, 그 뒤 64세에 『실천이성비판』 그리고 66세에 『판단력비판』을 써서 3부작을 완성했다. 만약 칸트가 지금 한국에 온다면 애당초 교수되기도 어렵거니와 교수가 된다 하더라도 수년 동안 논문이 없어서 틀림없이 쫓겨날 것이다. 매년 논문 편수를 따져서 교수를 평가하는 현행 제도는 지나치게 단기적이다. 이러다가는 장기적, 근본적 연구를 하는 학자는 멸종되고, 한국 대학이 이상한 곳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돌아보니 나는 참 행운아였다. 석사학위만 갖고도 교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행히 경쟁 압력이 덜하던 시대에 교수 생활을 했다. 지금처럼 교수를 점수 매기고 월급에 차이를 두어 자존심 상하게 하고 심지어 쫓아내는 대학이라면 솔직히 교수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교수를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살아왔는데, 지금 내가 젊은 나이라 가정하고, 교수 직업을 택하겠느냐고 물으면 ‘예’라고 대답 못하겠다. 대학이 이런 식이라면 아마 다른 직업을 택하지 싶다. 오늘 한국 대학은 너무나 대학답지 않다. 그래서 대학을 떠나니 한편 마음이 홀가분하면서도 남은 후배 교수들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는 나이 먹는 것의 장점이 하나 더 있구나. 명예교수 만세! 불명예교수는 괴로워.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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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2015-12-01 00:49:47
이정도의 사고수준을 하는 사람이 명예교수라면 말 다 했군요. 자신을 명예교수라고 말하고 다니지 마세요. 그럼 해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