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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사실주의'에 담은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소설의 문화적 책임 잘 보여줘
'마술적 사실주의'에 담은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소설의 문화적 책임 잘 보여줘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11.30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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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41강. 송병선 울산대 교수의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읽어낸 송병선 교수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적 서사의 깊이를 보여주는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7~2014)의 『백년의 고독』은 소설 제목 그대로 깊고 여운이 깊은 작품이다. 읽어내기도 결코 만만치 않다. 지난 21일(토)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 41강은 바로 이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겨냥했다. 보르헤스와 함께 중남미문학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중남미 문학’의 권위자인 송병선 울산대가 읽어냈다.
송병선 교수는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콜롬비아의 카로 이 쿠에르보 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하베리아나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은 책으로 『보르헤스의 미로에 빠지기』,  『‘붐 소설’을 넘어서』 등이 있으며, 옮긴 작품으로는 『맘브루』(R.H.모레노 두란),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하비에르 마리아스),  『알레프』·『픽션들』(보르헤스), 『염소의 축제』(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마르케스), 『거미여인의 키스』 (마누엘 푸익) 등이 있다.
이번 강연에서 송 교수는 『백년의 고독』을 낳은 가르시아 마르케스 문학의 앞과 뒤를 응시하면서 친절한 작품 설명을 덧붙였다. 이날 송 교수의 강연 주요 내용을 발췌해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마르케스의 문학적 성취와 비밀을 만나본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2014년 6월 5일 뉴욕의 유엔 컨퍼런스 빌딩에서는 카리브 해의 바예나토 음악이 울려 퍼지는  운데 콜롬비아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추모하는 강연회가 열렸다. 이 강연회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평생을 사회 부정과 탄압에 맞서 싸운 작가라고 강조하면서, 훌륭한 작품으로 불멸이 된 다른 거장들과 함께 그는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친구들은 그가 남긴 농담과 일화를 전하며 그의 삶과 그의 작품이 세계 문학에 끼친 영향을 조명했다.

20세기 세계 문학의 별이었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2014년 4월 17일 성목요일에 세상을 떠나 전설과 신화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날은 바로 『백년의 고독』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우르술라 이구아란이 11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20세기의 세르반테스’라고 불리는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스페인어권의 가장 위대한 작가였고,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현대 예술사조의 선구자이자 최고봉이었다. 그가 원한 것은 인기나 명예도 아니었고, 노벨 문학상도 아니었으며, 불후의 명작을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글을 쓴 작가였다.

최근 40년 동안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명성에 도전할 수 있는 작가는 흔치 않았다. 그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작품 제목이 널리 사용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전 세계의 신문이나 방송에서 ‘백 시간의 고독’, ‘예고된 재앙의 연대기’, ‘독재자의 가을’, ‘자본주의 시대의 사랑’과 같은 표현을 마주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다.

시대적 배경과 작품 내용

『백년의 고독』은 183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약 100년에 걸쳐 콜롬비아 북부의 카리브해  지방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시기의 역사를 콜롬비아 내전에 대령으로 참여했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배웠다. 400여 명의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이 살해된 시에나가 대학살 사건은 은폐돼 공식 역사에서 거의 잊혀 있다가 『백년의 고독』으로 다시 수면 위로 등장했다. 이것은 승리자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공식 역사와 패배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비공식 역사 중에서 과연 더 허구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동시에 잊힌 기억을 되살리는 소설의 힘을 보여 준다.

모두 20장으로 이뤄진 『백년의 고독』은 6세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이자 마콘도라는 허구적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마콘도 마을이 창건되는 과정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에는 100년의 역사가 흐르고 있는데,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묘사하는 사건은 대부분 부엔디아 가문의 내력에서 큰 전환점을 이루는 탄생이나 죽음, 혹은 결혼이나 사랑이다. 이 소설은 부엔디아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집시 멜키아데스의 양피지 원고를 해독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마술적 사실주의와 비전통적 서술 시간

마술적 사실주의는 『백년의 고독』의 가장 큰 미학적 특징으로 자주 언급된다. 특히 마술적 사실주의 계열의 토니 모리슨, 조제 사라마구, 귄터 그라스 등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이 용어는 20세기 후반 문학의 특징으로 자리 잡는다. M. H. 에이브럼스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두 가지 태도를 하나로 종합하면, 마술적 사실주의란 종래의 사실주의가 지닌 현실의 좁은 차원에서 벗어나 현실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마술적 사실주의자들이 말하는 현실은 일상사를 비롯해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고통뿐만이 아니라, 신화와 신앙 혹은 민간요법까지 포함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까지도 현실로 간주, 현실의 지평을 확장한다. 그렇게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성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이 항상 강요했던 현실의 한계”를 극복해 보다 광범위하고 다채로운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다룬다.

『백년의 고독』은 마콘도의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기술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마콘도의 건립에서 멸망, 부엔디아 가문의 기원에서 파멸에 이르는 시간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지만, 작가는 이런 사건들을 일어난 순서대로 말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두서없이 오가면서 신화적인 느낌을 조성한다. 이 소설에서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는 소설의 전통적 시간이 파괴된다. 이런 비전통적인 시간과 더불어 처음부터 독자들은 『백년의 고독』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 마콘도를 세울 당시 “세상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은 것들이 아직 이름을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독자들은 또한 우르술라의 고조할머니가 1568년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의 리오아차 습격 당시 살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분명히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은 모든 사물이 이름을 갖기에 충분했던 세상에 살았다. 이 작품에서는 실제로 마콘도의 창립이 드레이크의 침략보다 나중에 일어나지만, 마치 드레이크의 침략 이전에 일어난 것처럼 서술된다. 이것은 이 작품이 역사적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정확하게 기술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소설 속의 역사적 사실을 믿는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면서 모호한 늪에 빠지게 한다.

이런 불확정적인 시간 틀은 기억과 역사와 허구의 차이를 없앤다. 기억을 통해 객관적인 공식 역사는 주관적이고 몽상적으로 변하는데, 이것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 전략이다. 여기서 기억은 역사와 같은 무게를 지니고, 역사는 기억처럼 상상과 감정으로 물들여진다. 가령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을 주민들이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의 대학살을 잊어버리는데, 그들의 기억 상실증은 실제 역사에서 그들의 기억이 지워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작가의 목표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멈춰 있거나 순환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작품 속에서 시간은 순환적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나아간다. 부엔디아 가족은 일련의 반복을 계속한다. 이름과 개성들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다. 이런 유형은 순환적이 아니라 나선형에 더 가깝다. 사실 부엔디아 가족은 결코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순간들과 상황들은 매우 비슷하지만, 과거의 것과는 다르다. 작중 인물들은 자기도취라는 그물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세계가 멸망을 향해 간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이런 방식으로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더 넓게는 라틴 아메리카 인들이 이 작품의 인물들처럼 과거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 흔들리지 않는 명성을 쌓은 가르시아 마르케스

고독, 향수, 그리고 제국주의 비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소설가란 단 한 권의 책을 쓴다고 말한다. “내 경우는 마콘도의 책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내가 쓰고 있는 책은 마콘도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고독에 관한 것입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고독은 단지 고립이나 세계와 결별해 은둔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이 용어를 정치적이자 개인적인 것으로 사용한다. 그에게 ‘고독’은 단합이나 단결과 반대되는 것이다. 작가가 ‘고독’이라고 부르는 파괴적 개인주의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그는 타인들과 공유하는 보다 큰 세계보다 나르시시즘, 자기도취,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지적한다.

고독과 마찬가지로 향수의 모호한 매력도 『백년의 고독』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다. 작가는 “마콘도는 향수로 지어진 마을이다.”라고 설명하면서 “향수의 장점은 그것이 한 사람의 기억에서 모든 불쾌한 점을 제거하고 단지 좋은 것만을 남긴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향수는 고독보다 인간의 단합에 더욱 큰 위험 요소이다. 그것은 개인을 현재에서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영광의 향수에 이르고, 그것은 그를 최종적이자 완전한 고독에 침잠하게 한다. 『백년의 고독』에서는 고독과 향수가 유전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백년의 고독』에서 또 다른 주요 주제는 제국주의에 대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분노다. 12장에서 그는 미국인이 콜롬비아의 풍요로운 자연을 어떻게 착취했는지 잘 묘사했다. 대령은 국가가 너무나 심하게 파괴된 나머지 이제는 시간이 늦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요 며칠 이내로 내 아들들을 전부 무장시켜 이 똥 같은 미국 새끼들을 모조리 없앨 거야.”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콜롬비아 군부와 연합한 바나나 회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밀경찰을 동원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아이들을 모두 처치해 버린다. 한편 마콘도에서의 바나나 농장에 관한 대목에서도 서양 제국주의가 라틴 아메리카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역사가 숨겨져 있다. 『백년의 고독』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바나나 농장의 자본주의·제국주의를 탐욕적이며 마콘도 주민들에게 해로운 것으로 묘사한다. 보수당 정권이 지지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는 마콘도에 야만적 행위를 일삼고 주민들을 탄압한다. 이렇게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단지 소설이라는 허구를 쓸 뿐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정치와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백년의 고독』은 사회적·문화적 책임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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