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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짝퉁’ 수능 폐지해야
‘누더기 짝퉁’ 수능 폐지해야
  •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승인 2015.11.3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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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이덕환 논설위원

올해 수능은 큰 탈 없이 마무리 된 모양이다. 무려 141개 문항에 대해 713건의 이의가 제기됐지만 심각한 출제 오류는 없었다는 것이 교육과정평가원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2년 연속 출제 오류라는 비정상의 늪에 빠졌던 수능이 정상화된 것은 아니다. 난이도 조절 실패와 출제 오류 차단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이 여전히 미흡하고, 수많은 선택과목 사이의 형평성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수능의 정체성이 극도로 왜곡돼 있다.

수능을 전형요소로 활용하는 정시모집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올해 입시에서 정시모집의 비중은 4년제 대학 36퍼센트, 전문대학 18퍼센트에 불과하다. 수시모집에서도 수능 최저등급을 적용하는 경우가 크게 줄어들었다. 내년에는 사정이 더욱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 대학이 더 이상 수능을 신뢰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연례행사가 돼버린 난이도 논란과 출제 오류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의 성적과 수능 성적 사이에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다. 대학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의 수능이 수험생들의 ‘대학수학능력’을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대학 입시에서 수능의 위상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추락할 수밖에 없다.

본래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학생들에게 암기식 교육을 강요했던 ‘학력고사’의 폐해를 극복하겠다는 취지로 1993년에 도입된 것이다. 선진국처럼 학생들의 통합교과적 고등 정신 능력과 함께 종합적 이해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평가하겠다는 것이 당시 교육부와 교육전문가들이 화려하게 내세웠던 목표였다. 그래서 당초의 수능은 고등학교 교과와는 무관한 언어·수리탐구·외국어로 구성됐고, 문·이과의 구분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SAT를 어설프게 흉내 낸 수능은 처음부터 우리 몸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진짜’ 수능은 1994년까지 3회로 막을 내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3회가 된 것은 1993년 8월, 11월 두 번 시험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문·이과와 교과 간 칸막이에 단단하게 갇혀버린 학교 현장도 문제였고, 통합교과적 진짜 수능 문제를 출제할 수 있는 경험과 역량을 가진 출제자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진정한 입시 개혁에 필요한 전문성과 의지가 턱없이 부족했던 교육부가 황당한 꼼수를 선택해버렸다. 껍데기는 그냥 두고, 속을 바꿔버린 것이다. 학부모와 국민을 철저하게 무시한 선택이었다.

오늘날의 수능은 국어·수학·영어·탐구(사회·과학·직업)·제2외국어 영역의 총 42개 교과목을 대상으로 한다. 국어와 영어에서 지극히 제한적인 통합교과적 지문이 제시되고, 학력고사의 4지선다가 5지선다로 바뀐 것을 빼고 나면 현재의 수능은 과거의 학력고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학생의 적성과 진로를 존중한다는 핑계로 학력고사의 문·이과 구분과 선택과목도 되살려냈다. 더욱이 지난 23년 동안 12차례의 개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누더기로 변해버렸다.

현재의 수능은 겉으로만 대학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누더기 짝퉁’이다. 선택과목 사이의 형평성도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외고생이 중국어·일본어를 독차지하는 바람에 일반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울 수도 없는 아랍어와 베트남어로 밀려나버렸다. 교육부가 억지로 ‘문·이과 통합’을 밀어붙이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 모두가 교육부와 교육전문가들의 의도적인 거짓말에 감쪽같이 속아왔던 셈이다. 학력고사로 변질돼버린 누더기 짝퉁 수능은 무의미한 객관식 문제풀이 훈련을 위해 사교육 시장을 기웃거릴 수 있는 학부모의 財力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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