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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치유한다
기록이 치유한다
  • 교수신문
  • 승인 2015.11.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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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호모아키비스트, 기록하는 사람들』 안정희 지음|이야기나무|205쪽|14,000원

많은 기록물 중에서 어떤 것들을 선택하며 어떻게 기록할 것이며 기록 방식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는 쉽게 풀리지 않는 화두다. 어떤 기록이 어떤 방식으로 시대의 가치를 담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새로운 기억으로 문화를 생산할 수 있을까 앞에서는 기록하는 인간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 글을 쓸까?

2013년 1월 시인 유안진이 『상처를 꽃으로』라는 산문집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나는 항상 밝고 긍정적인 내용의 에세이와 시를 쓰는 그녀였기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시인의 상처를 봤다. 그것은 아들을 낳지 못한 엄마 이야기, 똘똘한 여자아이에게 쏟아지는 친척들의 가혹한 눈초리들에서 자신을 지켜낸 이야기였다. 그녀는 유년 시절 경험한 차별에 대한 마음을 ‘상처가 더 꽃이다’라는 시로 표현했다.

그녀의 시에는 상처를 준 이들에 대한 원망도 지적도 없다. 다만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꿋꿋하게 버틴 덕분에 큰 나무가 된 고목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고 썼다. 꽃보다 고목을 보는 이들은 가지가 꺾여 구부러지고 휘어져 갈라지고 뒤틀린 채 터지고 또 튀어나온 상처에 주목했다.

인간이 고목처럼 사백 년을 살지는 않지만 제 상처들이 있었으니 꽃보다 고목에 마음이 머물렀으리라.

상처받은 인간은 기록하며 자신을 치유한다. 기록은 쓰는 이의 마음부터 어루만진다. 인간이 기록에 몰입하는 이유다.

또한 기록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박완서는 소설 『엄마의 말뚝』과 『나목』에서 전쟁이 앗아간 오빠와 자신의 청춘, 이웃의 참혹했던 삶을 눌러 둘 수 없어 글을 썼다고 했다.

독자들은 그의 소설을 읽으며 상처를 치유했다. 제 잘못이 아닌데 삶이 무너졌다. 상처를 사회의 문제로, 공동의 과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인간의 영혼이 파괴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러하다. 상처를, 그 기억을 어떻게 사회화할 것인가!

상처를 상처로 버려두지 않고 소설로 만든 이가 있었다. 지역사회를 넘어 세계인의 생각을 변화시킨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Harper Lee)라는 소설가이자 위대한 아키비스트다.

 

저자 안정희는 서울도서관 등을 비롯 100여 개 도서관에서 책과 책 읽기에 대해 강의를 했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국경을 넘어서는 역사대상 어린이청소년 역사책’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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