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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이후 예술과 문화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1914년 이후 예술과 문화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11.23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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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파열의 시대: 20세기 문화와 사회』 에릭 홉스봄 지음|이경일 옮김|까치|368쪽|20,000원

이 책은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린 역사의 한 시대에 관한, 그리고 새로운 21세기의 첫 몇 해 동안 평생에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어쩔 줄 몰라 당혹해하면서 안내자나 지도 없이 알 수 없는 미래에 기개를 걸었던 역사의 한 시대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遺作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생전에 남긴 작품’이라는 의미에서? 아니면 그것이 누구의 것이냐에서? 여기 20세기의 위대한 역사가로 평가받는 한 인물이 있다. 그는 1917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독일과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퇴임할 때까지 런던대 버크벡 칼리지에서, 그 후에는 뉴욕의 신사회연구원에서 강의했던 역사학자. 영국 아카데미와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이자, 일본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이기도 했던 사람.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그리고 『극단의 시대』를 비롯, 회고록 『미완의 시대』 등을 남긴 그는 2012년에 타계했다. 에릭 홉스봄이다.

책의 원본은 Fractured Times: Culture and Society int the Twentieth Century(London, Little Brown, 2013)이다. 그의 주저로 꼽히는 ‘~시대’가 영어 ‘The Age~’를 단 것과 다른 이름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번역은 홉스봄 생전의 마지막 저작인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번역한 이경일 경성대 인문문화학부 교수(사학전공)가 다시 맡았다. 이 교수는 “시대사 내지 특정 주제에 집중하는 긴 호흡의 역사책과는 달리, 이 책은 전문 역사학 분야 이외의 영역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전달하고 공유하려고 했던 홉스봄의 노력의 자취라고 할 수 있다”라고 평한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예술과 사회라는 주제와 관련된 홉스봄의 강연, 서평, 기고문 등을 묶어 사후에 출간한 유고집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사회적 현상’과 ‘문화’ 사이의 상호연관성에 관해서 저자가 유지해온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라는 씨줄을 통해 당대를 읽어내는 작업은 영국의 지적 전통에서는 매우 익숙한 것이기도 한데, 번역자에 따르면 생애의 마지막 두 저작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주제와 영역은 다를지라도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학문과 일상의 다양한 계기들 속에서 자신의 이론적 지향을 확인하면서 관철시키려고 했던 홉스봄의 한결같은 자세”라 할 수 있다.

 

학문과 현실을 보는 한결같은 자세

사실 이러한 ‘한결같은 자세’는 우리 학계에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할 대목이다. 학문장에서의 지적 활동을 고도의 제한된 영역으로 묶어두고, 대중적 글쓰기 혹은 역사지식의 대중적 확산에 일종의 기피감을 보이고 있기에 그렇다. 이 교수의 지적대로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학문과 일상의 다양한 계기들 속에서’ ‘이론적 지향’을 확인, 관철하려는 자세는 역사학자의 다양한 글쓰기와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역사학자가 ‘문화와 사회’를 겨냥해 다양한 방식의 강연, 서평, 기고문을 쓴다는 것은 ‘전문 역사학 분야’를 넘어서는 일인데, 이것이 주제와 관련해 지적 긴장을 잃지 않는, 전문적인 지적 배경을 동반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글쓰기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책의 구성은 서문, 선언문, 제1부 「오늘날 ‘고급문화’가 처한 곤경」, 제2부 「부르주아 세계의 문화」, 제3부 「불확실성, 과학, 종교」, 제4부 「예술에서 신화로」가 주된 줄기를 이룬다. 제1부는 새로운 기술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음악, 회화를 비롯한 고급문화들이 어떤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담고 있다. 제2부는 제1부의 주제, 즉 고급문화의 문제를 주로 19세기를 중심으로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데 할애됐다. 이경일 교수는 제2부에 담긴 홉스봄의 문제의식을 ‘참신하다’고 평가했는데, 그는 이제까지의 설명과 달리, 19세기 부르주아 문화의 형성을 유대인, 여성, 아르누보 등 소수자 내지 소수집단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이 교수는 “해방된 유대인의 문화적 역할에 관한 서술은 이제껏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의미를 높이 산다.

여기저기 흩어진 글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1, 2부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반면, 제3부는 언뜻 보기에도 책 전체의 맥락에서 돌출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사가 홉스봄의 문제의식을 흥미롭게 엿볼 수 있는 글들임을 눈치 챌 수 있다. 제3부에서 홉스봄은 제목이 암시하듯 부르주아 문명의 불확실성을 둘러싼 다양한 측면을 지적한다. 20세기의 과학이 부르주아 문명에 미친 충격을 조명하고, 나아가 대중 종교와 예술 역시 부르주아 사회와 서로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종교 현상과 예술적 전위의 사례를 통해 환기한다. 예술이 부르주아 사회에 복종해서 활기를 잃어버렸다면, 종교는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돼 오히려 사회불안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게 홉스봄의 생각이다.

그는 직접 이렇게 말한다. “20세기는 전통적인 부르주아 사회와 그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던 가치들의 붕괴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이것이 이 책 제3부의 8개장의 주제, 즉 한 시대의 종말에 대한 일련의 지성적인 그리고 반지성적인 대응이다.” 일례로 20세기의 예술은, 기술과 경쟁하면서 자체적으로 ‘모더니스트적’으로 내지는 ‘전위적’으로 진보를 추구하면서 혹은 권력과의 동맹을 통해서, 아니면 종국에는 미몽에서 깨어나 분을 삭이며 시장에 복종해가면서, 예전의 위상을 잃어버렸지만 새로운 위상을 찾는 데는 실패한 무엇이다. 책의 제목으로 호명된 ‘fractured’가 ‘골절된, 균열된, 파열된’ 등의 의미를 내포한 단어라는 점도 이러한 실패 혹은 부르주아 문명의 어떤 ‘잘못’을 시사하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위치를 잃은 역사의 한 시대에 관한

저자가 서문에서 말했듯, 이 책은 1914년 이후에 부르주아 사회가 쇠퇴하면서 부르주아 사회의 예술과 문화에 어떤 일이 있어났는가를 짚어냈다. 이것은 홉스봄보다 앞선 세대인,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의 사상가이자 미학자인 루카치가 『영혼과 형식』, 『소설과 이론』을 통해 부르주아 사회의 문화적 구성물을 진단했던 장면을 일면 떠올리게 만든다. 또 다른 흥미로운 대목은,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테제를 다양한 글쓰기 안에 수용한 점이다. 아마도 문화 예술 분야의 생산방식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기술복제의 시대’ 개념을 언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 책은 홉스봄 그 자신에게 어떤 책으로 남게 될까. 홉스봄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 책은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린 역사의 한 시대에 관한, 그리고 새로운 21세기의 첫 몇 해 동안 평생에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어쩔 줄 몰라 당혹해하면서 안내자나 지도 없이 알 수 없는 미래에 기개를 걸었던 역사의 한 시대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19세기 호시절을 구가했던 유럽 부르주아 문화가 20세기에 이르러 어떤 ‘골절된’ ‘파열된’ ‘분열된’ 것으로 결과했다면, 이것을 불러온 것은 어떤 요소들인지, 그것이 자본주의의 작동방식과 어떤 관련을 갖는지를 끈질기게 탐구한 홉스봄의 역사 너머의 인식은 이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21세기 문명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는 물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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