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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운영 포기하고 평생교육기관 전환하라는 신호”
“대학운영 포기하고 평생교육기관 전환하라는 신호”
  • 이재 기자
  • 승인 2015.11.23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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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평생교육시설 설립시 교육핵심지표(교원·재정·시설확보) 인가의무 삭제

교육부가 평생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전공대학(전문대학 학령인정 평생교육시설)’의 설립규제를 완화한 것을 두고 대학을 평생교육시설로 전환시키기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규제 완화를 통해 혜택을 받는 전공대학이 3곳에 불과한 반면 대학구조개혁 발표 당시부터 교육부가 하위등급(D·E등급) 대학을 평생교육시설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앞서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에 평생교육 단과대학 육성을 밝힌 바도 있어 대학을 평생교육시설로 몰아가는 정책이 본격화된 게 아니냐는 전망이다.

교육부는 17일 백석예술대학·정화예술대학·국제예술대학 등 전공대학에 대한 인가사항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기존에는 전공대학이 설립시 인가받은 사항을 변경하는 경우 모든 사항에 대해 교육부장관의 변경인가가 필요했다. 인가사항은 △명칭 △목적 △설치자 △위치 △학칙 △향후 2년간의 재정운영계획 △향후 2년간 교육·연구용 시설 및 설비 확보계획 △실습시설 및 설비 확보계획 △교원확보계획 △전환개교 예정일 등 10개 항목이다.

이 가운데 교육부는 명칭과 목적, 설치자, 위치를 제외한 모든 제한을 없앴다. 재정운영계획이나 교원확보계획, 시설확보계획 등을 인가받지 않고도 전공대학을 설립하거나 기존 시설을 전공대학으로 전환할 수 있게 돼 사실상 신고만 하면 누구나 전공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전공대학의 운영상 불필요한 규제를 개선해 일반대학이나 전문대학 등과의 형평성을 확보하고, 전공대학의 자율성을 제고해 보다 유연한 학사관리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 교육부는 최근 대학을 평생교육시설로 전환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최근 발표한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에도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이 포함돼 대학들의 평생교육시설 전환을 유도한다. 그러나 평생교육시설은 기존 고등교육기관에 비해 법적 규제나 정보공개수준이 미비해 또다시 ‘공급과잉’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

그러나 교육부와 달리 전문가들은 질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칫 5·31교육개혁에 따라 도입된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무분별한 대학설립으로 이어져 지금의 고등교육 위기를 부린 것과 같은 부작용이 크게 우려된다는 것이다. 김태준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규제 완화를 통해서 유사한 전공대학 설립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에 삭제된 설립 인가사항은 대학의 질 관리에 핵심적인 사항이다. 법적 규제가 아니더라도 이에 대한 대학 자체 평가 계획이나 가이드라인을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 “법령 개정시 운영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 이외에도 기존 3개 대학은 입학생 유치에 매우 유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대학이나 전공과목의 성격이 예술이나 방송·연예 관련 과목임을 감안한다면 학사관리나 교육과정 관리 등 전반적인 질 관리에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정부차원의 관리·모니터링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서울예대 등 전문대로 운영되는 유사목적 대학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야기될 우려도 있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문제는 전공대학의 교육정보를 확인할 제도적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대학들은 고등교육법 등에 따라 대학알리미를 통해 운영정보를 모두 공개하도록 돼 있다. 관심만 있다면 손쉽게 대학의 교원확보율이나 등록금, 장학금 비율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전공대학은 이 같은 정보공개포털이 구축돼 있지 않다. 평생교육법상 교육정보 등을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 역시 설립인가 당시를 제외하고는 이 같은 전공대학에 대한 교육현황을 파악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 때문에 교육부가 의도적으로 사실상 규제가 없었던 전공대학에 대한 규제를 철페한다고 홍보하며 대학들의 평생교육시설 전환을 유도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운영되는 전공대학이 3곳 밖에 안되는데 규제를 완화한다고 나선 것은 결국 대학들로 하여금 규제가 많은 고등교육법 산하의 대학운영에서 만만한 평생교육법 아래로 옮겨오라는 ‘시그널(신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공대학은 일반대학과 달리 평생교육법에 따라 설치된 대학이다. 평생교육법 제31조를 보면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전공과를 설치·운영하는 고등기술학교는 교육부장관의 인가를 받아 전문대학 졸업자와 동등한 학력·학위가 인정되는 평생교육시설로 전환·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에 근거해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는 백석예술대학·정화예술대학·국제예술대학 등 3곳은 23개 전공을 설치해 8천788명의 편제정원을 두고 있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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