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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한국의 근원적 출발점을 찾아서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한국의 근원적 출발점을 찾아서
  • 교수신문
  • 승인 2015.11.1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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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성 한림대 교수, 3개 기관 학술대회에서 ‘동맹의 논리’ 분석

한국의 동맹외교가 추구할 일차적인 임무의 하나는 그 동맹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평화적 통일에 대한 기여라는 ‘동맹의 근본적이고 제한적인 취지’를 동맹국에게 인식시키고, 동맹을 그 목적에 부합하게 경영하는 노력이다. 그것이 한국인과 그 동맹국이 함께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한국의 지정학적 숙명이며, 동시에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한국의 기여의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이배용, 이하 ‘한중연’),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김정배)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호섭) 3개 기관이 ‘광복 70년의 회고, 광복 100년의 비전’이라는 주제로 공동주최한 광복 70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12일(목)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3개 역사 관련 국책기관이 모여 광복 70년을 되돌아보며, 광복 100년이 되는 미래 30년의 비전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발표에는 국내 학자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중국 등 해외 석학들을 초청해 대한민국의 광복 70년의 의미와 미래에 대해 국제적으로 전망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한스 마이어(전 훔볼트 대학 총장, 독일), 박문일(전 연변대 총장, 중국), 브래드 글로서만(미 CSIS, 책임연구원, 미국), 남성욱 교수(고려대), 이삼성 교수(한림대)가 참석해 발표했다. 특히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담론을 만들어온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광복 70주년에 생각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서, ‘동맹의 논리’가 한반도 평화체제와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이삼성 교수의 발표문 가운데 주요 부분을 발췌한 글이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외부의 국제적 조건에서 올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한반도 내부, 남북한의 내적인 동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평화통일을 위한 진지한 평화협상에서만이 가능하다.
군사동맹의 일정한 지속이 현실정치적으로 불가피하다면, 평화협정체제와 양립가능한 동맹의 존재양식을 찾아야 한다. 그 기본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억지라는, 한미동맹의 원래적인 취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한미 군사동맹의 의미와 역할이 명확히 재정의돼야 함을 뜻한다.

그 중요한 요소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내포한 군사동맹의 강화가 아니라 그 동맹의 한반도 내적 역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동맹의 의의와 바람직한 존재양식에 대한 성찰은 미래의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과 불가분하다.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미래는 몇 가지의 모델을 가상해 볼 수 있다.
 
① 중국패권 체제 (Pax Sinica)

② 혼돈의 다극질서 (chaotic multipolarity)

③ 평화적 양극질서 (peaceful bipolarity between China & the US-Japan alliance)

④ 대립적 양극질서 (confrontational bipolarity between China & the US-Japan alliance)

⑤ 다자적 제도들이 기능하는 평화적 다극 체제 (relatively peaceful multipolarity: peaceful coexistence of great powers and smaller states under a set of multilateral institutions)

이들 가능한 질서 유형들 가운데서 첫 번째 중국패권의 체제는 오늘날 중국의 국력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적어도 장기적인 미래 전망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 가능성이 장차 현실화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상당한 기간에 걸쳐 평화적이든, 대립적이든 미·일 동맹과 중국을 두 축으로 하는 양극체제(bipolarity)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될 것이다. 중국에 의한 일원적 패권체제(Chinese unipolar moment)는 결코 가까이 있는 현실이 아니다. ‘중국 천하체계’의 복원을 운운하는 것은 아직은 성급한 단정이다. 다만 동아시아에서 미국 패권체제를 제한하는 중국의 힘은 1950년 10월에,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1994년 6월에 입증됐듯이, 한반도에 언제나 실재해왔다는 것 또한 인식해야 한다.

적어도 궁극적으로는 중국이 지배하는 팍스 시니카 체제가 되리라는 전망은 중국이 지난 30년과 같은 고속성장이 앞으로도 장기 지속하리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역사의 역동성을 생각할 때, 그러한 전제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중국의 성장 지속이 중단되면 통일성도 위협받을 수 있다. 그 경우 혼돈의 다극질서라는, 위의 두 번째 시나리오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향후 수십 년간(혹은 길게는 다음 한 세기에 걸쳐서) 동아시아를 지배할 보다 현실적인 질서 형태는 중국대륙 혹은 유라시아 대륙연합을 한편으로 하고, 미일동맹이라는 해양세력연합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양극질서가 될 것이다. 양극화된 질서가 지속적인 평화공존을 영위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평화적인 양극질서’라는 개념 자체가 자기모순을 내포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의 판단으로는 위의 다섯 가지 미래상들 중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형은 다자적 제도들이 기능하는 평화적 다극질서라고 생각한다. 이 평화적 다극 체제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아세안, 인도, 유럽,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국가가 다자적 제도들의 틀 안에서 다면적으로 소통하며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질서를 가리킨다. 이러한 평화적 다극질서의 핵심은 크고 작은 나라들이 상호적대적인 동맹체제들에 편입되지 않고, 동맹의 정치로부터 자유롭다는 데 있다. 문제는 여러 강대국들과 우리들 자신이 체계적이고 치열한 노력을 전개하지 않고는 기존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논리가 관철되는 ‘대립적 양극질서’가 현실화되는 현재의 추세를 되돌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동시에 원한다면 가상의 적을 상정하는 적대적인 군사동맹들을 단위로 구성된 양극화된 동아시아 질서의 충직한 구성요소로 머물러서는 곤란할 것이다. 이 질서의 틀이 더욱 고착하기 전에 제3자로서의 전략적 행위자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비전과 능력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동아시아 질서가 평화공존하는 비군사화된 양자적 우호협력관계들과 다자적 공동안보의 제도들로 구성된 대체적으로 평화적인 다극질서로 재구성돼 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의 중심에 서기 위해 분투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극복에 한반도가 기여할 바의 일차적인 근본 전제는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평화적 통일의 가능성을 창조하고 경영하는 일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한국이 대립적 양극질서(confrontational bipolarity)의 발전을 방조하고 그 안에서 일방적인 ‘가치동맹’을 추구하는 것으로는 기대 난망이다. 그런데 ‘미국과의 가치동맹’에 대한 대안이 ‘중국과의 가치동맹’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기존의 우호관계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중국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遠交近親’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 두 세계 사이의 한 가운데에서 ‘가치의 균형’을 취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갈등하는 가치들의 창조적 통합’을 추구하고 발전시키는 데 우리의 적극적 역할이 있을 것이다.

‘동맹의 논리’와 ‘자주적 근린외교’가 근본적으로 모순을 일으키는 순간이 오면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동맹외교는 어디까지나 한반도에서의 평화구축에 기여하는 한도에서라는 ‘전략적 절제’가 그 전제로서 한국과 미국 모두에 의해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한국이 이 원칙을 넘어서 중국에 대한 비수가 되기를 요구하는 동맹은 근본적으로 위험하다. 미국의 군산정학 복합체는 동맹에 대한 한국의 로열티(Royalty)를 압박한다. 그러나 한국의 동맹외교가 추구할 일차적인 임무의 하나는 그 동맹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평화적 통일에 대한 기여라는 ‘동맹의 근본적이고 제한적인 취지’를 동맹국에게 인식시키고, 동맹을 그 목적에 부합하게 경영하는 노력이다. 그것이 한국인과 그 동맹국이 함께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한국의 지정학적 숙명이며, 동시에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한국의 기여의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외교전략에서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만이 위험하다면, 대분단체제의 구조 안에서 어느 일방의 하수인이 돼 다른 일방의 코앞에서 그 눈동자를 찌를 수 있는 흉기로 보이는 것은 더욱 위험한 선택이다.

그것은 당장 한미동맹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미동맹의 지정학적·전략적 의미와 기능의 절제를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혜의 개발을 요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동맹의 탈군사화도 우리의 미래전략적 사유에 포섭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사유는 지금 현재로서는 매우 급진적으로 보이지만, 한반도 평화통일의 기본 조건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고 당연스럽게 한반도의 미래로서 한국인과 중국 뿐 아니라, 미국에 의해서도 진지한 논의와 선택의 대상으로 주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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