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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사회 민주화의 결실은 모두 사학법인으로 갔나
해설 : 사회 민주화의 결실은 모두 사학법인으로 갔나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11.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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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30 14:39:04

사립학교법은 현재 사학법인의 권한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사학분규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학의 자주성이 교육기관으로서의 독립이 아니라 사학 운영자의 자율로 왜곡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립학교법이 처음부터 법인의 권한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대학의 공공성은 점점 퇴색돼 갔다.

군사독재로 사회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기에 사립학교에 대한 투명성은 강화됐다. 1973년 제6차 개정에서는 불법을 저지른 인사들의 참여를 배제했다. 즉, 사립학교법을 위반해 임원취임승인이 취소된 자는 2년 동안 총장, 학장, 교장으로도 임명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 좌절된 이후 1980년대 초반 대학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민주성이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됐다. 대학운영에서 임면권, 재정권을 총장과 학장에게 주는 한편, 법인의 설립자 및 직계 존비속은 총·학장이 될 수 없도록 했다. 정통성 없는 정권이 대학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마련한 법안이라고 해도 이 당시의 사립학교법은 교육기관, 특히 대학의 민주성, 공공성을 크게 높였다.

누구를 위한 개정인가

이 당시 바뀐 사립학교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법 16조 1항, 재정권, 교원 임면권은 여전히 법인에게 유효한 상태에서 “다만 대학교육기관을 설치·경영하는 학교법인의 이사회에 있어서는 당해 대학교육기관의 예산 및 결산에 관한 사항은 제외한다”는 단서조항을 단 것이다. 또 임명의 제한 범위에 “학교법인의 설립자(법인의 경영권이 이전되었을 경우에는 현재의 경영권자를 말한다) 및 그 설립자와 ‘배우자, 직계존속 및 직계비속과 그 배우자’의 관계에 있는 자는 당해 학교법인이 설치·경영하는 대학교육기관의 장에 임명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법인의 역할을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후원자’로 자리 매김 했다.

그러나 대학구성원들이 크게 환영할 만한 이 법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1985년 사립학교법은 다시 ‘법인’의 한쪽 손을 들어준다. 명목은 예산에 대해 ‘사학경영자의 의욕고취’다. 총·학장이 편성하고 대학재무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하도록 하던 것을 이사회에서 심의 결정하도록 바꾼 것이다. 또 임명의 제한범위를 학교의 설립자, 현재의 경영권자의 직계 존·비속 및 그 배우자에서 ‘이사장의 직계 존·비속 및 배우자’로 바꿔 실질적인 배제에서 형식적인 배제로 바꾼다. 대학의 경영권자가 이사로 취임하고 이사장만 대리인으로 세우면 아들을 총장으로 취임시켜 이사회와 대학 모두 ‘가족’이 경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민주화시기 최악의 개악 아이러니

교원, 시민단체들이 악법으로 규정하게 되는 최악의 개정은 1987년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에 벌어진다. 1990년 제16차 개정에서는 사학의 재정상황이 열악한데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사학법인 이사장을 겸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공공연하게 이뤄 져 왔던 문어발식 사학운영을 법으로 보장한 것이다. 다음으로 대학운영의 실질적 권한 가운데 하나인 교원과 교직원의 임면권을 법인에게 귀속시킨다. 또 형식적으로나마 금지했던 이사장의 직계가족 총·학장 취임제한 규정을 없애 공식적으로 보장하게 된다.

사회 민주화의 결실이 대학에서만큼은 그 구성원이 아니라 사학운영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교육·시민 사회단체가 지속적으로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아직까지 개선된 점은 없다. 오히려 1999년에는 분규가 일어난 사학에 파견된 임시이사들의 임기를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됨으로써 비리로 물러난 이사들에게 복귀의 발판을 마련해 줬다.

현재 국회에는 교육·시민사회단체의 요구로 현행 사립학교법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그러나 사학법인연합회 등 현행 사립학교법을 지지하는 단체들의 로비로 이 법안은 1년이 지나도록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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