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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6호 새로나온 책
제806호 새로나온 책
  • 교수신문
  • 승인 2015.11.1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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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민주주의의 흐름은 몰려오는 파도와 같다. 파도는 항상 바위에 부딪혀 깨진다. 그러나 파도는 영원히 다시금 몰려온다. 파도가 연출하는 연극은 격려와 절망을 교차시킨다. 민주주의는 일정한 발전 단계에 도달하면 곧바로 타락하기 시작한다. 그때 민주주의는 귀족정의 정신을, 때로는 귀족정의 형식까지 받아들이고, 한때 민주주의가 투쟁했던 귀족정과 유사해진다. 그러면 다시 민주주의의 내부에서 민주주의의 과두적 성격을 질책하는 새로운 비판자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그들은 영광의 투쟁기와 불명예스럽게 지배에 참여하는 시기를 겪은 뒤에, 마침내 다시 舊지배계급 속으로 흡수된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내건 새로운 자유의 투사들이 또 다시 등장한다. 청년의 치유할 수 없는 이상주의와 노년의 치유할 수 없는 지배욕 사이의 가공스러운 투쟁은 그렇듯 끝없이 이어진다. 언제나 새로운 파도가 언제나 똑같은 바위에 부딪친다. 이것이 정당사의 심원한 署名이다.”
- 로베르트 미헬스(1876~1936) 이탈리아 사회학자, 『정당론』(김학이 옮김, 한길사, 2015.9. 개정판) 중에서

■ 남자의 품격: 중세의 기사는 어떻게 남자로 만들어졌는가, 차용구 지음, 책세상, 488쪽, 23,000원

우리 의식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남자’에 관한 고정관념은 대부분 중세 기사의 모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12세기의 이상적인 남자, 즉 기사는 불의에 맞설 수 있는 힘과 배짱을 갖춘 남자, 사건의 핵심을 꿰뚫어 꽉 막혀 있는 국면을 능수능란하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남자, 지식과 예절을 고루 겸비한 교양인으로서 가족을 이끌어가는 남자, 그러면서도 감정을 절제하며 언제나 강인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남자였다. 천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상적인 남자는 그 모습 그대로다. 이러한 남자의 모습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저자는 이런 ‘남자다운’ 이미지의 시작은 중세 유럽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시는 봉건제가 자리 잡은 시기, 그러면서도 그리스도교의 원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십자군 원정의 광풍이 몰아치던, 전쟁과 폭력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는 성직자와 여성, 노인 등 약자를 보호하고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따라 정의를 실천하며 예의와 지적 능력을 두루 갖춘 남성(기사)를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요청했다.

■ 바이오코드: 생명의 비밀을 풀어가는 유전체학의 새로운 시대, 던 필드·닐 데이비스 지음, 김지원 옮김, 반니, 296쪽, 15,000원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공통된 생물학적 암호로 구성된다. 모든 유기체의 DNA는 연관되고 결합돼 하나의 존재를 드러낸다. 바이오코드다. 최초의 유전체에서 내려온 지구 바이오코드는 수십 억 년 동안 다양화되면서 살아남았다. 이것이 세상을 만들었고, 우리를 만들었다. DNA는 A, C, G, T라는 4개 문자로 이뤄진 생물학적 암호다. 이 단순한 구조에서 생물체의 모든 복잡한 구조가 탄생했다. 그리고 유전체란 한 생물체의 세포 속에 포함된 유전자 전체, 즉 세포핵 염색체를 이루고 있는 DNA의 전체 집합을 의미한다. 유전체학은 이 유전체를 대상으로, 어떤 유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고, 그 기능과 네트워크를 유전자 전체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또 DNA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지식을 윤리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느냐로 이뤄진 분야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1869년, 프리드리히 미셰르가 ‘핵물질(nuclein)’을 발견한 이래 유전체학의 시대가 이루어낸 수많은 위대한 업적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DNA 이중나선구조의 발견에서부터 행성 규모(planetary scale)의 유전체학이 시작되는 날에 이르기까지 유전체학 전반을 살폈다.

■ 우리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 한지희 지음, 경상대출판부, 343쪽, 17,000원

문근영, 아이유, 수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국민 여동생’ 반열에 오른 소녀라는 점이다. 그러나 ‘국민 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은 그들에게 족쇄로 작용하기도 한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대중문화의 판타지가 소녀의 육체와 성을 감시하고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대중문화 속 소녀에 주목해 소녀성의 신화에 대해 분석한다. 저자는 한국의 대중문화사에서 ‘소녀’가 탄생하고 ‘진정한 소녀성의 신화(The Cult of True Girlhood)’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했다. 이는 한국의 소녀들이 ‘아버지의 법’과 ‘어머니의 침묵’ 아래서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억누르고 순종적으로 살아왔으며, 스스로 ‘육체 없는 몸’이자 ‘정치적 무자격자’로 어떻게 존재해 왔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20년대 ‘모단 걸’에서 오늘날의 이효리, 현아에 이르는 한국의 대중문화 속 소녀들을 살펴보고, 소녀의 육체와 성에 대한 남성 중심적 판타지가 예인 소녀들의 육체와 성에 투사되면서 생산·유통·소비되는 과정을 계보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 월경의 정치학: 아주 평범한 몸의 일을 금기로 만든 인류의 역사, 박이은실 지음, 동녘, 272쪽, 15,000원

이 책의 강점은 월경이라는 현상을 다양한 학문분과의 관점에서 상술한 데 있다. 여러 학문 분과의 고찰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월경이라는 신체적 현상을 가치중립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문화적 태도와 선입견이다. 남성중심적 사회 구조가 만든 선입견은 여성을 열등한 성으로 귀착시켰고, 그것은 젠더적 위계질서로 고착화 됐으며, 종국적으로 월경하는 주체가 자기 몸의 현상에 의해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결과를 양산했다.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다채로운 양적연구 결과의 사례를 통해 저자의 주장을 증명한 데 있다. 리서치는 국내뿐 아니라 말레이시아의 사례로 확장되는데, 다민족·다언어·다종교 사회인 말레이시아는 비교문화적 현장을 살필 수 있는 훌륭한 사회문화적 텍스트라는 점에 착안한 탓이다. 이러한 참고자료는 주장의 객관성을 확보할 뿐 아니라 문화연구서 독자들의 보다 친근한 독서에 도움을 주는 지점이다. 인터뷰이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월경을 오도하는 인륜성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심적 고난과 월경하는 인간으로서 현재를 살아내야 하는 여성의 고통이다. 그 내면화된 고통은 월경혈에 대한 생각과 월경에 대한 사례조사를 통해 수치화된다.

■ 지성 개선론-스피노자 선집1, 스피노자 지음, 강영계 옮김, 서광사, 120쪽, 15,000원

이 책은 서광사 ‘스피노자 선집’ 첫 번째 책으로 묶였다. 스피노자는 이 책에서 친한 친구와 담론하듯 ‘학문하기’ 내지 ‘철학하기’의 기초를 이끌어내고 있다. 『지성 개선론』은 26세의 스피노자가 자신의 독자적인 철학 체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역작으로,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번역한 바 있는 강영계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본문은 모두 15개의 절로 구성돼 있다. 1절부터 7절까지 스피노자는 올바른 인식 방법을 제시하려고 애썼고, 8절부터 11절까지는 ‘방법의 제1부’라는 소제목을 달고 허구적인, 그릇된, 의심스러운 관념들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12절부터 15절까지는 ‘방법의 제2부’라는 제목을 달고 정의(definitio)가 조건들을 충족시켜야만 영원한 것들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옮긴이는 “스피노자가『지성 개선론』에서 제시한 ‘철학하기’의 기초는 그 다음 논문 『신과 인간과 인간의 행복에 대한 짧은 논문』을 거쳐서 『에티카』의 웅장하고 치밀한 철학 체계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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