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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세계화
한국 문학의 세계화
  • 교수신문
  • 승인 2015.11.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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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한국의 경제적 지위가 세계 10위권으로 향상되는 가운데 한국 문학의 세계화가 문학계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는 언론의 보도와 국민적 관심은 노벨상이 발표될 즈음인 11월이면 그 절정에 도달한다. 마치 한국 문학의 세계화는 기정사실이 됐고, 한국의 어떤 작가, 시인이 수상할 가능성이 몇 퍼센트인지 보도함으로써 언론은 독자들의 기대를 부풀려놓는다.

물론 이러한 기대를 갖게 할 만큼 한국 문학이 세계의 관심을 끌만한 사건들이 있었다. 199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아름다운 외국 문학’이라는 ‘벨 에트랑제르(Belle Etrangere)’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작가, 시인들 13명이 초청된 것을 필두로 2000년과 2005년에는 대산문화재단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중심으로 40여 명의 세계적인 작가들을 초청해 국제문학포럼을 개최하고, 2005년에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돼 40여 명의 작가, 시인들이 독일을 직접 방문하고 작품 낭독회와 한국 문학 세미나를 개최하고, 2007년에는 전주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대회를 개최해 상호간의 이해 증진과 교류 확대를 합의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한국 문학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문학이 이처럼 세계로부터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된 것은 한국의 국가적 혹은 민족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한국 문학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든 그것은 한국 문학이 머지않은 장래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고 실제로 그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 가능성은 꿈으로 끝날 수도 있고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실처럼 과장 보도하고 작가와 시인들이 노벨상의 수상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한국 문학을 위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초대된 것이나 노벨 문학상의 후보에 오른 것은 분명히 하나의 사건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곧 한국 문학의 수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작가나 시인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느냐에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문학이 과연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느냐 하는 데 있다. 문학상의 수상 여부는 우연의 결과일 수 있지만 세계적인 수준에의 도달 여부는 필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좋은 번역의 문제인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문학작품 가운데 외국어로 번역된 작품의 수가 불어난 것도 사실이고 번역의 수준이 향상된 것도 사실이다.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 등 한국문학작품의 외국어 번역을 지원하는 기관이 늘어난 것도 번역의 증가와 수준의 향상에 도움을 줬다. 그러나 한국 문학의 세계화는 전문화된 문학 번역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뛰어난 문학 전문 번역가에 의한 번역만이 작품의 문학성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성을 드러낼 수 있는 외국어로의 좋은 번역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참가하기 위해 1년 동안에 100권의 책을 번역했다는 것은 하나의 이벤트에 지나지 않을 뿐 진정한 의미에서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문학작품을 문학과 상관없이 외국어로의 단순한 옮김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경우 번역된 작품의 문학성은 거의 전달되지 않고 작품의 줄거리만 전달된다. 한번 번역된 작품은 그것이 좋지 않은 것일지라도 다시 번역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 전체의 수준을 평가 절하하는 기준이 된다.

외국어로의 좋은 번역은 능력 있는 전문 번역가의 양성을 전제로 한다.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인물 가운데 가장 큰 공로자로 사이덴스티카 같은 번역가가 지목됐다. 그는 일본 문학에 조예가 깊고 일본인의 정서를 이해하고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알 뿐만 아니라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에 심취해 있던 문학 교양인이었다. 그의 영어 번역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이 서양인들을 감동시킬 만큼 충분한 일본적 아우라는 살린 것으로 평가된다.

외국인을 좋은 번역가로 양성한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우선 한국을 좋아해야 하고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능통해야 하며 번역한 작품의 문체를 전달할 만큼 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 작가의 소설 문체나 시인의 시적 이미지를 전달할 만큼 훌륭한 번역자는 자신이 개성 있는 문체나 이미지를 사릴 수 있는 작가와 시인을 선택해서 번역할 수 있는 전문 번역가가 돼야 한다. 그 경우 한국 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할 정도로 좋은 번역에 대한 충분하고 지속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는 전문 번역가를 갖게 된다면 꿈의 단계로부터 현실의 단계로 옮겨질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지난해 10월 타계한 문학평론가 김치수 이화여대 학술원 석좌교수의 유고 비평집 『화해와 사랑: 유고비평집-김치수문학전집 10』(문학과지성사, 2015.10)에 수록된 것이다. 故人의 1979년부터 2006년 2월 정년퇴임때까지 이화여대 교수를 역임했다. 『공감의 비평을 위하여』, 『문학과 비평의 구조』등의 평론집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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