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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상황 어두운 국내교수에게 미인가대학 ‘인수’ 제의 … “반드시 교육부에 확인”
현지 상황 어두운 국내교수에게 미인가대학 ‘인수’ 제의 … “반드시 교육부에 확인”
  • 최성욱·이재 기자
  • 승인 2015.11.16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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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인가대학, 그 위험한 손짓
▲ 일러스트 돈기성

지난 2004년, 국내 사이버대의 A교수는 지인으로부터 미국 LA의 한 대학 동문명부를 엑셀파일로 건네받았다. 이 지인은 A교수가 평소 미국대학에 관심을 보인 것을 알고 자신이 졸업한 대학의 동문명부와 함께 ‘인수 제안’을 했다. 동문명부를 살펴보니 이름만 봐도 한눈에 알만한 국내 유력인사의 자제들이 즐비했다. 당시 A교수는 이 대학이 미국에서 인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명단’을 믿고 대학을 인수했다.

‘한국의 유명한 집 자녀들이 다닌 학교인데 설마 문제가 있겠어?’

그날로 A교수는 미국 대학의 이사장이 됐다. 그리고 3년 여가 지났다. A교수는 한국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다. 한국에서 ‘학위장사’를 하는 유령기관이라는 의혹을 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대학은 미국에서 인가를 받지 않았을뿐더러 한국에서도 인가를 받지 않은 채 학생을 모집하다 적발된 것이다. 검찰은 A교수가 인수하기 이전의 사건이라는 점을 참작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은 국내 유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퍼져나갔다. 정규 4년제 대학이지만 더 이상 학생이 찾아오지 않았다. 무혐의 처분을 받아낸 건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A교수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 미인가대학을 인수할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말 그대로 ‘유령대학’이 돼버린 것이다.

A교수는 인수할 당시 이 대학이 인가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상황은 이랬다. 미국에선 대학도 학원처럼 간단한 등록절차를 마치면 간편하게 설립할 수 있다. 한국과 달리 정부로부터 대학설립 인가를 별도로 받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일종의 국가공인 인증기관을 통해 인가를 받는다. 한국식으로 말해 ‘인가’이지, 현지에선 ‘인증(accreditation)’이 더 정확한 말이다.  

A교수도 현지 지인들을 통해 미인가 상태로 대학을 운영하는 곳이 미국엔 흔하다는 얘길 들었다. 인가 여부가 그리 큰 범법행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한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일단 대학을 인수하고나서 설립인가를 차차 받을 계획이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대학을 인수한 지 2년이 지나고, 대학 운영의 감을 잡은 A교수는 본격적으로 ‘인가 절차’에 착수했다. 한 인증기관에 문의하려고 이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답장을 받은 A씨는 인증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한국 같으면 정량평가 위주라 (설립인가를 받기 위한) 평가지표를 맞추려면 예산을 어느 정도 더 투입해야할지 예측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은 완전히 달랐어요. 예컨대 ‘교수와 학생 간 의사소통과정이 잘 돼 있어야 한다’거나 ‘교육의 질이 얼마나 훌륭한지’ 등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평가지표들로 인증을 합니다.”

그렇다고 인증(인가)을 포기한 건 아니었지만 “나날이 투자금만 소모됐다”는 게 A교수의 말이다. 현재 이 대학은 수년째 ‘개점휴업’ 상태다. A교수는 기자에게까지 “혹시 관심 있으면 넘길 테니 말해 달라”고 할만큼 천덕꾸러기가 됐다.

‘해외 미인가대학’ 일반인은 구분하기 어려워

만일 이 대학이 미국의 관할지역(州) 안에서만 운영을 했다면 인가 여부가 문제될 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A교수의 사례에서 보듯, 해외 미인가대학이 문제가 되는 건 대학 등록을 미국에서 했을뿐, 사실상 한국대학과 다를바 없이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영진, 교수·학생 등 구성원 대다수가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학생을 모집하며 한국인을 위한 교육과정을 꾸리지만, 단지 미국에 등록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정부(교육부)의 관리·감독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교육부의 까다로운 설립인가를 비롯한 각종 규제·관리의 법망을 피하면서도 미국대학 학위에 대한 사람들의 맹목적 추종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처럼 해외 미인가대학으로부터 뻗쳐오는 ‘검은 유혹’은 A교수만의 일도 아니고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가까이는 2007년, ‘가짜 박사학위 사건’을 기점으로 해외대학의 국내 ‘학위장사’ 문제는 크게 다뤄진 적 있다. 당시 정부는 연구재단을 통해 해외학위 불인정 교육기관인 이른바 ‘유령대학’ 명단을 공개하는 등 해외 미인가대학에 의해 피해를 받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했지만, 해당대학의 동문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일부에선 명예훼손 등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오기도 했다. 법원은 국가 간 대학설립과 학위 수여 기준이 다른 점을 감안, 대학의 자율성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런 대학의 학위는 한국에서 인정 받을 수 없는 탓에 이 대학의 교육과정을 이수할 경우 불이익은 고스란히 학생들 몫으로 남게 된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짜 박사학위 사건’ 이후 8년 여가 지났지만 연구재단이 확인해온 해외 미인가대학 명단 안내정책이 오히려 사라지는 등 적극적인 대처를 못하고 있다. 그만큼 법·제도적 후속조치가 뒤따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학설립 인가의 국가 간 차이를 파고드는 해외 미인가대학의 수법은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국내 학습장 운영을 엄격하게 단속하다보니, 별도의 학습공간이 필요 없는 ‘사이버교육’을 통해 수강생만 모집하는 곳도 있다.

얼마 전 교육부가 적발해 폐쇄명령을 내린 두 건의 사례만 봐도 수험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이곳이 유령대학인지, 검증된 곳인지 판단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최근 서울의 한 해외 미인가대학은 학습장을 학원처럼 꾸며놓고 학생들을 모았다. 이 대학은 유학원 시스템을 빌려 해외 본교에 학생을 보내는가 하면 학위까지 줬다.

일종의 ‘교환학생’처럼 학생을 보내고 학위도 주니 학생 입장에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육부 조사 결과 이 대학은 한국에서 인가를 받지 않은 불법교육시설이었다. 교육부는 폐쇄명령을 내렸고, 서울시교육청도 고발했다.

교육부 관계자에 따르면, 외국 명문대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서 그 학교 커리큘럼 그대로 공부한다고 하면 의외로 학부모들이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 이 관계자는 “해외 명문대학과 MOU를 맺어 유학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모두 ‘불법’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해외대학이라서 별도의 인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대학이나 교육기관이 있다면 교육부에 꼭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육부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해외 미인가대학의 국내활동을 관리·감독할 수는 있지만 이를 담당할 인력이나 전담팀이 없는 탓에 조기 예방은 요원해 보인다. 법령은 있지만 제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보도 사실상 학생을 모집해 이미 교육을 하고 있거나 학위를 수여한 이후에나 가능하다. 2007년 전후로 교육부 감사를 보면, 이런 수법으로 인해 학생들이 등록금을 떼이는 사례도 많았다. 특히 이 대학들의 국내진출 과정에서 교수·강사들이 연루되거나 수강생들이 미인가대학인 것을 모른 채 수년 후 피해자가 되는 것은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안타깝게도 해외 미인가대학을 확인하려면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사람들이 올려놓은 평가를 찾아가며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또 정부로부터 확인을 받으려면 교육부 담당직원에게 개별적으로 문의해야 하는데, 이조차 해외 미인가대학 관련 문의를 상담할 전담인력이 없어 수월하게 답변을 받아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교육부 해외대학, 수도권에 사업장 차릴 수 없다

현행법상 해외대학이 국내에서 분교를 설립하는 등 실질적인 운영을 하려면 인천 송도글로벌캠퍼스와 같은 경제자유구역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들 대학은 국내대학처럼 교육부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 대신, 해당지역의 경제자유구역청 관할 아래에 있게 된다. 하지만 뉴욕주립대, 조지메이슨대, 겐트대 등 송도글로벌대학캠퍼스에 입주한 대학들도 입주 전에 교육부로부터 사전 인가를 받아야만 한국에 분교를 설립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송도글로벌캠퍼스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해외대학이 국내에서 정상적인 대학운영을 하려면 우선 교육부에 분교 설립인가와 관련한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교육부는 자료 검토 후 현지실사를 떠난다. 교육부의 승인을 받으면 해당청과 세부설립절차를 밟게 되는 것이다. 해외대학의 무분별한 난립을 막기 위해 엄격한 심사를 하는데 이때 제출해야 하는 자료만 책 한 권 분량을 훌쩍 넘는다. 그만큼 해외대학이 국내에 진출하려면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는 말이다.

특히 교육부는 서울·수도권에서는 어떤 해외대학도 학습장을 열거나 사무실을 둘 수 없도록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수도권 과밀화를 방지하기 위해 대학설립에 제한을 둔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해외대학도 동일한 규제를 받게 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도권에는 국내대학도 들어올 수 없는데 해외대학이 어떻게 가능 하겠느냐”라며 “해외 미인가대학은 ‘학위’와 관계된 것인만큼 예방을 위해 선제적인 정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외대학의 한국진출에 대한 엄격한 규제장치와 절차는 있지만, 예방대책이 미비하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최성욱·이재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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