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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동국대 사건을 통해 본 대학가 성폭력의 의미
진단 : 동국대 사건을 통해 본 대학가 성폭력의 의미
  • 교수신문
  • 승인 2002.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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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사회에서 교수와 남성되기, 그 폭력성에 대하여

장시기/동국대·영문학(동국대 성폭력 역고소사건 대책위원회 간사)


최근의 탈근대 이론으로 논의되는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생태주의의 이론들은 역사적인 근대가 서구·백인·남성 중심주의의 학문적 담론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탈근대적인 입장에서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대학의 위기나 인문학의 위기는 역사적인 근대가 만들어 놓은 서구·백인·남성 중심주의로 구성돼 있는 학문적 담론들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근대적인 입장에 있는 학자들은 근대의 주요 담론들이라고 할 수 있는 계몽과 이성을 서구·백인·남성 중심주의로부터 탈주시켜 중립적 이론의 틀을 재구성하고자 노력한다. 탈근대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이론의 틀을 구성하고자 노력하든지, 혹은 근대적인 입장에서 계몽과 이성의 중립적 틀을 구성하고자 노력하든지간에 우리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서구·백인·남성 중심주의의 대학과 인문학에 대한 위기의식은 대학에 있는 많은 교수들에 의하여 폭넓게 공유되고 있는 현상이다.
대학과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공유의식은 근대적이든지 탈근대적이든지간에 서구·백인·남성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서 비서구·유색인·여성이라는 소수자의 시각을 획득해 그것을 학문적 논의와 실천의 토대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소위 진보적이라고 말하는 교수들은 전지구적 다수자라고 할 수 있는 서구나 백인에서 벗어나 비서구나 유색인의 소수자가 되거나, 전지구적 다수자라고 할 수 있는 인간에서 벗어나 자연 생태계의 소수자가 되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는 소위 진보적이라고 하는 교수들의 이러한 소수자 되기에서 유일하게 예외가 되는 것이 바로 전지구적 다수자라고 할 수 있는 남성에서 벗어나 여성이라는 소수자 되기라고 하겠다. 이러한 근대적이거나 탈근대적인 소수자 되기의 한계는 우리 대학사회의 전근대적, 혹은 식민지적 근대의 구성과 직접적인 연관을 지니고 있다.
대학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관계의 틀은 근대적이거나 탈근대적인 방향과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학문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근대성이나 탈근대성의 구현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대학 구성원들이 지니고 있는 관계나 인식의 틀을 나는 ‘동국대 사회학과 K교수의 일본인 제자 M양에 대한 성추행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목도하게 됐다. 처음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교수들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해 학생과 교수의 대립으로 파악, “사건의 진위를 떠나서 K교수의 해직은 가혹하다”라고 인식했다. 교수사회가 지니고 있는 집단적 이기주의가 사건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인식해 이 사건을 우리의 대학사회에서 학생(특히 일본인)이라는 소수자 되기로 바라봐야만 한다는 것을 거부하고 학생과 교수, 혹은 학교당국과 교수사회의 정치적 대립의 관계로 인식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그 동안 한국의 대학사회에서 이루어진 교수와 학교당국, 그리고 교수와 학생들의 대립관계가 근대성이나 탈근대성과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의 교수들이 대학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현상은 사건의 당사자인 K교수로 하여금 사건의 피해자인 M양과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사회학과 학과장으로 근무하던 여성사회학자 C교수를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하는 사건으로 확대하도록 만들었다. 학부나 대학원의 학생들이 너무나 허탈해 코웃음을 치는 상황에서 사건의 중대함을 인식한 몇몇 교수들이 서둘러서 ‘동국대 역고소 사건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사회의 많은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추진한 ‘성폭력 역고소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했을 때, 주위의 많은 교수들은 필자에게 “너무 튀면 교수짓 오래하지 못한다”라고 말하거나 “사회학과의 정치적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충고가 못마땅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식 속에 깊숙히 박혀 있는 정치적 대립의식이 사건의 본질을 끊임없이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동국대 K교수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C교수는 “혐의없음”이라는 검찰의 처분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K 교수에 의해 동일한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돼 C교수보다 먼저 경찰의 조사를 받은 일본인 M양에 대한 검찰의 처분결과는 아직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같은 여성이면서도 교수와 학생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식민지적 근대의 제도적 횡포가 한 인간의 자율적인 삶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성과 탈근대성의 논의에서 서구의 비서구되기, 백인의 유색인되기, 인간의 비인간되기가 이뤄지는 것처럼 우리의 대학 속에서 남성의 여성되기나 교수의 학생되기는 식민지적 근대나 전근대적 대학체제나 관계의 인식으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대학이 사회나 국가보다 한 발 앞서 자율적인 근대성과 탈근대성을 동시에 획득할 수 있는 기회이다. 오늘날의 서구되기, 백인되기, 그리고 인간되기가 비서구, 유색인, 그리고 비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고 억압하는 폭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우리의 대학에서 교수되기와 남성되기는 학생과 여성의 생명을 파괴하고 억압하는 폭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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