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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권력에 대한 포괄적인 전체지도 그려냈다
생명권력에 대한 포괄적인 전체지도 그려냈다
  • 심성보 문화연구자
  • 승인 2015.11.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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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푸코에서 생명자본까지 현대 정치의 수수께끼를 밝힌다』 토마스 렘케 지음|그린비|232쪽|19,000원

저자는 아감벤을 비롯한 사상가들이 생명정치의 특정한 모델을 추상적인 존재론적 범주로 끌어올리는 탈역사적 설명을 단호히 거부한다. 대신에 그는 생명 현상에 관한 실천과 이론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한다.

 

생명정치, 혹은 생명권력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이에 대해서는 조르조 아감벤의 설명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서 ‘생명’이란 단어는 양가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생명이란 살아있는 ‘목숨’, 즉 ‘죽음’에 반대되는 생물학적 상태(zoe)를 가리키는 동시에 개인이나 집단에게 고유한 총체적인 ‘실존’, ‘생활’, ‘삶의 방식’(bio)을 가리킨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인간은 단순한 생물학적 상태를 벗어나 공동의 실존에 참여하는 정치적 동물로 자리매김했으며, 예를 들어 노예나 범죄자는 조에로 추락한 사람이며 폴리스에 참여하는 시민은 비오스 상태를 영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논리에 따라 아감벤은 정치적 공동체에 포함된 시민과 추방된 사람, 혹은 법적 지위가 박탈된 반인반수 상태를 구분하는 몸짓이 정치의 근본적 토대이며 정치체가 성립하려면 배제된 자들이 반드시 공동체 내에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렘케는 아감벤이 제시한 생명정치의 ‘의미론’을 암묵적으로 수용한다. 그러나 저자는 아감벤을 비롯한 사상가들이 생명정치의 특정한 모델을 추상적인 존재론적 범주로 끌어올리는 탈역사적 설명을 단호히 거부한다. 대신에 그는 생명 현상에 관한 실천과 이론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하는데, 특히 미셸 푸코의 생명 권력 개념을 중심으로 생명정치에 관한 논쟁을 검토한다. 이런 통시적 접근과 함께 저자는 공시적 관점에서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다. 그것은 생명적인 것, 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을 말하며, 저자는 이들이 서로 분리돼 있지만 상호작용하면서 변용하는 관계에 있다고 간주한다. 우선 생명 또는 삶에 속한 것은 이념적 측면에서는 기술·발전주의에서 생태주의까지 포괄하며 생명의 단위라는 측면에서는 유전자 수준에서 지구 생태계 수준까지 확장된다.

 

탈역사적 설명 단호하게 거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정치적인 것은 공동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시민정치에서 국사사회주의의 사회정화까지 걸쳐 있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치적인 것을 전통적인 주권-법적인 차원에서 분리하려는 ‘탈(post)정치적’ 패러다임들을 끌어들인다. 마지막으로 생명현상을 다루는 대부분의 실천과 이론에서 간과되고 있지만 저자가 강조하듯이 경제적인 것 또는 자본주의 경제는 그 태생에서부터 생명 또는 삶과 정치적 시민권 사이를 중층결정하는 중력으로 작동했다.

푸코는 정치적인 것의 상징적·실체적 격자를 주권-법적인 것에서 분리하려고 시도했다. 그에게 근대적인 정치는 군주의 생사여탈권에서 비롯한 주권권력뿐만 아니라 개별 신체를 통해서 개인의 주체성에 각인되는 규율권력과 인구라는 집합적 신체를 통해서 사회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생명권력으로 구성된다. 어느 곳에선가 그는 주권-규율-생명의 삼각형이 순서대로 서로를 대체하지는 않았지만 주권에서 생명-삶 쪽으로 주도권이 넘어왔다고 주장한다. 범죄 영역을 사례로 들면 주권권력은 법적 금지를 기준으로 위반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을 하지만, 규율권력은 사회적 분류체계에 따라 범죄자를 비정상인으로 식별하고 그들을 교정·교화함으로써 정상인으로 만들려고 시도한다. 이런 규범화 개념을 뒤집는 생명권력은 오히려 정상인의 자리를 삭제하고 모든 인구가 확률적으로 범죄자, 즉 비상성인이 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이제 범죄자는 정상 규범에서 벗어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는 하나의 인격, 또는 범죄율로 표현되는 범죄성으로 변형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는 인구 전체에서 자연 법칙적으로 나타나는 범죄성-범죄율을 일정 수준이하로 통제함으로써 사회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푸코는 왜 주권권력이 아닌 다른 방식의 권력 행사를 탐구했던 것일까. 그것은 주권권력을 향한 저항이 언제나 국가 중심으로 회수되거나 대의정치 아래 권리의 정치라는 법적 투쟁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사회통제론이 주장하듯이 주권권력은 법적으로 성문화된 공식적 통제에 불과한 것이며, 비정상을 정상으로 규율하는 규범적 통제뿐 아니라 심신의 총체적 관리를 위한 의료적 통제를 포괄하지 못한다. 때문에 급진적인 세력이 국가장치와 의회권력을 장악한다고 해도 다른 형태의 권력에 의해 사회는 제어될 수 있으며 그 결과 현대정치는 무력감을 손쉽게 노출한다. 통치성에서 생명정치까지 푸코에 관한 이론적 독해로 잘 알려진 렘케는 그의 ‘스승’과 동일한 문제설정 아래 생명과정에 대한 실천적 개입과 이론적 사유를 체계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저자는 권력 지형에서 저항적 실천이 어떻게 가능한지 탐색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푸코 전후의 생명정치는 어떻게 전개되는가. 렘케에 따르면 생명정치는 크게 ‘생명’을 우선시하는 자연주의 관점과 ‘정치’를 우선시하는 정치주의 관점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우생학처럼 생명현상을 정치의 근본적 토대로 삼으면서 생물학적 모델에 따라 인간과 환경을 개조하려고 한다. 반면에 후자는 생명 영역을 정치의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기술적으로 생명을 조작하고 통제해 생산적으로 전유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양쪽 모두 상대적으로 경계가 취약한 생명과 정치를 고정된 실체로 간주한다는 면에서 비관계적이고 비역사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생명이란 정치의 경계로서 정치가 준수해야 하지만 변형할 수 있는 표면이며, 계산과 개입이 가능한 사회적 범주로서 통계학·인구학·의료학·생물학·사회학 등의 실천적 앎이 실천의 형태로 각인될 수 있는 영역이다.

푸코의 생명개념을 이어받은 아감벤과 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는 생명정치 개념을 개량하고 대중화한다. 아감벤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생물학적 상태로 축소된 인간, 즉 ‘벌거벗은 삶’을 정치적 공동체에서 축출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 행동이라고 규정하며 그런 행동이 오늘날까지 법적 담론 속에 면면부절 이어진다고 간주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호모사케르에서 최근의 아우슈비츠까지 공동체에서 추방되거나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찾아낸다. 아감벤이 정치적인 것과 생물학적인 것을 명확히 구분한다면, 하트와 네그리는 오히려 반대의 노선을 취한다. 그들에 따르면 오늘날 자본주의의 발전이 생산과 재생산 영역을 모호하게 만들듯이, 생산과 정치의 영역은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융합한다. 그들은 오늘날 탈근대 자본주의는 다중의 총체적 생명력에 기초한다고 주장하며, 이로부터 생명을 통제하려는 생명권력과 이에 저항하는 다중의 생명정치가 출현한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 동력의 중요성 환기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들 이외에도 푸코의 생명정치 작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 책에서는 이런 논의들을 새로운 정치 형태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과 생명-삶의 본질 변화에 기초를 둔 관점들로 파악한다. 한편으로 전자는 생명정치 또는 생활정치가 정치적 권리·대표에 기반한 전통적인 정치적 영역과 어떻게 구분되는지 추적한다. 이와 관련된 사상가들은 생명 문제에 대한 관리가 공동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공적 영역을 잠식·소멸한다고 부정적으로 주장하거나, 반대로 생명-삶에 대한 요구 자체가 공동체에 소속되는 성원권의 새로운 원천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른 한편 후자는 생명공학이 개방한 새로운 가능성이 생명에 대한 관념을―개인이나 인구에서 벗어나서―근본적으로 변형시키고 이를 통해 기존의 정치적 주체가 적어도 유전자·분자 수준에 토대한 연대 패러다임으로 이끌려 들어가고, 그 결과 생물학적 시민권과 같은 새로운 정치적 현상이 출현한다고 전망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렘케가 기여한 바를 간략히 정리해 보자. 첫째, 저자는 그 동안 파편적으로 다뤄지던 생명정치 또는 생명권력에 관한 논의를 계보학적 관점에서 조망함으로써 이 분야에 관한 최초의 포괄적인 지도제작을 시도하고 있다. 둘째, 생명-삶, 정치-법·윤리, 경제 사이에 관계성을 강조함으로써 저자는 인간 게놈에서 환경오염까지 생명현상을 다루는 많은 논의들이 간과하기 쉬운 자본주의 동력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탈정치적 경향을 경계하게 한다. 셋째, 저자는 일부 정치적 급진주의가 노정하기 쉬운 추상적 분석을 가능한 지양하고 경험적 분석에 근거한 구체적 작업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구체성이 결여됐을 때 ‘좋은 삶’과 ‘바람직한 삶’을 추구하는 정치적 행위는 본인이 겨냥하는 목표점에 이르지 못하고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심성보 문화연구자

지은 책에는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공저)이 있고, 옮긴 책에는 『푸코효과: 통치성에 관한 연구』(공역), 『일회용청년: 누가 그들을 쓰레기로 만드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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