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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이 된 건물과 나무들 … 새로운 ‘문체’로 116년 대학역사를 쓰다
상징이 된 건물과 나무들 … 새로운 ‘문체’로 116년 대학역사를 쓰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11.10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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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창립 기념하는 계명대의 독특한 접근_ 『계명대학교 건축물의 역사』·『계명대학교 캠퍼스의 나무 이야기』
▲ 염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대명동 캠퍼스 전경(1961년)

계명대가 개교 116주년을 맞아 내놓은 이 두 권의 책은 단순한 홍보성 책자가 아니다. 이건 좀 더 눈여겨봐야 할 대학 스스로의 의미 매기기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왕립아카데미 종신회원이 되는 자리에서 박물학자 뷔퐁은 “문체는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다. 뷔퐁의 이 유명한 언명처럼, 대학을 표상하는 것은 여럿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계명대는 ‘건축물이 우리다’, ‘캠퍼스의 나무가 우리다’라고 말한 셈이다. 그런데 누가 건축물에서, 캠퍼스의 나무에서 자기 대학의 역사를 읽어낼 생각을 했겠는가. 자고나면 새로운 건물이 쑥쑥 올라가는 대학 캠퍼스다보니, 지나온 발자취, 손때와 이끼까지 고스란히 묻어나는 건축물에서 함께 지나온 시간의 궤적을 읽어내고, 거기서 지성의 요람을 형성한 공기를 호흡하는 건 흥미로운 발상이다.

두 책 역시 각각의 편찬위원회를 두고 만들어졌다. 『계명대학교 건축물의 역사』(이하 『건축물의 역사』)는 손인호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외래교수, 이경규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박문희 계명대 동산의료원 홍보계장이 집필자로 참여했다. 역사의 숨결을 그대로 묻어낸 사진은 사진가인 박창모(계명대 홍보팀)씨가 맡았다. ‘건축물의 역사와 유래’를 꼼꼼히 놓치지 않고 챙기겠다는 의도가 살아 있다. 『계명대학교 캠퍼스의 나무 이야기』(이하 『나무 이야기』)는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김수봉 계명대 생태조경학과 교수가 집필자다. 역시 사진은 박창모씨가 찍었다. 강판권 교수는 일찍이 ‘나무 세는 인문학자’로 잘 알려진 이다.

 

계명대의 뿌리와 터전

“계명대는 모두 다섯 개의 캠퍼스를 가지고 있다. 1898년 부지매입을 시작한 동산캠퍼스, 1954년부터 조성한 대명캠퍼스, 1978년의 성서캠퍼스와 근년에 마련한 칠곡 동영캠퍼스, 현풍캠퍼스가 그것이다.

이들 캠퍼스 가운데 동산, 대명, 성서캠퍼스는 계명대의 뿌리요 터전이며 영남의 중심도시 대구의 근대화를 선도한 기독교 문화의 요람으로서 외국인 선교사들과 계명의 선구자들의 피와 땀이 배인 곳이며 온갖 정성과 혼이 얽혀 있는 역사적인 땅이다.

1897년 11월 1일 대구에 온 안의와(Rev. Dr. James E. Adams, 1867~1929) 선교사는 그해 12월 25일에 대구에 합류한 장인차(Dr. Woodbridge O.Johnson, 1869~1951) 의료선교사와 함께 1899년 12월 24일 오늘의 계명대 의과대학 부속 동산병원의 전신인 濟衆院과 ‘미국약방’을 지금의 대구 약령시장 내 제일교회 자리에 개원했으나, 급증하는 환자와 고약한 냄새, 소음 등 어려운 입지조건을 해소하기 위해 성 밖 동산에 새 터를 마련했다. 그것이 지금의 계명대 동산 캠퍼스다. 그리고 안의와 목사의 아들인 안두화(Rev. Dr. James N. Adams. 1895~1965) 목사와 계명대 초대학장인 감부열(Rev. Dr. Archibald Cambell, 1890~1977) 박사가 1954년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계명대의 터를 자리 잡은 곳이 지금의 대명캠퍼스이고, 1978년 계명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후 초대총장 신일희 박사가 대학의 웅대한 발전을 모색하며 비좁은 캠퍼스 공간을 해결하기 위해 제2의 창학정신으로 고심 끝에 물색한 새로운 계명의 터가 지금의 성서캠퍼스다. 이 성서캠퍼스는 부지 선정도 무척 어려웠지만 특별히 학교재산을 매각하지 않은 상태(매각할 재산도 없었지만)에서 광대한 185만㎡(55만8천 평)의 캠퍼스를 이렇게 아름답게 조성하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이 세 캠퍼스의 벽돌 한 장,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여느 곳의 예사로운 것과는 전혀 다른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유서 깊은 계명대 세 캠퍼스의 100여 개 건물 중에 70여 개 건축물의 역사와 그 유래를 기록해 후세이 길이 전하고자 한다.”(『건축물의 역사』, 6쪽)

『건축물의 역사』는 동산캠퍼스의 의료선교박물관을 시작으로 제중관(옛 병동), 외래진료동, 교수연구관(옛 간호대학관), 동산의료원 사택, 은혜정원(선교사 묘지), 청라언덕, 경주동산병원을 지나 대명캠퍼스의 대명본관, 바우거기념도서관, 의양기념관, 동서문화관, 동산관을 훑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성서캠퍼스의 백은관, 봉경관, 동산도서관, 성서본관, 성서캠퍼스 정문 계명인 상을 거쳐 아담스채플, 행소박물관, 계명한학촌, 계명아트센터, 의과대학관, 아람관까지 이른다.

▲ 본관, 계명의 초상화 「Tabula Rasa, 우리가 얼굴을 가질 때까지」.

『나무 이야기』 역시 동산캠퍼스의 사과나무와 선교박물관, 용버들과 은혜정원을 지나 대명캠퍼스의 히말라야시다와 바위산, 목련과 윌슨관, 독일가문비와 수산관, 자귀나무와 백학관을 거쳐간다. 이윽고 성서캠퍼스 은행나무·이팝나무와 정문 및 본관, 상수리나무와 동천관, 메타세쿼이아와 행소박물관, 모감주나무와 명교생활관까지 단박에 도달한다. “계명대에는 120종이 넘는 나무들이 살고 있다. 캠퍼스에 살고 있는 나무는 성서캠퍼스의 궁산 자락의 소나무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이 심은 것이다. 그래서 캠퍼스에 살고 있는 나무는 한 그루 한 그루마다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담겨 있다”라고 말하는 강판권 교수는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캠퍼스의 나무는 계명의 구성원들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존재다. 나무를 자신의 몸처럼 생각하는 ‘생태의식’은 계명대가 지향하는 융합의 교육철학이다”라고 『나무 이야기』 프롤로그에 썼는데, 공감되는 말이다.

▲ 동산 신태식 명예총장을 기념해 1992년에 준공한 동산도서관.

■ 동산도서관

계명대 성서캠퍼스 정문에 들어서면 멀리 정면 마주 보이는 궁산 자락에 웅대한 사각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이 계명대 설립에서부터 1978년 종합대학이 될 때까지 대학의 성장과 발전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제3대 학장 동산 신태식 박사를 기리를 동산도서관이다. 신태식 박사는 당시 대한민국 중앙교육위원으로 계명대 설립인가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1961년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학장(제3대)에 취임해 1978년 종합대학이 될 때까지 18년 동안 수십 차례의 국내외 대학발전기금조성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이 대학을 오늘의 계명대로 성장, 발전시킨 주역이다.
(『건축물의 역사』, 160쪽)

▲ 성서캠퍼스 전경(2014년)
▲ 2004년에 준공한 계명한학촌.

■ 행소박물관의 메타세쿼이아 길

성서캠퍼스를 가장 빛나게 하는 가로수는 동문 행소박물관 앞의 메타세쿼이아다. 행소박물관의 ‘行素’는 계명대 신일희 총장의 아호다. 이 나무는 1946년에서야 지구상에 살라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동안 이 나무는 지구상에 없는 존재였다. 이 나무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은 빙하기에 많이 죽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해수면이 높아져 나무들이 바닷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 나무의 존재는 다른 나무보다 아주 뒤에 알려졌지만 은행나무와 소철처럼 살아 있는 화석일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곳의 메타 가로수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은 메타 간의 거리가 좁기 때문이다. 숲은 좁은 공간도 넓게 보이게 하는 마술과 같다. 숲은 좁은 마음도 넉넉하게 만드는 마법과 같다.(『나무 이야기』, 152~153쪽에서 발췌)

▲ 성서캠퍼스 행소박물관의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 glyptostroboides)


 

▲ 대명캠퍼스에 심어진 히말라야시다(Cedrus deodara).

■ 히말라야시다와 바위산

대명캠퍼스의 시다는 학교를 상징하는 나무였다. 그러나 문제는 바위산을 깎아서 만든 캠퍼스에 시다를 심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데 있었다. 계명대에서 시다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바위산에 굳이 시다를 심었던 것은 나름대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시다는 기독교에서 아주 신성하게 여기는 나무이기 때문. 이 나무의 신성한 의미는 학명에 숨어 있다. 이 나무의 학명(Cedrus deodara) 중 종소명인 ‘데오다라’는 神木을 뜻한다. 이는 시다가 우리나라의 느티나무, 회화나무, 은행나무처럼 오래 사는 신령스러운 나무라는 뜻이다. 시다와 바위산은 대명캠퍼스의 정신을 상징한다. 이곳 대명캠퍼스의 바위산은 세상을 향해 빛을 여는 啓明의 상징이다. 시다는 영어식 이름이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개잎갈나무로 부른다.
시다는 나무들끼리 뿌리를 엮어서 위험을 방지한다. 그러나 도시로 내려온 시다는 그런 장치를 하지 못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어서 태풍이 잦은 우리나라에서 살기가 무척 힘들다. 시다는 한 그루의 나무를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나무다.(『나무 이야기』, 38~41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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