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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A교수 “내 표는 사실상 버리는 표였다”
국립대 A교수 “내 표는 사실상 버리는 표였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5.11.09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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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바라는 ‘공모제’ 직접 해보니…

지난 2012년 경기도의 한 국립대 A교수는 부임 후 처음 총장선거 투표장에 들어섰다. 강당엔 전체 단과대학에서 온 전임교수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날 교내 전 교수들이 모인 건 교육부가 국립대학에 요구한 ‘공모제’에 따른 것이었다.

전체 교수들이 강당에 모여 총장추천위원회(총추위)의 위원을 뽑고, 이들은 현장에서 즉시 투표권을 행사하게 돼 있다. 총추위원이라고 해서 총장선거와 관련, 특별한 활동을 하지는 않고 투표권만 가지게 된다.

이 대학은 총추위를 △교수 30명 △직원 6명 △외부인사 12명 등 총 48명으로 구성키로 했다. 이 48명이 투표로 총장후보자 최종 2인을 선정하면, 득표수에 따라 1·2순위자 자격을 얻어 교육부에 ‘추천’을 한다. 교육부 장관은 이렇게 뽑힌 후보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을 임용 제청하면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최종 임명한다.

진행자는 교수 투표인단(총추위원) 30명을 뽑겠다며 정숙해달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웅성대던 소리가 이내 잠잠해졌다. 그런데 당시 2~3년차 ‘신임’이었던 A교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투표권을 행사할 총추위원을 선정하는 방식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행자는 무대 위 스크린에 전체 교직원 명단을 올려놓고는 무작위로 ‘번호 추첨’을 하기 시작했다. 하필 A교수가 ‘부름’을 받았다.

“일단 너무 난감했어요. 대학 경험도 적고, 무엇보다 학교 사정을 잘 알지 못했거든요. 더군다나 후보자 면면도 파악할 시간이 없었죠.”

마지막 총추위원인 30번이 호명됐다. 이름이 불리지 않은 교수들은 모두 퇴장했다. 강당엔 총추위원 48명만 남았다. 곧 총장후보자의 마지막 정견발표가 짧게 진행됐다. A교수는 난감함에 빠져있을 여유가 없었다. 정견발표가 끝나면 투표소로 들어가 누가 됐든 한 명은 찍고 와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총장을 반장선거 인기투표처럼 할 수도 없고…. 당시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자료라곤 공약집과 그날의 인상밖에 없었어요. 선배교수들로부터 대학과 교수사회를 잘 아는 분이 총장을 하면 좋겠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있어서 이 부분도 고려했습니다. 그리고 비전 정도요? 그런데 막상 투표소에 들어가니 ‘내가 던지는 이 한 표가 과연 학교 발전을 위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제가 투표한 표는 사실상 버리는 표였어요.”

A교수는 2년 여가 지났지만, 총장후보자를 선출하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어떤 제도든 조직의 대표를 선출하려면 구성원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돼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교육부가 요구하는 공모제는 너무 우연에 의해서 누군가 선출되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A교수가 말하는 ‘우연’은 무작위로 뽑은 총추위원만큼이나 총장도 무작위로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대학은 이공계 비율이 높은 편이었지만, 이 ‘우연’으로 인해 총추위원 대부분이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이었다. 또 다득표율에 따라 1·2순위자가 가려진다고 해도 교육부에서 두 후보자를 모두 선택하지 않거나, 2순위자를 선정할 수도 있다. 

이처럼 국립대 총장은 거듭되는 우연 속에서 최종 낙점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A교수의 말이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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