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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체크 만만히 봤다가 큰코 다친 사연
출석체크 만만히 봤다가 큰코 다친 사연
  •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 승인 2015.11.09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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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⑥ 출석부
▲ 일러스트 돈기성

검열도 모자란 것인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라는 화두가 온 나라를 집어 삼키는 블랙홀이 돼있는 동안에도 수능일은 어김없이 닥쳐오고 대학 입시지옥은 아가리를 한껏 벌리고 있다. 정작 대학은 재정지원이라는 홍당무를 든 국가(정부)의 위력에 떠는 초라한 신세로 위축되고 있다. 대저 대학의 감사와 관련해서 출석부까지 회자되다 보니, 학문의 위상이란 것이 어디까지 내려가야 멈출 것인지 그 끝이 있기나 한지 두려울 뿐이다.

출석부를 떠올리면 사적으로는 정말 문제적이었던 일이 생각난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무용지물 독문학을 강의하는 사람의 양심으로 학생들의 출석 점검을 외면했다. 약간은 대학 밖 사회에서 보는 색안경의 압박 때문이었을지 모르나, 좋았던 시절 첫 부임 때부터도 출석 부르기는 참 ‘짓 없는 짓’이라고 느꼈다. 다만 5mm의 사선을 출석부에 그음으로써, 그 하나하나에 평소점수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을 내 강의에 묶어두기는 정말로 못할 짓이라 생각했다. 

나는 대놓고 말했다.

“출석을 부른다고 해서 대리대답일랑 마세요. 나는 출·결석을 평소점수에 연계시키지 않습니다. 꼭 강의에 들어오려고도 마세요. 사람이 할 일이 널려 있는데, 하다못해 친구가 연애타령으로 괴로움 토하는 걸 들어주다가 수업 때문에 내버려두고 오진 마세요. 공부는 나중에도 하고 책에도 있고 책들도 많지만 그 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나는 학생들이 나 같은 호구를 이용해서 강의보다 분명 덜 유용한 일에 시간을 쓰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성인들 아닌가. 나는 카프카의 편지글을 인용해서 신나게 말했다.

“최소한 25세가 되기까지 잠시라도 빈둥빈둥 보내지 않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참 안 됐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무덤 속으로 가지고 갈 것은 벌어놓은 돈이 아니라 빈둥거린 시간, 바로 그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기 때문이오.”

나는 학생들 가운데 카프카가 나오기를 꿈꿨는지도 모른다. 일찍 결핵으로 죽는 것만 빼고는 그를 닮을 수만 있다면야.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라고 말하던 카프카를. 

그렇게 만만하게 출석을 무시하다가 큰 코 다친 일의 전말은 이렇다.

장편소설 하나를 읽는 강의였는데, 평소점수는 발표로, 중간에 리포트 하나와 기말고사로 평가하기로 예고된 과목이었다. 시험을 치르던 날, 해괴하게도 출석부 이름보다 앉아있는 학생 수가 하나 더 많았다. 

뭘까? 

문제는 답안지 채점이 끝난 뒤에 드러났다. 출석부에 수강신청이 되지 않은 한 학생이 기말시험에 응시한 것이었다. 발표 팀에도 끼지 않았고 중간에 리포트도 제출하지 않았지만, 그 학생은 나름대로 한 학기 수업을 들었고 (물론 출석률은 좋지 않았겠지만), 기말시험을 치른 것이다. 성적도 중간은 갔다. 어떻게 해결을 해야 했을까. 어떻게 해결을 했을까. 

다행히도 그때 그 시절에는 교수의 ‘양심적’ 재량권이 보장되던 때였다. 하지만 내 소홀함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개과천선? 물론 약간의 변주가 생겼다. 학기 초에 강의과목 수정 기간이 끝났을 즈음해서 꼭 한번은 10분이 넘어 걸려도 출석을 부른다. 소리 나는 곳으로 눈을 맞추려니 오래 걸린다. 그러고는 또 잊는다, 출석 부르는 일을.

▲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출석부 제출은 늘 거짓으로 했냐고? 아니다. 시험답안지 이름 기입란 옆에 괄호를 해놓고 결석 날짜며 횟수를 대충 기입해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결석과 평소점수와 무관하다고, 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다. 절반 가까이 결석했다고 써내는 경우에는 조금은 속이 상한다. 얼마나 안 들어도 되는 강의면 이렇게 안 들었을까. 한편 얼마나 안심을 하면 이렇게 정직하게 말할까 위안이 되기도 했다.

내가 비뚤어진 선생이었을까. 오고 싶으면 오라고 출석을 전혀 부르지 않는 것도, 강의안을 토씨까지 써가지고 가지 않으면 말이 안 나와서 농담도 표시해 가지고 가야 하는 무능도, 정년까지 견뎌 내지 못한 것을 봐도 그렇긴 하다. 그러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출석부에 긋는 5mm 사선으로 학생들의 ‘껍데기’만을 잡아두고 싶지는 않다. 내 낡은 눈에는 대학에서 출석부는 그냥 족쇄다. 

그런데 출석부가 문제랴. 모든 억압은 옳고 그름을 초월해서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다. 누구라도 스스로 그리 부끄럽지 않으면 억압이라는 수단을 내려놓고 순리를 따르지 않겠는가.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전남대 독일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하인리히뵐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도이칠란트·도이치문학』등을 썼다. 퇴임 후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 장편소설 『표현형』 등을 내고 PEN문학활동상, 광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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