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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5호 새로나온 책
제805호 새로나온 책
  • 교수신문
  • 승인 2015.11.0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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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에 대핸 최선의 과학적 이해에 비춰봤을 때 우리는 선택에 직면한다. 우리는, 도덕적 직관과 판단이 직관적 반응에 정서적으로 기초해 있고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임에 반해, 이성은 비이성적인 토대에 근거해 이미 내려진 결정을 뒷받침하는, 가능한 한 최선의 정당한 논거를 구축하는 일 이상을 하지 못한다는 관점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우리의 정서에 기초한 도덕적 가치들에 대한 옹호, 그리고 그러한 가치들에 대한 명확한 생각을 고무하는 일과 여전히 양립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는 일종의 도덕적 회의주의 이어지게 될 것이다. 또 다른 대안으로 우리는 ‘우리의 진화사와 문화사에 힘입은 도덕 판단’을 ‘이성적 토대를 갖는 도덕 판단’과 분리하는 야심에 찬 계획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 피터 싱어 프린스턴대 석좌교수, 「이 시대에 윤리적으로 살아가기」, 『윤리와 사회철학』(한국철학회 편, 철학과현실사, 2015.10) 중에서

■ 금속 전쟁: 기술발전과 욕망, 갈등이 교차하는 희소 금속의 세계, 키스 베로니즈 지음, 엄지원 옮김, 반니, 308쪽, 16,000원

희토류 금속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은 물론 역사와 정치, 경제 전반에 걸쳐 살펴보는 책. 저자는 희토류 금속의 독특한 화학적 성질뿐만 아니라, 이를 얻기 위한 인류의 노력 뒤에 드리운 어두운 진실,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과 작금의 적나라한 상황, 그리고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에 대해 거침없이 풀어놓는다. 화학 박사이면서 금속이나 무기, 자원을 둘러싼 국제관계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과학 사이트와 잡지에 기사를 써온 저자는 주기율표의 다른 원소들과 차별화되는 희토류 원소만의 독특한 성질을 알아보고, 광석에서 이 금속들을 분리하는 방법과 과거 과학자들이 새로운 금속을 발견한 과정, 그리고 이렇게 얻은 금속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 설명한다.

■ 꽃, 피어나다: 옛 시와 옛 그림, 그리고 꽃, 기태완 지음, 푸른지식, 896쪽, 35,000원

이 책은 2천500년 간 동아시아에서 널리 사랑받아온 꽃 68종의 유래, 역사, 설화를 밝히고 여기에 한시와 옛 그림 및 꽃 사진을 더해 만든 국내 최초의 꽃에 관한 인문학적 백과사전이다. 특히 『시경』, 『서경』을 비롯하여 『본초강목』, 『산해경』, 『격물론』 등 중국 고전은 물론이고 대만의 『시경식물도감』, 한국의 『양화소록』, 『지봉유설』 등 동아시아의 옛 문헌들을 다방면으로 추적해 내용을 선정했고, 고서에 적힌 문장 또한 직접 번역해 그 유래와 종류, 쓰임새까지 세세하게 밝혀놓았다. 여기에 계절과 장소를 넘나드는 꽃 사진까지 더해 감상에 즐거움을 더했다. 이렇듯 고문헌부터 시각자료까지 분야를 넘나들며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졌기에 이 작품은 저자의 꽃길인생을 총망라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꽃이 동아시아에서 어떤 연유로 어떻게 사랑을 받았는지 세세히 밝혀주는, 인문학적 꽃 감상서라 할 수 있다.

■ 다시 과학을 생각한다, 김재호·편다현 지음, 에코리브르, 344쪽, 17,000원

과학의 시대에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다루는 책. 저자는 현대의 과학이란 이제 무기이자 식량이고 치료제이자 미래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과학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을 위해 과학이 발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기 위해서 비판적 합리성을 되살리고 다원주의적 과학을 지향해야 함을 밝힌다. 또한 과학과 사회의 분리는 해롭다고 주장한다. 사회가 있다면 거기에 반드시 과학이 있다. 인간은 해를 입지 않기 위해 사회적 동물이 되었으며, 따라서 사회 속에서 과학을 배운다는 것은 생존 방식을 터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윤리의 문제와 과학의 한계 문제가 제기된다. 1장에서는 과학의 본질을, 2장에서는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3장에서는 현재 과학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들을, 4장에서는 과학의 진화에 관해 다룬다. 저자의 한 사람인 김재호는 <교수신문> 학술객원기자로, ‘과학본색’을 연재하고 있다.

■ 믿음 없는 믿음의 정치: 정치와 종교에 실망한 이들을 위한 삶의 철학, 사이먼 크리츨리 지음, 문순표 옮김, 도서출판 이후, 392쪽, 20,000원

사이먼 크리츨리는 ‘저항’을 둘러싼 슬라보예 지젝과의 논쟁으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현실정치에 적극 개입해 온 크리츨리는 국가권력을 장악하지 못하는 이상 저항은 곧 투항이라는 지젝과 달리 정치가 국가 안에서 국가와 ‘틈새를 유지하는 거리’를 창출하는 문제라고 말하며 저항의 쓸모를 강변한다. 또한 저자는 그 어떠한 유토피아적 정치 기획도 의문에 붙인 채 현실의 비극적 우연성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하는 존 그레이에 반대하며 아나키즘을 옹호한다. 이 때 아나키즘은 자유로운 조직과 자기-결정을 통한 ‘연합’의 활동으로서 정치적 사유에서 유토피아적 충동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새로이 주장되는 ‘믿음’은 그러한 자유로운 조직과 주체의 활동에 깃든 윤리적 차원을 지시한다. 다른 어떤 초월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실체에 기대지 않은 ‘믿음 없는 믿음’, ‘믿지 않는 자들의 믿음’이 진정한 정치의 필수 요건이라는 것이다.

■ 법사회학, 니클라스 루만 지음, 강희원 옮김, 한길사, 684쪽, 30,000원

루만의 체계이론은 사회를 거대한 체계로, 법은 그 체계에서 기능적으로 특화된 부분체계 중 하나로 파악함으로써 구조적인 분석을 전개하고 있다. 법이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예시를 다양하게 들며 법형성의 원리를 밝히고 실정법을 분석한다. 루만에 의하면, 사회적 기대의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범례화하고 정식화하는 것이 바로 법이다. 따라서 법은 ‘기대강제’라는 성격을 지닌다. 이는 법이 우리의 일상에서 믿음과 기대를 바탕으로, 즉 규범적으로 정착됨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건 법체계가 절대 변하지 않는 정적인 체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법은 법과 관련된 모든 사건에서 행위 당사자들의 관계, 서로를 향한 기대, 기대의 확실성 등의 정도에 따라 역동적으로 반응한다. 그리고 법체계는 그 역동성을 바탕으로 자기충족적인 체계로 거듭난다. 우리가 법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를 법 스스로 규율한다는 것이다. 법을 관리하는 건 법 자체다. 이것이 ‘법-체계’의 진정한 의미다. 루만이 파악한 법체계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루만은 어떤 이념이나 주의보다 합리적 사고를 중요하게 여겼다. 독자적으로 운행하는 체계들은 사회의 안정과 유지에 무관심하다. 그 체계들을 모으고 조정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게 바로 합리적인 소통, 합리적인 타협이다.

■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니킬 서발 지음, 김승진 옮김, 이마, 456쪽, 18,000원

사무실은 현대 도시의 표준적 거주민인 사무직 노동자의 일터로, 오늘날 누구라도 그 모형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보편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근대 이후 산업 구조와 노동 시장의 변화, 그리고 그에 발맞추어 디자인과 건축 분야의 여러 실험과 시행착오가 숨어 있다. 저자는 사무직 노동자와 사무실의 탄생과 그 연대기를 밀도 높고 재치 있는 문장으로 서술한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지금까지 연구의 배경으로만 머물렀던 사무 공간의 진화를 솜씨 좋게 직조해 낸다. 또한 개인용 컴퓨터와 책상, 파티션 등으로 이뤄진 사무 공간에 갇혀 희망과 좌절로 환호하고 한숨짓는 사무직 노동자의 얼굴, 그리고 사무실에서 행해져 온 차별과 불평등, 통제와 기만의 면면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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