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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에세이
릴레이 에세이
  • 교수신문
  • 승인 2002.12.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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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2 13:31:06
홍덕률 / 대구대·사회학


3년쯤 전이다. 지역의 여러 대학들에서 재단의 비리·전횡과 교권유린 사건들이 줄줄이 터지고 있던 때였다. 나는 대구의 한 지역신문에 ‘교수인 것이 부끄럽다’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재단의 비리도 비리고 전횡도 전횡이지만, 많은 교수들이 숨죽이고 눈치보는 모습은 같은 교수로서 안타까움을 넘어 부끄럽기가 그지없어서였다. 우리나라의 굴절된 지식의 역사, 굴종을 강요받아온 지식인의 역사를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 때 나는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나는 똑같은 제목을 써놓고 그 때 뇌였던 똑같은 한탄을 늘어놓으려 하고 있다. 3년 전에 나를 몹시도 분노하게 했던 한 대학의 재단 비리와 전횡은 2년 전 임시이사 파견으로 일단락됐지만, 또다른 한 대학에서 그 못지 않은 황당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뜻밖의 전화 한 통화로 누구도 관심갖지 않던 그 대학의 비극을 알게 됐다. 만나서 차도 한잔 나눴다. 말씀인 즉 재단측의 괘씸죄에 걸려 파면당했다는 이야기다. 몇 해 전에 설립된 예술대학인데, 들어보니 학교 사정이 가관이었다. 설립자이자 총장이었던 소위 학교 오너는 1999년에 교수채용시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형을 받았다고 한다. 그 때 재단측의 요구를 받은 교수들이 재판부에 제출할 탄원서에 서명을 했는데, 자신은 서명을 거부했고 그것이 괘씸죄의 내용이란다. 그 교수는 당연히 눈 밖에 났고 지난 학기 수업 때 학생 질문에 대답한 내용 중에 학교 행정을 비판한 몇 구절을 빌미로 파면을 했다는 이야기다.
아직도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다니 대한민국의 대학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또 교육인적자원부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하지만 그보다 더 참담한 것은 학자적 양심에 따라 ‘이것은 아니다’라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교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워낙 신분이 불안한 것도 작용했겠지만, 돈을 주고 들어왔거나 오너와 특수관계인인 교수들이 적지 않은 것도 중요한 이유라는 것이다. 학생들도 위 교수의 파면이 부당하다는 서명을 받다가 학교측의 감시와 제지로 쉬쉬되는 실정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 대학은 교수 30~40명밖에 안되는 미니 대학이고 교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받고 있을 정도니 그렇다고 치자. 며칠 전에는 대구의 내로라하는 사립대학이 각종 물의를 빚은 유명인사들까지 특임교수로 채용을 해 뜻있는 지역 인사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특임교수 중에는 이회창후보의 동생 이회성씨가 우선 눈에 띈다. 이회창후보가 지난 8월 대구 방문 길에 이 대학을 찾았던 것도 이회성씨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지역 언론은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5월, 뇌물 수수혐의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뒤 최근 실형이 확정돼 법정 구속된 문희갑 전 대구시장도 특임교수로 올라 있다. 문 전시장은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는 중에도 매주 대학원 강의를 해 왔다고 한다. 도대체 사립대학이 무슨 바람막이할 일이 그렇게 많아서 정치권 인사들에게까지 특임교수를 주고, 비리로 실형을 살고 있는 전직 고관에까지 특임교수 자리를 내줘 강의를 하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대학을 사유화하지 말라고 주장하며 총장의 전횡에 반대했던 교수들은 줄줄이 재임용탈락시켜 내쫓더니, 정치적 바람막이 가치가 있어 보이는 이들은 묻은 때에 관계없이 특임교수 자리를 주고 있는 것이다. 교육기관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식과 학문탐구의 소명마저 포기한 것은 아닌지 답답할 뿐이다.
하지만 정작 더 답답한 것은, 그곳엔 더이상 시시비비가 없다는 사실이다. 모두들 ‘예’이거나 눈감고 등돌려 앉기다. 절대 권력과 침묵만이 있을 뿐이다. 오늘도 난 교수인 것이 부끄러워 낯을 들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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