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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연예술계의 두 번째 성과 … 주제 짜임새 돋보여
한국공연예술계의 두 번째 성과 … 주제 짜임새 돋보여
  • 허흥식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고려사회사
  • 승인 2015.11.0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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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_ 『韓劇의 原形을 찾아서: 불교의례』 한국공연예술원 엮음|열화당|433쪽|45,000원

공연예술을 한극의 뿌리에서 찾으려는 이번 저술에는 공연예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원장의 기획과 철학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 그것은 13명 학자의 15편 논문을 통해 선명하게 다가온다.

 

한극을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총체적 표현이라고 하다면, 그것이 다루는 대상은 매우 넓다. 시간을 거슬러 뿌리를 찾으려는 이 책은 한국공연예술계가 그간 의무에 가까운 사명감으로 일궈 얻은 두 번째 성과다. 첫 번째는 굿을 대상으로 기초를 다졌다면, 두 번째 펴낸 이번 불교의례는 기둥을 세우는 일이라고 하겠다.

공연예술이란 음악과 무용을 결합해 설치한 공간에서 제공하는 종합예술이다. 오늘날 공연은 시청각을 동원한 디지털과학에 의해 보존, 보급되고 있다. 예술과 문학 역시 사상과 만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파급성을 발휘한다. 디지털시대의 흐름에 맞춰 학문의 장벽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환경일수록 원형은 더욱 중요하고 국가별 정체성이 필요하다.

인간은 경험을 기록하고 사상으로 다음의 행동방향을 개념화한다. 우리의 사상은 크게 네 차례 변화했다. 첫 번째는 신석기대에서 철기시대의 초기까지 신화가 종교를 대신하고 이후에도 민속으로 살아 관통했다. 원시종교는 토착이나 고유, 또는 민속이나 신앙과도 접목돼 널리 쓰이고 샤먼이란 직업적 전수자에 의해 굿으로 공연되며 살아있다. 두 번째는 불교의 시대가 등장해 원시종교와 결합함으로써 사상의 변화가 나타난다. 이번 책이 다룬 ‘불교의례’는 가장 오랜 기간 수행된 불교 시대의 유산이다.

불교의례는 세 번째로 등장한 성리학시대의 의례와는 달리 사원과 민속에서 강하게 살아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네 번째는 서양과 조우한 시대로, 이 시대는 서양의 종교가 보급돼 기존의 주된 세 가지 사상과 공존하면서 다원화를 이루고 공연예술에도 다양한 자극을 주었다. 우리의 전통으로 남아 있는 공연은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다수가 등재됐다. 불교의례의 일부로 영산재와 연등행사가 이에 해당된다. 

 

전통 속에서 한극의 뿌리 찾기

공연예술을 한극의 뿌리에서 찾으려는 이번 저술에는 공연예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원장의 기획과 철학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 그것은 13명 학자의 15편 논문을 통해 선명하게 다가온다. 전통은 어느 시기에 포괄성과 생동감을 가졌지만 이후에 껍질만 남아있으므로 기록과 그림, 그리고 전승에 생명을 불어 넣고 종합해 원형을 재현해야 생명이 있다. 이 책은 전통 속에서 원형을 읽어냈다.

책은 「서설」, 「제1부 불교의례의 역사적 개관」, 「제2부 불교의례의 음악, 미술, 연극적 요소」로 구성됐다. 공연예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간을 마련하는 무대 장치로, 미술과 복식과 제물, 의상과 악기가 중요하다. 다음은 연극적인 요소다. 시간의 예술인 음악과 어울린 배열과 등장인물의 의장이 공간과 시간 순서에 따라 전개하는 동작이 중요하다.

불교의례는 국가와 사회의 축제나 왕실과 개인의 상례와 제례를 불교적 형식으로 진행하는 종합예술이었다. 공연을 위한 무대장치는 생활 속에서 이미 갖춰진 시설을 이용했다. 불교의례는 공연예술과 달리 시간 순서를 따라 행렬이 거리를 누비면서 수행된 부분이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주제의 짜임새가 특히 돋보인다. 집필자는 모두가 학문에 바탕을 두고 현재에 재현되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불교의 이론과 역사와 실천의례에 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 대표적인 성과를 가진 분들이다. 구미례 선생의 논문 두 편(「불교의례와 공연예술의 만남」, 「불교의례에서 시공간의 상징성」)은 현재의 재현에 무게를 둔 이론적인 서설과 상황이다. 불교의 상례와 제례를 현대의 공연으로 접근한 시각은 가장 보편적인 불교의례의 기초를 제공한다. 김상현 선생의 글(「불교의례의 역사적 전개와 교화 방편」)은 불교의례를 시대 순으로 일별했고 홍윤식 선생의 글(「불교의례와 민속예술」)은 불교의례의 신앙적 특성을 짚으면서 불교문화와 민속예술의 관계를 유추한 접근이었다. 불교의례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기획과 편집의 세심한 배려가 반영됐다.

제2부에서는 불교의례의 예술적 요소를 다뤘다. 전문적인 각론에 해당한다. 공연은 무대장치와 연기자의 복식과 지물, 춤과 음악, 그리고 구호와 행렬 등의 종합인데, 이 책에서는 이해하기 쉽게 배열했다. 심상현 선생이 쓴 두 편의 논문(「홍가사의 형태와 부착물에 대한 고찰」, 「작법무의 연원과 기능에 대한 고찰」)은 紅袈裟와 作法舞에 대한 연구다. 대표적인 복식과 춤에 관해 나눠 서술했으므로 이해하기 쉽다. 여기에 채혜련 선생의 논문(「영산재와 범패」)은 불교음악의 대표적인 사례로 영산재의 범패를 제시했고 이 책의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의례나 공연에서 등장인물의 복식과 무대장치와 장식은 정적인 요소이고 무용과 음악은 동작을 시간에 배열시켜 순서와 질서와 조화를 추구하는 동적인 예술의 핵심이다. 여기에 정명희 선생의 논문(「조선시대 불교의식과 불교회화」)은 ‘주불전 내부의 의식’인 ‘불화’를 사찰내부에서 수행하는 가장 장중한 무대로 조명했으며, ‘괘불’을 야외에서 관객인 신도와 함께 하는 확대성이 큰 열린 공간으로 펼쳐진 종합예술로 설명했다. 공간이 대비되는 서술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 돋보이는 서술이다. 이성운 선생의 글(「수륙재의 연유 및 설행과 의문의 정합성」)은 가장 보편적인 불교의식의 하나였던 水陸齋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성과로서 의미가 크다.

 

수륙재에 대한 이론적 근거 제시한 성과도

윤광봉 선생의 논문(「중세 한국의 강경과 창도」)은 講經과 唱導가 불교의 전성기에 3년마다 시행된 經行의 다른 표현이고, 이를 신라에서 기원해 고려에서 만개한 팔관회와 조선에서 성행한 수륙재와 연결시켜 논의를 더욱 명료하게 했다. 불교의례의 꽃인 팔관회는 대표적인 공연의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국왕이 참석하는 행렬과 법왕사의 의식은 회화와 조각과 건축과 가설된 무대시설이 갖춰진 장엄한 공연이었다. 회화와 조각과 건축이 정적인 공간의 무대라면 음악과 무용과 창도는 동적인 공연을 돕는 요소이고, 이는 국왕과 행렬과도 깊이 관련된다. 조성진 선생의 논문(「굿으로 읽는 불교의례」)과 윤소희 선생의 논문(「한중 불교음악의 전통과 계승」), 그리고 한성자 선생의 글(「『삼국유사』에 실린 원효설화의 스토리텔링과 불교사상」)은 사상과 철학의 뿌리를 불교의례로 접근한 심층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신화종교나 이웃나라의 사례와의 비교, 그리고 고대의 불교설화를 입체화시키고 접근했다.

불교의례는 고려에서 전성기를 이뤘고 다양한 국가제전의 기초를 형성했다. 이 책은 공연예술이란 관점에서 현존하는 불교의례의 통시성에 초점을 뒀으므로 극성기의 입체적인 전형의 모습을 모두 살려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성기 국가와 사원은 불교의례의 무대를 제공했다. 도성의 거리는 행렬의 공간이자, 축제와 왕실의 조상숭배가 수행되는 무대였다. 국왕과 신하와 무사와 악사들은 배우가 되며, 주민은 관객으로 참여함으로써 행렬도와 함께 동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고려의 연등회와 팔관회, 그리고 인왕회에는 국왕이 참석한 사찰과 그곳에 행차하는 과정, 이들이 도착해 수행한 의식의 순서가 매우 자세하게 남아있다. 이런 축제는 불교가 극성한 사회에서 사회통합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기능을 했다.

이 분야에 자료집은 있었으나 이 책은 전체를 조망하려는 성과를 모아 선구적인 개론을 시도한 의미가 크다. 다만 불교의례가 전범을 보인 시대를 다룬 『고려사』 예지에 실린 풍부한 행렬과 관련 사원의 장식을 복원한 무대와 동적인 구체적인 장면이 묘사된 불교의례 연구가 다음에 속속 간행돼 이번 책이 더욱 확충되길 기대한다.

 

 

허흥식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고려사회사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나폴리 동양학대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강의했으며, 저서에는 『한국중세사회사연구』, 『한국의 중세문명과 사회사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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