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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장애인에게 차가운 대학
진단 : 장애인에게 차가운 대학
  • 이은정 기자
  • 승인 2002.12.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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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2 13:32:26

지난 8일 서울대 장애인동문회 주최로 ‘장애인의 차별 없는 대학교육을 위하여’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린 세미나에서는 눈길을 끄는 통계가 하나 발표됐다. 바로 ‘장애학생들이 비장애학생들에 비해 많게는 6배까지 높은 휴학률을 보이고 있다’는 것. 이 통계가 눈길을 끈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조금만 뒤집어 보면, 장애학생들이 어렵게 들어온 학교에서의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 장애인에게 얼마나 열려있는가.

1995학년도 대학입시부터 특수교육진흥법에 의해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된 중증장애인은 정원 외로 대학에 특례 입학할 수 있게 됐다. 시작 당시 8개 대학에 1백18명이 입학하던 것이 2002년 현재에는 70여개 대학에서 1천7백명 가까이 대학에서 각자의 학문에 정진하고 있다. 올해 초 발표된 입학전형에서도 전국 48개교에서 1천80여명 가까이 장애학생을 선발하겠다고 밝혀 이제 대학 내 장애인의 문제가 소수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대학 일상의 문제로 전환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장애인 특례입학, 전시용?

장애학생들이 수업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바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현재 많은 대학들이 장애인 편의시설 마련에 지속적인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장애인 특례입학을 실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대학이 부분적으로나마 경사로 설치, 문턱 낮추기, 화장실 개소, 승강기 설치 등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지원에 투자하고 있다. 연세대의 경우 대부분의 건물에 장애인용 화장실을 확충하고 총 49개의 승강기 중 10대가 장애인 전용으로 설치했으며, 휠체어 리프트 역시 4개가 설치되어 있어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장애학생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0℃이다. 장애 학생들이 불편함 없이 수업을 받고 학문을 하는 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 더운 여름날 도서관 계단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는 고생은 승강기 설치로 한시름 덜었다고 하자.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장애인 편의시설 외에 실질적으로 수업을 받는데 필요한 점자책, 수화 통역 등 수업기자재 및 교육보상기자재 등 잘 공개되지 않는 곳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아직도 장애학생을 위한 제도가 얼마나 불모지로 남아있는지 알 수 있다.

최근 서울대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학교 내 장애인 편의시설상태를 묻는 항목에서 90%가 ‘잘못된 설치로 장애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밝힌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나마 설치된 편의시설마저 장애학생의 분포 및 이용 빈도와는 상관없이 설치된 경우가 많아 급조된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행정주의적이고 비전문적인 장애인 지원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대학 내 장애학생 지도교수를 맡고 있는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학)는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홍보 차원에만 그치고 있는 대학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학생들 유치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차후 관리”라고 강조한다.

교수들의 관심부족 역시 걸림돌

교수들의 부족한 배려 역시 장애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다. ㅈ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S양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설명을 알아듣지 못한다. 옆 학생에게 필기한 것을 빌려 보지만 수업을 이해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수업을 같이 들어 줄 친구가 없다면 당장 수업 듣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태. 이에 대해 장 교수는 “시험이나 레포트를 제출할 때 사전에 장애학생을 체크해 관심을 갖는 문화가 정착해야 한다”며 교수들의 관심을 호소한다.

김형식 한국국립재활복지대학 학장 역시 “교수들에게 장애학생들을 가르칠 준비가 되어있는가 묻고 싶다”면서 “많은 교수들이 장애학생을 가르칠 때, 당황한 나머지 적절한 배려를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는다. 김 학장은 이어 “우리 나라는 장애인에게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는커녕 박탈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업 중 점자책 활용, 수화 통역은 물론, 노트 필기, 레포트, 시험 등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교육전달방식 및 교수법까지 교수들의 장애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 밝혔다.

장애학생 ‘도우미’ 활성화돼야

이러한 가운데 서울대에서는 강의실 앞쪽에 장애학생 전용좌석을 배치하고, 장애학생을 위한 수강신청기간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수업 내에서도 장애학생들을 배려하겠다는 것. 특히 내년 1학기부터 시행될 예정인 장애인 학생의 수업 내용 필기 및 휠체어 이동 등 교내생활을 도우면서 장학금을 지급하는 ‘장애학생 도우미’ 제도는 학생들 사이에 의연 중 존재하는 편견을 없애기에 일조를 할 것으로 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장애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장애’ 그 자체보다 더 크고 매서운 폭력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형식 국립한국재활복지대학장의 “장애를 보지 말고 능력을 보는 대학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은 의미가 깊다.

스티븐 호킹이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의 능력이 뛰어나서 만은 아닐 것이다. 학생으로서, 연구자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자유로운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준 ‘학문의 장’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장애인과 함께 살고 있는가.
이은정 기자 iris79@kyp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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