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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키디데스의 ‘역사’ 사용법
투키디데스의 ‘역사’ 사용법
  •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서양고전문&
  • 승인 2015.11.0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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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서양고전문헌학
▲ 안재원 서울대 HK교수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년)에 따르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려 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고자 한다(『시학』 제8장). 시가 ‘보편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혹은 일어남직한 일을 다루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이에 다른 누구보다도 반발할 사람이 투키디데스(기원전 454~399년)일 것이다. 만약 그가 늦게 태어나서 이 말을 들었다면 말이다.

“이야기가 없어서 듣기에 재미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 속성 때문에 언젠가 다시 일어날 혹은 유사하게 일어날 일들을 분명하게 살피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유익하고 깊은 맛을 줄 것이다. 이 책은 경연대회에서 한 번 듣고 잊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나 살아있는 물건이기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22장 4절)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역사도 보편적이다. 일어난 일과 일어날 일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반복성과 유사성을 살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살아 있는 물건!”, 조금 센 해석이다. 원문은 “ktema eis aiei”이다. 하지만 이를 ‘永代의 보물’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해석일 것이다. 세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영대의 보물’이라는 번역은 역사를 박물관에 박제된 형태로 보존된 유물로 취급하게 만드는 생각을 심어준다. 둘째, 이 번역은 역사를 과거사에만 한정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역사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반복성 내지 유사성을 예측하는 데 유용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거울이다. 그런데 거울에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져서 그러니까 작은이가 큰이로 보이고 잘생긴 이가 못난이로 보인다면, 누가 그 거울을 보려고 할까. 이런 거울을 좋아하는 못난이도 없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셋째, 이 번역은 결정적으로 역사의 ‘살아있음’을 망각하게 한다. 또한 이런 종류의 망각이 종종 역사를 승리자의 전유물이라는 착각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는 그 자체가 生物이다. 잠시의 굴절과 왜곡 정도는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갖춘 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자신의 허물을 대놓고 들춰내는 일은 쉬운 것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투키디데스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역사가 역사에 유용한 무엇인 까닭은 역사가 과거의 예찬이 아니라 미래의 경고에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는 한 번 듣고 잊어버리는 축제 놀이가 아니기에. 이는 자기 책이 재미없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는 사실에서 쉽게 확인된다. 하지만, 재미는 없지만 ‘깊은 맛(arkeontos)’이 있다고 한다. 도대체 그 깊은 맛은 어떤 맛일까. 十人十味일 것이다. 이럴 때는 명망가의 권위를 빌리는 것이 편한데, 대표적으로 토마스 홉스(1588~1679년)의 말을 소개하겠다.

“많은 사람들은 문학에서는 호메로스를,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연설에서는 데모스테네스를, 다른 분야의 경우 그 분야에 속하는 어떤 사람을 최고로 친다. (……) 그 반열에 우리의 투키디데스도 놓아야 한다. 자신의 작업에서 앞에 언급한 이들에 못지않게 완벽한 장인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도 그렇게 믿는다. 역사를 다룸에 있어서 투키디데스의 능력은 그야말로 최고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일들을 통해서 현재의 일들에 현명하게 대처하며 미래에 대한 예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며 가르치는 것이 역사의 고유한 일이고 기본 책무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우리의 투키디데스보다 자연스럽고 제대로 수행한 이는 어떤 사람도 없다.” (『번역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8권』 가운데 ‘독자에게 드리는 글’)

홉스가 말하는 ‘투키디데스의 능력‘이란 어떤 것일까. 아주 심오한 것 같지만. 내 생각엔, 아주 간명하다. 투키디데스의 말이다.  “전쟁에서 벌어진 일들은 우연하게 들은 대로 혹은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내가 현장에서 체험한 것들과 남에게서 들은 것들을, 그 각각에 대해서 할 수 있는 한 엄밀하게 조사해서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고생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도 양 편에서 한 편으로 기우는 말을 하거나 기억력이 약해져서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말을 했기 때문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1권 22장 3-4절)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것이라 할지라도 엄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편파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한 마디로 서둘지 말라고 한다. 역사를 쓰는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이를 깨닫기까지 자신도 상당히 고생했다고 한다. 이래저래 역사 쓰기가 쉽지 않음을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홉스가 그토록 예찬했던 투키디데스 자신도 역사를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실토하고 있기에.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동의 살아있는 기억을 다루는 일이 역사의 現業인 한에서, 과거의 예찬이 아니라 미래를 懲毖하는 거울을 만들고 닦는 일이 역사의 主業인 한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나거나 일어남직한 보편의 지평에서 개별의 사건들을 검토하고 검증하는 작업이 역사의 本業인 한에서는 말이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서양고전문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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